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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와 불화 통해 작가로서의 인생 2막 펼쳐후학 양성과 저서 집필 등 열정적 활동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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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7  09: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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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향우리그림연구소 운향(雲香) 박문숙 작가

꿈은 참 짙었다. 동무들과 밖에 나가 고무줄뛰기나 뜀박질을 하고난 뒤 곯아떨어진 어린 시절의 잠만큼이나 짙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꿈은 내 인생의 굴곡을 몇 번 치르는 동안 자꾸만 엷어지고 작아진 채로 순응 잘 하는 성격 탓에 차츰 묻혀 갔다.
주변인들에 의해 내 삶은 그럭저럭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학생들은 나를 열정적인 문학선생으로나, 또는 하기 싫은 야자를 악착같이 시키는 악바리 선생으로 기억하기도 했고 스승의 날에는 찾아와주기도 했다. 적당히 집도 장만하고 아들도 잘 커 제 몫의 일을 찾았으며 선량한 남편은 아내의 일을 전적으로 응원했다.
순탄한 나의 삶에 마가 낀 것은 순전히 팔자소관이었다. 인생의 세찬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은 나의 숨을 틀어막았고, 겨우 잠든 잠에서 깨어나 다시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글조차 쓸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나를 흔들어 깨워준 건 꿈이었다. 그동안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바쁜 삶 속에서도 틈틈이 화실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며 놓지 않았던 그림이 죽음 속을 허우적거리던 내게 기적처럼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만난 불화(佛畵)는 나의 삶의 의지를 든든하게 받혀주었다.
나는 참 욕심이 많다. 불화를 그리고 민화 지도를 하면서 나만의 민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다. 그 열정을 가지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여기서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민화교육과정에 대한 책을 집필하면서 내 인생 제2막을 보람으로 엮어가고자 하는 바람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교사로서의 삶 마무리한 인생 후반, 작가로서 다시 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박문숙 작가는 그림에 대한 관심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었기에, 미술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술 계열에 대해 벌이가 어렵다는 인식이 커서 그녀의 집에서는 미대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작가는 졸업 후 교사가 되어 국어선생님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미술대학원에 진학하는 한편, 틈틈이 화실을 왕래하며 자신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실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기초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다. 데생, 수채화, 한국화, 서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해가면서 외연을 넓혀가기 시작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운명과도 같이 불화와 민화가 다가왔다. 박 작가는 “작품을 계속 만들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일종의 갈증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불화를 만나게 되면서 해소가 되었다”라고 언급했다. 은퇴를 앞두고 주변 선생님들의 소개로 민화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민화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원래 불화를 하시던 분이어서 자연스럽게 민화와 불화로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전통 민화와 불화의 양식 최대한 존중해
불화의 기초 역시 탄탄히 다져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민화에 대해 박 작가는 “다른 여러 장르의 그림들은 눈으로 보는 그림인 데 비해 민화는 의미를 읽고, 해석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엄격하게 짜여 있는 소재와 주제를 꾸준히 반복하여 전통의 미학을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도록 한 것이 민화의 장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듯 박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민화와 불화가 지닌 양식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면서 복고창신(復古創新)의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의 방식을 따르며 그리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화조도와 초충도 등 다양한 작품들은 전통 민화의 맥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또한 우리그림으로 창작한 백동자도 병풍은 창작민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녀는 온화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담아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또한 불화 역시 그녀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불화는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으로 그녀가 불화의 기초를 다지게 된 통도사는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이자 국내 불화 연구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박 작가는 “불화와 민화는 모두 선(線)의 예술이다. 민화는 짧은 선이 많은 반면에 불화는 주로 긴 선이 많고 아무래도 종교적인 예술이다 보니 불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승들은 선 공부만 1년 이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불화를 시작할 때부터 항상 정성을 다하고 집중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온 것이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제2의 인생 가꿔가는 사람들 위해 후학 양성 열심
“민화 교육과 관련된 책 쓰고 싶어”

박 작가는 불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림뿐만 아니라 단청 작업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단청은 차비만 받고 일을 하거나 차비조차 받지 않을 때도 있어 거의 보시의 개념과 마찬가지였다. 같이 일하는 분이 ‘나이도 많으신데 굳이 이걸 배우시냐’고 물어봤을 때도 ‘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는데, 그 정도로 지금은 조바심을 갖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히 불화와 관련해서는 스스로 보람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작업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화실을 열어 강좌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후학 양성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녀는 “수강생 분들을 가르칠 때도 가장 기초 과정인 선긋기부터 시작하여 어느 정도 들어가면 바림(그라데이션)을 가르치고, 각 그림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며 민화의 세계를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힘쓰는 편이다. 다른 곳에서 1~2년 정도 민화 수업을 듣고 오신 분들도 새삼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해주셔서 힘이 난다.”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우리 것에 대한 의식이 확고해야 하고 세상이 바뀌고 편안하고 전위적인 것이 많이 나오더라도 우리 민화, 문인화나 한국화가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기복은 조금 있을지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인식을 갖고 자부심을 갖는다면 영원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으며, 앞으로는 꾸준히 후학 양성을 계속하며 민화 교육과 관련된 책을 써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7월 그룹전과 함께 가을경으로 계획하고 있는 여섯 번째 개인전을 위해 작품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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