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 최미선 공필화가

중국 전통의 ‘공필화(工筆畵)’라 하면 공들여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작품을 말한다. 이경 최미선 공필화가는 자연을 모티브 삼아 전통 선묘와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동시에 펼쳐가는 전문 작가다. 그는 국내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다시 중국에서 터득한 그림을 문인화와 접목시켜 그만의 창작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본지가 제주도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그의 작품들과 함께 부단한 예술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았다.

자연 풍광을 듬뿍 담은 ‘제주 그리멍’ 작품

푸른 바다, 연잎과 꽃. 돌담이 펼쳐진 올레 길과 오름, 평화롭게 풀을 뜯는 말. 이는 제주도 자연을 듬뿍 담은 ‘제주그리멍’ 작품에 담긴 장면들이다. 붓끝으로 세밀하고 엷은 채색화 느낌을 잘 살린 자연 풍광이 여유로운 멋을 풍기고 있다. 최근 한가람 미술관에서 부스개인전에 선보인 이경 최미선 공필화가의 작품을 대한 첫 인상은 이랬다. 그런데 기존의 한국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서양화 느낌에 수묵(水墨)이 들어간 이 그림들을 분석하기란 간단치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화면은 지금까지 본 어떤 그림보다도 넉넉함과 생명력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의 풍경화 같은 이 작품들은 이른바 ‘공필(工筆)’기법으로 그려진 것이다. 중국 공필화(工筆畵)는 남종화(水墨畵)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북종화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직업 화가들이 외면적 형사에 치중하여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으로 분류되었다. 중국 당대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된 시기는 남종화보다 빠른 편에 속한다. 이런 화풍은 조선 초기 및 중기까지 화단의 명맥을 이어 왔으며 안견의 ‘몽유도원도’ 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는 화조화(花鳥畵)와 인물화(人物畵)로 분류해 화조화는 자연과 어울리는 꽃, 새, 곤충 등이 소재로 자주 쓰이고, 인물화는 도교에 등장하는 신을 비롯해 귀족 평민 등 인물이 망라 된다. 기법에 있어서는 수묵으로 공세(工細)하게 그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수묵화라고 할 수는 없다. 수묵화는 담채를 중심으로 하지만 공필화는 채색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묵화에 비해 철학적 수용과 사상이 뒤떨어진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현대에 이르러 수묵화와 공필화를 놓고 비교우위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필화는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며, 현대의 한국화 범위에 들어 고유의 예술철학을 담은 창작 모태가 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공필화는 작가에 따라 고미술복원 아니면 민화, 문인화 등으로 폭넓게 접목해 또 다른 창작의 힘을 발휘해가는 예술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경은 공필화의 전통 선묘와 현대적인 감각의 채색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가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 시대의 공필화가(工筆文人畵家)인 것이다.

천부적 재능을 보인 공필화조화(花鳥畵) ‘목단쌍합도’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성품에 스승도 높이 칭송

이경은 동덕여대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전통그림인 공필화 등을 배웠다. 그는 국내서 화실을 운영하다 중국 주재상사 임원인 남편과 중국으로 건너가 천진미술학원(대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은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8대 명문 미술대학으로 꼽히며, 이경은 중국화인 공필화를 전공하면서 가광건 교수(중국의 초대작가)의 제자가 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젊은 학생들과 입문해 중국 공필화조화(工筆花鳥畵) 대가였던 ‘우비암’(于非闇 1888~1959)의 그림에 입문하며 많은 노력 끝에 장학생으로 졸업했으며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특히 채색이 맑고 아름다운 공필화는 작업에서 붓의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 치밀하게 공들여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기 때문에 좋은 붓이 사용되어야 한다. 좋은 붓은 네 가지 특징이 있다. 뾰족하고 탄력 있으며 정연하고 둥근 모양을 갖는다. 여기에는 세 가지 붓이 사용되는데 각각의 선을 그을 때 쓰는 ‘선 붓’, 채색할 때 쓰는 ‘채색 붓’, 배경을 그릴 때 쓰는 ‘배경 붓’이 해당된다. 질료는 화선지와 명주가 일반적이며 채색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바탕에 교반수(아교와 합친 백반)을 칠한다. 여기에 먹과 함께 현대적인 질료로 분채, 석채 등의 안료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경의 수업 과정에는 비둘기 한 쌍이 그려진 ‘목단쌍합도’ 가 발견되는데, 한 눈에 봐도 수작으로 꼽힐 만하다. 이경을 곁에서 지켜봤던 가광건 교수는 성품을 ‘풀과 나무’ 에 비유해 “천부적 재능을 가졌음에도 티 나지 않고 순응하며 자연의 품성을 그대로 닮았다" 면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고요하지만 음악의 리듬감이 섞여 즐거움과 기쁨, 평화와 행복 등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중국 유명시인의 시구를 인용해 아낌없는 찬사를 표한바가 있다. 제자에 대한 깊은 사려와 격조 있는 작품을 높이 인정한 것이다. 또한 이경의 작품 중에는 마른나무와 구관조를 모티브로 비단에 임모한 ‘고수구욕도’ 도 압권이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구관조는 이국적인 색감과 어우러져 신묘함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매화, 석류, 물망초, 수국, 백합 등 화조도는 전통 색채에 뛰어난 묘사로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이경은 초기엔 비단에 작업을 했고, 본격적으로 작가로 나서면서 마와 광목, 화선지 등으로 옮겨갔다. 현재는 석채 안료와 아크릴 등을 섞는 그만의 방식으로 작품의 폭을 한층 더 넓혀가고 있다.

작품 원천은 제주 자연과 언제나 함께하는 남편..
“다양한 예술 경험하며 좋은 작품 계속 해가겠다”

공필화가 이경의 채색기법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실제 생활도 조용한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그는 화조화와 풍경화로 중국 북경 ‘표 갤러리’ 를 비롯해 최근 ‘한가람 미술관’ 부스개인전까지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이경은 제주도 애월에 있는 작업실을 겸한 아담한 단독 가옥에 남편과 둘이 머물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서울에서 대학 때 만나 결혼하고, 그 후 중국 천진, 북경, 상해 등지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리고 최근에 남편 은퇴와 더불어 성장한 자녀를 육지에 두고 제주도로 터전을 옮겼다. 자연을 벗 삼아 바라던 예술과 영원한 제주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 미술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남편은 이경에겐 더 없이 든든한 지원군이나 다름없다. 언제나 함께 하는 이들 부부에겐 작품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이경은 “그림 작업의 원동력은 남편과 제주의 자연이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는 공필화를 전공한 작가로 활동해 오면서 최근에 문인화에도 입문해 작품을 접목시켜 가는 중이다. 제주문인화연구회 회원인 그는 애월묵향회, 애월서우회, 서각회에도 나가고 있다. 그곳엔 제주의 예술가뿐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세계가 그를 기다린다. 제주시를 오가는 작업의 여정 중에도 간혹 남편과 애월묵향회 동료들과 술자리도 갖는다. 후배의 짓궂은 장난도 여유 있게 넘기며 스스럼없는 그 자리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 남편은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이면 연애시절의 옛 추억도 떠올리며 여러 사람 앞에게 음유 시인이 되어 준다. 크게 가진 것은 없지만 호탕한 남편과 소박한 아내의 모습이다. 가옥을 둘러 싼 돌담 밑에는 애정의 손길로 피어난 작은 꽃들이 작가와 닮아 보인다. 제주의 돌과 바람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예술의 꽃을 한 뼘씩 키워가는 작가의 아름다운 모습과 작품들이 잘 어울려 자주 선보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