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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두드림의 인고 끝에 탄생하는 방짜유기
김태인 기자  |  red39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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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8  16: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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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방짜유기촌 이점식 촌장

꽹과리, 징, 장구, 북의 네 가지 농악기를 이용해 신명을 연주하는 사물놀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 고유의 음악으로 사물놀이에 쓰이는 악기인 사물을 음양으로 나누면 가죽으로 만든 북과 장구는 땅의 소리를 나타내고 쇠로 만든 징과 꽹과리는 하늘의 소리를 나타낸다. 특히 놋쇠로 만드는 징과 꽹과리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특수한 청동 기술, 즉 방짜로 만든 제품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하늘의 소리인 징과 꽹과리를 가장 잘 만드는 고장이 바로 경남 함양이다. 이에 방짜유기의 맥을 잇고 새로운 부활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함양방짜유기촌의 이점식 촌장(무형문화재 44호, 함양방짜유기장)을 만나 보았다.

천 번의 두드림의 인고 끝에 탄생하는 방짜유기
예로부터 함양에는 많은 상인과 장인이 모여들었다. 과거 함양군에는 30군데가 넘는 방짜유기 공방이 성업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10개의 방짜유기 공방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는 함양이 땔감 구하기가 쉽고, 인근에 합천 등 산지가 있어 차갑고 깨끗한 물이 많아 유기 공방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기계화 등에 밀리면서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고 특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악놀이 등 향락문화를 규제하기 시작해 전통악기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번창하던 함양 징의 역사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 꽃뿌리에서 방짜유기 명인인 故 오덕수(1920~1978)선생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서상면 출신 이용구 명인이 인근 거창에서 방짜유기 공방을 열었으며, 그의 첫째아들인 이점식 촌장이 아버지의 방짜유기 기능을 전수받아 옛날부터 전해지는 함양 꽃부리징의 명성을 잇고 있다. 이점식 촌장의 부친인 이용구 명인은 이곳에서 16살 때부터 방짜장 제작 기술을 배워 평생 방짜장을 만든 경남 무형문화재 제 14호 ‘징장’이다. 꽃부리에서 징 만드는 기능을 익힌 이용구 명인은 1967년 안의중학교 앞에 공장을 차렸고 안의중학교에 진학한 이 촌장도 틈틈이 아버지의 공장에서 징 만드는 일을 도왔다. 100%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방짜징 제작과정이 기계화가 되면서 오히려 쇠퇴기를 맞았고 부친의 공장도 6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100%로 수작업을 통해 하던 과정이 기계화가 되면서 많은 유기 공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죠. 당시 ‘에어함마’라는 기계를 처음 도입한 사람이 이봉조 선생님이었는데 우후죽순으로 방짜유기를 만드는데 기계화가 되자 이봉조 선생님을 따라 공장을 정리하고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한 이 촌장은 이봉조 선생과 아버지로부터 징 만드는 기술을 본격적으로 전수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촌장은 군 생활 3년을 제외한 나머지 40여 년이 넘는 인생을 지금까지 오롯이 놋쇠와 씨름하며 1300℃가 넘는 용해로 앞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2006년부터는 유기장에게 방짜유기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렇게 쌓은 기술로 1300℃가 넘는 용해로 앞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결과 함양방짜유기 경남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비록 지방 무형문화재이지만 경남 유일의 방짜유기장이면서 부자지간에 무형문화재로 인정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일이다. 더욱이 다른 유기장들은 북한식 방짜유기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것에 비해 이점식 촌장은 남한식 방짜유기 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점에서 가치 또한 남다르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남한식 방짜유기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이점식 촌장이 유일하다.

방짜유기는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일반적으로 6명이 한 조로 이루어 작업을 하는데 꼬박 사흘을 일해야 고작 징 두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나가 완성되는 고단한 작업입니다.”
징의 주재료는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78:22인 합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금으로 ‘바둑(일명 바데기)’을 불에 달궈 가며 망치로 두드려 유기나 악기로 만든다. “방짜유기나 악기를 만드는 과정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소리를 불어 넣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특히 징과 꽹과리 등 악기의 생명은 소리이기 때문에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가운데 부분은 두껍게 하고 주변으로 갈수록 얇아졌다가 다시 입구로 올라오면서 두꺼워져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일정한 두께를 만들어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벼름질’ 과정입니다.” 징이나 꽹과리와 달리 유기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여덟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가 주원료인 구리와 주석을 일정 비율로 섞어 ‘용해’하는 과정이다. 다음이 용해해서 만든 ‘바둑’을 기본 형태로 얇게 펴는 ‘네핌질’ 과정을 거쳐 재료를 두 장이나 여러 장 겹쳐 ‘우김질’을 하고 U자 현채로 겹쳐진 재료를 하나씩 분리하는 ‘냄질’을 한다. 그리고 난 뒤는 여러 명의 닥침꾼들이 달궈진 우개리(재료)를 망치로 동시에 내리쳐 서로 자신의 쪽으로 당겨 늘리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닥침질’이다. 이처럼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는 협도질과 제질 및 담금질, 벼름질, 가질 등의 작업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수십 번의 놋쇠를 갈구고 수천 번의 매질을 가하는 과정이 반복된 후 산화한 피박을 벗겨내는 마지막 가질 작업이 끝나면 마침내 찬란한 금빛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유기다. “방짜유기의 꽃은 징입니다. 세숫대야에 혼을 불어넣으면 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징에 생명을 불어넣어 소리를 잡는 작업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징을 만드는 사람은 양푼이나 세숫대야를 만들 수 있지만 양푼이나 세숫대야를 만드는 사람은 징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랜 기간 숙련의 시간을 통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힘들고 기술습득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우리 고유의 것을 요즘 젊은이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때문에 소중한 우리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한 사명감으로 두 아들에게 기술 전수를 하고 있습니다.”

함양방짜유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계승․보존에 매진할 터
이점식 촌장은 “예전에는 밤 12시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낮에 일을 하면 쇠의 달궈진 색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불일은 아침 먹기 전까지 마무리하고 이후에는 깎고 마무리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라며 고단한 작업을 설명했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1300도가 넘는 불과 씨름을 하며 오롯이 함양방짜유기의 맥을 이어 오고 있는 이점식 촌장의 두 아들 또한 아버지 밑에서 전수 장학생으로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이처럼 함양방짜유기의 우수성을 계승․보존하고 있는 그는 지난 3월, 일반 사람들에게 함양방짜유기의 제조 과정을 공개하는 시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역마다 방짜유기 제조 과정이 조금씩 다르고 방짜징의 경우 울려 퍼지는 소리 또한 차이가 있는데 함양방짜징은 맑고 고운 소리가 높고 깊은 것이 특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함양 전통 방짜유기의 맥을 잇고 우수성을 계승․보존하고 있는 이점식 촌장. 오늘도 1300℃가 넘는 치솟는 화염 속에서 묵묵히 용해로와 화덕을 오가며 단단한 놋쇠를 두드려 황금빛 그릇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의 손끝에서 또 하나의 문화가 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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