▲ 소향한국화연구소 소향(素香) 강혜인 작가

근대 이후로 발전되어 온 우리나라의 전통 회화를 일컫는 한국화는 종이와 비단, 붓, 먹, 채색 등 서양화와 대응되는 동양의 전통적 재료와 기법 및 이론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뜻한다. 특히 한국화 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정물이나 동물은 모두 특정한 뜻을 품고 있어 그리는 사람이 추구하는 그림의 방향을 정확하게 일러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모란은 부귀를 뜻하고, 연꽃은 극락세계를 비유하며, 암수 사슴을 그린 쌍록도는 불행과 질병을 막아주고 복록을 가져다준다는 등의 방식이다. 사천 삼천포에서 소향한국화연구소를 운영하며 독특한 시각의 한국화를 선보이고 있는 강혜인 작가는, 기존의 한국화에서 쉽게 등장하지 않았던 멸치를 통해 생(生)의 의지를 전파하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고향인 통영에서 도정 김안영 선생님의 권유로 그림 활동 시작해
통영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양화가 소향(素香) 강혜인 작가는 독특하며 인상적인 고유의 화풍을 통해 꾸준한 주목을 이끌어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해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을 하고 서울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한국화 특유의 문인화적인 표현 방식에 구상과 추상을 혼합한 자신만의 필치를 더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흔히 서양 예술의 계파로 인정받아 왔던 추상주의 미술의 영향이 그녀의 작품 안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다양한 소재를 꾸준하게 탐구해왔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활동의 초기부터 이러한 그림의 소재가 확고히 정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미술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제자를 몇 명 가르치기도 했던 강 작가는 결혼 후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육아에 전념하면서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통영에서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은 퇴직하시고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며 작가로 활동하시고 있었다. 그 분이 바로 새우와 물고기, 물새 등 통영의 해변 풍취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유명한 도정 김안영 선생님이었다. 평생 통영 지역의 미술교사로 활동하며 후학양성에 힘쓰셨고 통영문화원 원장을 지내시기도 한 김 선생님 덕분에, 강 작가 역시 본격적으로 한국화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강 작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다가 다시 고향인 통영으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들을 키워야 했기 때문에 30대에는 작품 활동을 그리 많이 하지 못했는데, 점차 안정기로 들어서면서 계속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에도 나갔다. 무엇보다 통영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감이 지속적으로 생겨난다는 점에서 참 좋은 도시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역동적인 에너지 품은 멸치를 소재로 한국화 그려
생(生)의 의지를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아
물고기와 새우, 게 등의 동물은 우리 전통회화에서 특정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화에서 비교적 빈번히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잉어는 입신양명이나 효의 정신을 표현하는 데 쓰이며 새우는 한자 독음인 하(蝦)자가 축하의 하(賀)자와 같아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물고기는 대부분 부부의 화합과 자손의 번창을 표현하는 데 쓰이며,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한국화의 전통적인 미학을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화를 공부하는 화가들은 전통적인 도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강 작가의 작품 안에서 보이는 요소에는 특별함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그녀의 작품 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가 멸치라는 것이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교수는 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전통회화에서 반복해 그려졌던 새우 대신에 멸치가 들어온 것이다. 작가는 그 멸치를 문인화 형식으로 그리길 거부했다. 대신 회화적인 방법론 아래 조율되고 있다. 구상과 추상이 뒤섞이고 선과 면이 겹치고 구성적인 패턴과 함께 자율적인 붓질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멸치는 단순하게 재구성되고 무리를 지어 화면에 등장한다. (...) 전통적 도상인 새우의 자리에 멸치가 들어갔고 함축적인 먹 선과 수묵의 은은한 스미고 번지는 맛을 대신해서 여러 색채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다채로운 형상들이 빼곡한 그림이 되었다. 멸치의 생동감이나 생명력, 혹은 빛을 받아 눈부시고 환하게 발광하던 그 은빛에 감동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형적인 문인화의 형식 대신에 멸치로 대표되는 특정한 소재를 배열해 다채로운 색채를 구성하는 강 작가의 작품은 생(生)에 대한 의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녀는 “물고기는 죽어도 눈을 감지 않는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한 방향으로 또는 여러 방향으로 끊임없이 헤엄치는 물고기의, 생명을 불어넣으며 힘차게 역동하는 모습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지역 문화센터 강사 등으로 한국화의 아름다움 전파
현재 사천 지역 삼천포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강 작가는 사천 지역 문화센터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지역에 널리 전파시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역 특색에 따라 문인화를 시도하는 작가들은 많은 데 비해 한국화 부문에서는 작가나 강사의 수가 너무나 부족했던 현실을 마주하고, 강 작가는 꾸준히 자신만의 새로운 한국화를 전파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강 작가는 “제 작품은 한국화에 구상과 비구상을 접목해 만들어낸 새로운 것이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도 색을 많이 쓰는 편인데, 제자들에게도 항상 원색을 바로 쓰지 않고 끊임없이 색을 혼합해 여러 종류의 색을 찾아낼 것을 주문한다. 정해져 있는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나갈 수 있는 것이 한국화를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또 “두려워하지 말고 그림을 그릴 때 표현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여 그리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잘 그려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그려보는 방법,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수업을 지향하며, 특히 우리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문화적인 인프라가 다소 부족한 편이어서 수강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전시를 보러 다니는 활동도 매우 즐거운 일과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삼천포에 갤러리 오픈해 많은 작가가 관객 만나게 하고 싶어
2017BAMA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경남국제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 사천 리미술관 초대전 ‘바람이 꿈꾼다’, 동피랑갤러리 2015 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한국화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는 강 작가는 각종 공모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바 있으며 현재 후학 양성에 적극 몰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모전에 작품을 내던 시기와 현재 미술계의 현실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는 아쉬운 마음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100호 그림 한 점을 그리려면 1년 이상을 쏟아야 하는데 다양한 기관에서 공모전이 끊이지 않고 개최되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놓고 진득하게 그리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요즘 작품들은 소형화되는 추세인데, 그마저도 현대적인 서양화나 민화에 밀리는 경우가 많아 한국화를 업으로 삼은 작가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서 한국화를 전문으로 하는 화가로서도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강 작가는 앞으로 지역 내 문화적 환경이 다소 열악한 삼천포에 갤러리를 오픈해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선생님들의 작품, 또 삼천포에 살지 않더라도 작품을 전시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작품의 기본은 그리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관객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으로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후학 양성에 앞장설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