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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과 캘리그래피의 만남 선보이는 국내 최초의 작가독립기념관 3.1절 퍼포먼스에서 대작 <들리는가 그 날의 함성> 기증해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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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3  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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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담(土談) 김상진 작가

서각이라는 분야를 처음만나서 지금까지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무지함을 감출 요량으로 용감하게만 살아왔던 것 같다. 오직 세상에 없던 그 무엇을 구현하고 싶은 욕망과 치기로 좌충우돌의 세월을 보냈다. 지나온 과거가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스스로 위대한 작가가 아님을 알기에 오로지 혼신을 다하여 작업을 하였으므로 부끄럽지도 않다.
나에게 있어 서각이나 전각작업에 선행하는 캘리그래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보다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재해석하여 마음이 담긴 작품을 탄생시키고 싶은 마음이 전부이다. 멋보다는 깊은 맛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내면의 향기를 갈구하며, 캘리그래피와 전각과 서각이 잘 어우러져 문자조형예술이라는 바다에 다다르기를 꿈꾼다. (작가노트 중에서)

우연히 만난 서각, 인생의 길이 되다
경주에서 태어나 현재는 울산 태화강변에 자리를 잡고 캘리그래피를 접목한 서각 작품을 창작하고 있는 토담 김상진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대한 꿈을 꾸고는 있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미술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장차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고 그 소망은 30년이나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활짝 펼쳐지게 된다. 지인의 그림전시회에 초대받아 갔다가 옆 전시장에 걸려있는 서각작품을 보게 된 것이 작가의 길로 입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각작품을 처음 본 순간 ‘이것이야 말로 내가 미술계로 들어가는 입구로구나’라는 느낌을 받았고 다음 날 당장 서각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30년 동안 목말랐던 일을 시작하였으니 머릿속에는 온통 서각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기나긴 목마름과 간절함이 50주 만에 80여 점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낳게 된다.
퇴근 후의 시간과 휴일은 촌각을 아껴 질풍노도의 기세로 서각작업에만 매진하였는데 대략 200여점의 작품을 만들고 보니 기초가 너무 부실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김 작가는 자신이 당면한 상황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지나치게 서두른 결과가 낳은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회고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타올랐던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그때서야 자신이 기능공이 아닌 작가의 길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앞이 캄캄하여 길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우연처럼 만난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calligraphy)였다. 두 번의 우연을 통해 간절한 소망의 돌파구가 마련되고 보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캘리그래피와 서각을 혼합한 독창적 작품 세계 창조
대학원 서예문화학과 진학해 배움 이어가

그가 처음 캘리그래피에 입문하게 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캘리그래피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를 위하여 서울과 광주 등을 오가며 배우고 익혀서 김 작가는 울산 최초의 캘리그래피 작가가 되었고, 한계에 봉착하였던 서각작업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캘리그래피는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여백의 균형미 등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글자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탄탄한 기초가 더욱 중요했다.
열과 성을 다하였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연마한 캘리그래피가 흡족할리 만무하였던 그는 지혜로운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에 이르렀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게 된다. 물론 이 조언을 처음 들었을 때는 놀라기도 했지만 잠시의 고민 후에 생경하기까지 한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세계 최초로 서예문화학과가 생긴 원광대학교에 진학하여 캘리그래피뿐만 아니라 서예와 문인화, 전각 등 다양한 분야를 깊이 있게 접하는 기회를 잡는다.
자동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전라북도 익산시 소재의 대학원에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학업을 통한 다양한 경험은 글씨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에의 안목을 높이고 철학적 사유를 더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김 작가는 문자 중에서 특별히 한글에 관심이 크다.
“한글은 공부를 할수록 더욱 신비하고 아름다운 글자다. 일정한 글꼴이 정해져서 완성형 문자로 분류되는 한자에 비해서 자음과 모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완성시키는 조합형 문자라는 점이 한글이 가진 매력의 근원인 것 같다. 그리고 한글 자음의 기본형이 사람의 구강구조 모양에서 왔다는 창제 원리는 미학적인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뿌리와 같다. 서각이나 전각 작업에서 기능적인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작품의 풍격을 높이는 일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한글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 3.1절 퍼포먼스에서 대작 <들리는가 그 날의 함성> 기증해
“후학들이 제 수업에서 설렘을 얻어갔으면 한다”

김 작가는 작품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퍼포먼스와 예술행사 참여, 그리고 적극적인 후학 양성 등으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94회 3.1절을 맞아 독립기념관에서 울산지역의 예술인 5명과 함께 서각작품 제작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가 현장에서 작업하고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작품은 <들리는가 그 날의 함성(350X1750mm)>이라는 작품이다. 잊혀져가고 있는 3.1 운동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을 행사에 참여한 1만 5천여 관객들에게 서각 퍼포먼스로 연출하고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는 이 밖에도 다양한 장소와 다채로운 성격의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도시재생 사업 등의 벽화에 글씨를 쓰는 작업과 무료 캘리그래피 나눔 행사 등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들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작가는 현재 울산에서 서각과 캘리그래피를 가르치는 데에도 열심인데, 폭넓은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군의 후학들에게서 가르치는 자신이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포부는 한글도시인 울산광역시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만방에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한글을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십 여 년 후 그를 몽마르트 언덕이나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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