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원 박성아 선생

추사 김정희(1986~1856)는 조선시대 명필 중에서도 으뜸가는 서예가다. 김정희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닳아 없앴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서예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는 이러한 부단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그의 천부적 자질이 빚어낸 최고의 서체다. 또한 추사체는 해서체뿐 아니라 행서체, 예서체에서도 독창성이 두드러진다. 기존 국내 서예계가 중국의 전통서예기법에만 눈길을 보낸 채 철저하게 외면하다시피 소외돼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추사체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가 있다. 경남 하동의 화개동 지리산 너른 품에서 추사체의 명맥을 잇고 있는 도원 박성아 선생이 바로 그다.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추사 김정희
당대의 청나라 지식인들을 경탄시킨 뛰어난 젊은 학자, 스스로 금석학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서체를 개발한 서예가, 날카로운 감식안과 평으로 수많은 후학을 길러낸 예술인,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이끌어 낸 문인화가. 이런 다양한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추사 김정희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는 물론이고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와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우리 역사에서 잃어버린 19세기 전반부를 대표하는 학자다. 당시 청나라 지식인들이 추사와 교류하려고 할 정도로 그의 학문 수준은 높았다. 추사는 관료 생활을 하기 전에 금석학 분야에서 발군의 성과를 낸 뒤, 8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법(書法)을 확립했다. 또 초묵법(세한도는 초묵법으로 그려졌다)이라는 문인화 화법을 복원시켰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선진국이었던 청나라 최고 지식인들과의 교류에 적극 나섰던 추사 김정희. 그는 당대 최고 지식인인 담계를 만나고자 10년 동안 준비했고, 직접 만난 뒤에는 8년여 동안 편지로 학문을 교류했다.

지리산 너른 품에 추사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도원 박성아 선생
추사 김정희(1986~1856), 성파 하동주(1879~1944) 선생으로 이어져 온 추사체를 오늘날 가장 잘 재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故 도연(陶然) 김정(金正, 1906~1999) 선생의 수제자로 은초 정명수(1909~1999) 선생 등과 함께 당대 경남지역 서예계 태두로 불렸던 김정 선생의 엄격한 가르침을 따라 필력을 키워온 도원 박성아 선생. 그는 하동 화개동의 몇 겹의 병풍 속에서 날마다 그림을 바꿔서 보여주는 눈앞의 진풍경과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에 반하여 이곳에서 안주하며 추사체의 명맥을 잇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진경체, 구양순체, 왕희지체 등에 익숙한 국내 서예계의 관행 탓으로 그동안 국전 등 각종 서예공모전의 눈길에서 비껴나 있던 도원 박성아 선생의 추사체 서예작품들은 그래서 신선하고 기존 서예계에는 꽤 충격적이다. 도원 박성아 선생은 당대 경남 서예계 태두로 불렸던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에 따라 젊은 시절에도 국전 등 공모전에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롯이 추사체의 명맥을 이어오며 197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총 네 번의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추사체의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필획과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한 추사체의 개성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성아 선생은 “추사체는 전, 예, 해, 행, 초 등 모든 서체를 개성 있게 융합한 가장 진보적인 서체입니다. 때문에 추사체는 서법이 매우 난해하여 기존 서예가들도 추사체의 우수성을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접근을 꺼려하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추사체를 연구하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지도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추사체의 연구 영역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추사체는 중국의 서체와 구별되는 독특함을 지닌 서체로서 파격의 조형미로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류가 연예, 음악, 체육, 음식에 이르기까지 세계화되고 있는 오늘날, 서예 분야는 아직도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추사체의 발전을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중국 서체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추사체에 대한 의식수준도 향상되어야 합니다”라고 피력하는 도원 박성아 선생.

‘가슴 속에 첵 만권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된다’라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말처럼 먹의 농도, 점과 획이 빚어내는 절제와 조화, 그 속에 철학을 담아 예술혼을 불태우는 정신과 내면의 수련을 통해 정화해 나가며 추사체의 명맥을 잇고 있는 도원 박성아 선생. 향후 국내 전시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전시회를 통해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정신과 명맥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도원 박성아 선생을 통해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가 길이길이 후대로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