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 노소정 작가

현대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인 추상화. 이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 선, 면, 색채의 순수 조형 요소만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낸 그림을 일컫는다. 즉 눈에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어떤 대상을 유추해 작가가 내면과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풍경화나 인물화에 비해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기도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이 있듯 추상화는 작가 의도와 지향점을 이해하고 감상하면 깊은 맛과 재미는 배가 된다.

선과 색채의 조화에 절제미가 깃든 추상화

최근에 서양화가 노소정 작가가 ‘2018대한민국미술축전(KAFA)&국제아트페어’ 킨텍스홀에서 선보인 추상 작품 <Untitled / 제목이 없는> 시리즈를 보면 활달한 면과 색채로 하여금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노 작가의 작품들은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으로 더 표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구도의 배치는 어떤 형식이나 규칙에 얽매임이 없다. 굵고 선명한 도형을 수평과 수직, 대각선 또는 겹치는 형태로 면의 질감은 더욱 도드라지고 풍부하며 깊은 멋을 뿜어낸다. 바로 보아도 좋고 비스듬히 보아도 잘 어울리는 그런 작품들이다. 또한 몇 안되는 색감이지만 맑고도 밝은 조합으로 색채의 마법 같이 현대적인 감각을 돋보이게 해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겉보기에 도식적으로 보이는 추상화 같지만 의외로 차갑지가 않다는 것이다. 화폭 안에서 어떤 질서를 꾀했지만, 일정한 선의 방향에 따라 지루하지 않은 면의 분할로 리듬이 깃들고 절제의 미와 용솟음치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 재료도 간단하다. 아크릴로 시선을 부드럽게 하면서 피로도를 최소화 했다는 것도 커다란 특징이다. 재료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노 작가는 “좋은 물감으로 캔버스 면을 채색해 작품도 되도록 밝고 깨끗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작품에 ‘<Untitled / 제목이 없는>제목을 단 이유는 “관람객의 상상력에 맡기고, 개개인이 나름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해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제목을 달아 보도록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고 설명을 덧붙였다.

관람객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긴 ‘언타이틀드’

추상화는 20세기 초, 러시아 작가 ‘칸딘스키’에 의해 시작되어 미국 작가 ‘잭슨 폴록’의 자유로운 표현 기법 등 이들은 현대의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칸딘스키’ 는 자신의 회화 연구과제에서 점, 선, 면의 3가지 요소를 강조해 세분화 했다. 이런 점에서 노 작가는 기본이 충실하고 탄탄한 편으로, 작품 속성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압축해 볼 수 있 다. 그의 작품에는 점, 선 면, 콤포지션, 내적긴장의 요소가 다 들어간다. 여기서 긴장은 힘을 말하며 콤포지션은 구성적 요소를 말한다. 긴장은 화면을 구성하는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형태들이 가지는 내적인 가치, 혹은 정신적인 것들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힘의 균형을 말함이다. 즉 점으로부터 움직임이 시작되어 일차적 형태로 선이 생겨나는 것을 노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선은 긴장 뿐 아니라 방향에도 반드시 참여한다. 이런 면에서 노 작가 작품엔 직선의 가장 단순한 형태인 수평선이 나타나고, 그 다음은 수직선, 그리고 대각선 형태의 구성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수평선은 차고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 중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를, 수직선은 무한하고 따뜻한 움직임의 가능성에서 가장 간결한 형태를, 대각선은 차가움과 따뜻함의 균등한 일체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품들은 능동적인 압력과 수동적인 압력의 콤비네이션, 여러 방향의 울림이 함께 작용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러 울림의 요소에서 선 자체 내에서의 악센트가 부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빨강, 파랑, 노랑 기본색 외에 회색과 검정색 등을 작품마다에 적절히 섞어 조화를 꾀하고 전체적으로는 따뜻한 에너지를 구현해 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점은 정지를 뜻하며, 선은 내적으로 움직이는 즉, 운동에서 생겨남이다. 노 작가의 작품들은 이런 요소의 간극에서 말로는 이룰 수 없는 하나의 ‘고유한 언어’를 형성하는 교차와 합작으로, 언어의 내적 울림을 증발시키고 흐르게 하는 부가적인 것을 최대한 배재하는 작업을 했고, 회화적 표현에 있어 초고도의 간결성과 최고도의 정밀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노 작가는 자신의 이런 작품들을 두고 ‘절제’ 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리듬감이 살아난다. 이는 작가의 작품 밑바탕이 되는 음악에 대한 관심과도 무관치가 않다. 그는 오페라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어떤 장르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작품에 깔린 수준 높은 예술적 감각은 모두가 이런 면에서 얻어졌음을 짐작케 해준다.

운동으로 각종 대회 휩쓴 ‘팔방미인’ 작가

노 작가에겐 놀라운 점이 참 많다. 선화예술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그는 화가의 길을 걸으며 현재 휘트니스 선수로도 맹활약 중에 있다. 인기 미술 강사이자 운동선수이기도 한 그는 각종 대회를 휩쓴 이색 경력으로 주변을 더욱 놀라게 만든다. 일반인이라면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기 힘든데 공부와 운동, 잘 가르치는 것까지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 노 작가는 2016년 Mr, Ms 서울 선발대회 부터 참여해 서울 강남구협회장 보디빌딩대회 비키니 종목 1위, 핏모델 종목 1위, 스포츠모델 종목 2위, 2018년 제29회 서울특별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비키니 종목 1위, 보디피트니스 종목 1위 등 웬만한 대회는 거의 다 석권했던 경력을 자랑한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하며 운동도 하면서 7년여에 걸쳐 따낸 휘트니스 교육 자격증만 11개. 서울 강남권 유명 휘트니스센터들은 모두가 알아주는 으뜸 강사이자 프로선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만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힘의 원천도 이렇듯 운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몸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런 성과가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 정도. 부족한 수면은 주말과 휴일에 보충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노 작가는 “커다란 정신적 존재인 부모님과 스승님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면서 “아버지 노무섭 회장님, 어머니 진영신 여사, 그리고 스승이신 서범석 선생님께 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고 덧붙였다. 노 작가에 따르면 평소에 운동으로 ‘절제’ 를 배우며 이를 통해 작품에 혼신을 쏟아 붓는다고 했다. 그는 “그림 작업을 하는 데 운동은 무엇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해줘서 좋다” 면서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국가대표로 세계휘트니스대회에 출전해 더 알리고, 해외전시전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등 작품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고 밝혔다. 늘 탐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캔버스를 대하는 노소정 작가. 그가 강조하는 ‘절제의 미’ 가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운동으로 아름답게 몸을 가꾸고 작품도 아우러져 가는 작가의 꾸준한 모습에 힘찬 응원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