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 류흥권 작가

고향 어귀에 있는 커다란 미루나무 두 그루와 몇 백 년 된 아주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자리한 숲에서 잎 사이 반짝이는 햇빛을 쫓아다니며 풀벌레를 벗 삼아 놀았었다. 은하수 펼쳐진 밤하늘에 우주는 나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인간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늘 품었었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자연스럽게 나의 토픽이 되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우주의 파티클로 되돌아갈 때까지 이 아름다운 푸른 행성에서의 열정적 몸부림이며 한없는 날갯짓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20대 후반에 의대 중퇴 후 미술의 길로
서양화가 류흥권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미술부 수업을 들었고 뛰어난 그림 실력과 손재주로 인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독차지하는 빼어난 재능이 돋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그가 처음부터 그림의 길을 염두에 두고 경력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학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미술 등을 좋아했던 그가 의학이라는 단순 암기과목에 지적 호기심을 느끼지 못해 회의가 많았다고 한다. 과연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끝에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최전방으로 자원입대를 하기에 이르렀다. 전역 후 수많은 고민 끝에 그는 의대를 자퇴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류 작가는 “28세에 의대를 그만두고 바로 미술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학원을 차렸다. 비교적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온 경력이 있었고, 또 때마침 의대 공부를 하면서 인체 해부학을 배운 경험이 있었기에 인물을 그리기가 수월했다. 처음 시도하기는 어려웠지만 차츰 안정되어가며 저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작가로서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그에게 있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두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매진하다 보니 생각만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장성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작품을 꾸준히 창작하기 시작했고, 공모전에 출품을 하기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에 10회의 공모전 출품 경력을 얻어 초대작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내조해준 아내에게 감사해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며 얻은 경험 그림에 녹여내
그는 처음 작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으면서 말 그대로 도전을 감행해야 했다. 신혼 시절에도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그림 하나를 붙잡고 있는 바람에 아내에게 핀잔도 많이 들었고, 계속 작업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하는 만큼 아내의 역할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류 작가는 아직까지도 그 때의 내조에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그의 작가 등단을 도와주고 그림의 기초부터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 분은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이며 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이신 서양화가 이성재 화백이었다. 류 작가가 현재 거점으로 삼은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화백은 그에게 무채색의 활용 방법과 한색, 난색의 차이점,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분위기 등 다양한 것을 고루 알려주셨다. 선배 작가로서 그의 작품을 10년 이상 곁에서 지켜봐왔기에 처음 이 화백을 만나기로 했을 때는 더없이 긴장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사제관계를 통해 류 작가는 한 단계 성장하여 진정한 작가로서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그는 “기본 색상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또 달라서 모든 것을 거의 새로 익혀야 했다. 그림 하나를 놓고 480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로 그 때의 열정은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때의 고생 덕분에 지금의 성과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스승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의 중심 에너지가 되는 것은 주변에서 얻은 여러 가지 경험이다. 35세의 나이에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횡단하는 여행을 한 달 동안 다녀오면서 더욱 넒은 세계와 마주했고, 그 곳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통해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각양각색의 해외 전시에 활발히 참여하며 선진 미술 사조를 자신의 작품 안에 녹여냈던 성과가 있었기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류 화백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물의 다양한 모습 세밀하게 묘사해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의 대다수는 인물화이며, 주변에서 포착한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작품들의 대다수가 풍경이거나 다소 추상적인 작법으로 이어지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굳이 이러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신선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우선 사람의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맥>은 류 작가의 친구와 가맥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로 피곤에 지친 친구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포착해내 두터운 색깔로 표현한 작품이다. 농장 일을 하는 친구여서 초저녁부터 잠을 자야 했는데 그 작품 안에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삶의 진솔함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류 작가는 이러한 것이 비단 그의 개인적인 감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그림 한편에 의자를 그려 넣고 그림을 보는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림 안으로 들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관객 적극적 참여 구도형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삶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류 작가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유화 물감을 선택하여, 역시 많은 사람들이 굳이 선택하지 않은 인물화를 위주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이야말로 점점 추상화되어가고 팝아트에 가까워지는 현대미술의 범람 속에서 꾸준히 옛 방식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그만의 뚝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물을 그릴 때는 나이에 따라 피부색이 달라지고, 자세에 따라 입가와 눈가의 주름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인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마음 깊이 호소할 수 있는 인물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미묘한 색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느낌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블렌딩(섞기)을 충실히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독일‧캐나다 출판 미술 서적에 그의 작품 수록돼
“죽는 날까지 그림 그리며 명화 남기고파”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가며 작품 세계를 개척해간 결과 그는 해외로부터 꾸준한 러브콜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뉴욕 에이블 파인 아트 갤러리와 파리 89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물론 독일 베를린 ‘The First Berliner Art Book’ 선정 작가이자, 현재 캐나다에서 집필 중인 ‘Afg Art Book’에 그의 작품과 바이오그래프(biograph)가 수록되어 전세계에 2000부가 배포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꾸준히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각국의 작가 및 미술애호가들과 소통하며 대한민국의 미술작가로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류 작가는 “인물화를 주로 그리다보니 전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일본이나 독일, 폴란드 등에 제 작품이 들어가 있고, 또 SNS를 통해 만난 친구들이 작품을 좋아해주니 스스로도 열정이 생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화가의 눈은 전세계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화가들이 우리의 것이 가장 좋은 세계적 소재로 생각하여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산하를 그려가고 있다 생각되며, 그와 동시에 세계와 발맞춰 나아가려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안목과 경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저 역시 서양화를 하고는 있지만 서양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화는 동양인의 정신세계가 많이 함유된 동양적 사고 중심의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는 문화, 사고체계의 다름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더욱 견문을 넓히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더욱 많은 사람들과 만나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아주 단순하다.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명화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바람이다. 수많은 색채의 어우러짐을 더욱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의 발자취는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현재 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생을 모델로 하여 대한민국 전통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도시 전주의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며 전통의 한옥과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모습이 어우러진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이를 해외에 출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오며 더욱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