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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미학 속에서 숨 쉬는 달 항아리”너그럽고 넉넉한 부정형의 정형, 따뜻한 투시력에 눈길 모아져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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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6  09: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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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서양화가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은 “흰 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美)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나타낸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며 말하며 우리 조상들의 숭배 대상인 보름달의 이미지를 삶 가까이 품고 예술로 승화시킨 백자 달 항아리를 극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달항아리를 회화로 옮겼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달 항아리 작업을 하는 손정숙 화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보았다.

‘안개꽃’ 그리고 ‘달 항아리’

'안개꽃 작가' 로 유명한 서양화가 손정숙 작가의 화폭에 등장하는 안개꽃은 수수한 여인의 생명력을 연상시키게 한다. "안개꽃은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던 꽃이에요. 건조되어도 생화(生花)의 색과 풍성함 아름다움이 그대로 보존되는 꽃이죠. 그래서 꽃을 소재로 정물화를 즐겨 그리는 저로서는 안개꽃이 무척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손 작가가 안개꽃에 애정을 쏟았던 이유다. 그녀의 작품에서 꽃의 형상들은 대개 좌우 대칭형을 이뤄 ‘초상형 정물화’ 로 구도상 화면의 중앙으로 시선이 모아지는 특징을 갖는다. 안개꽃을 표현하는데 있어 필연적인 흰색의 바탕과 연한 보라색조가 이루는 하모니는 우아함을 자아낸다. 또한 꽃을 받쳐주는 바구니는 조선시대나 구한말 즈음의 것으로 엔틱풍 멋이 있다. 오랜 작업 끝에 완성된 안개꽃에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열정과 침묵, 희망과 절망, 그리움과 미움 등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이 담겨져 있다. 우리가 기억과 추억 속에 살아가듯 이런 그림은 손 작가의 소중한 추억을 담아두는 '마음 주머니' 와 같다. 손 작가는 “안개꽃은 어느 꽃에 들어가도 잘 어울리기에 무한한 포용력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릴 때마다 신비스러움이 다가와요. 그 상태 그대로 마르면서 우아함에 손색이 없고, 푸른색과 어울러질 때 그 느낌이 좋지요. 깨끗함과 무색으로 표현하면서 명암이 많이 들어가 어두운 색부터 밝은 색으로 가면서 마무리 되어가죠. 꽃 하나하나 그리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해도 늘 영감을 이어나가게 하고, 그 느낌을 살리기에 유화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이랬던 손 작가가 달 항아리에 매료되어 작년에 달 항아리 그림만으로 두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달 항아리 그림은 각각의 느낌에 따라 달빛소나타, 심상(心相), 청담(淸潭), 자유, 시간, 교감 등으로 이름 붙여졌다.

달 항아리, 그 매력에 빠지다.

손 작가가 달 항아리에 매력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한 동기는 이렇다. 서울 북촌에는 ‘고월헌(古月軒)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는 오픈한 지 2년이 조금 넘지만 최고 수준의 한국의 고미술품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작가 작품이 전시되는 곳이다. 박물관을 운영하다 갤러리를 오픈한 김태형 관장이 손 작가의 전시회에 들렀다 우연히 안개꽃을 담은 항아리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마침 달 항아리를 좋아하는 김 관장이 자신의 갤러리에 서 손 작가의 달 항아리 작품 전시회를 가질 것을 제안하게 된 것. 말하자면 정상급 컬렉터와 작가의 특별한 인연이 이렇게 이뤄진 셈이다. 백자 달 항아리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예술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달 항아리는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선 각도로 짧게 벌어진 구연과 단정하고 부드러운 둥근 형태를 갖는다. 규모가 커서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가 어려워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반듯하게 비례가 맞은 것도 있지만 만든 사람의 손맛에 따라 둥근형태가 각각 다르게 형상화 된다. 그렇기에 달 항아리는 완벽한 조형미 보다는 부정형의 둥근 멋이 특징이다. 이런 느낌의 조선 후기 국보급의 귀한 백자 달 항아리 자료들이 손 작가 손에 건네졌고 유화 캔버스에 옮겨지게 되었다. 동양적인 매력에다 모던하면서 세련된 모습의 회화적인 달 항아리, 불침에 따라 신비롭게 우러난 색조가 작가의 영감으로 회화화 되어 재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달 항아리는 작가의 심성이 짙게 투영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은 안개꽃 작품에 비해 큰 폭으로 그려지며 몇 작품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나이프로 새겨 넣은 반야심경 270자를 조선의 달 항아리와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인간 심성의 본질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달 항아리 예술 가치와 순수한 아름다움 알릴 터.

손 작가는 2000년 두인화랑 초대전을 시작으로 2006년 아미화랑 초대전, 2009년 갤러리메이준 초대전, 2003~2011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아트 서울 등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1996년 LA에서 열린 한국우수작가 초대전, 1998년 한·중·일 국제교류전, 2005년 호주시드니 100인전, 2011년 LA 아트 쇼 컨벤션센터(Art Show Convention Center), LA 웨스턴 갤러리(Western Gallery)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안개꽃 작품은 특히 외국인들이 좋아하며 전시 때마다 완판 되곤 했다. 달 항아리 그림은 작년에 처음 선보였다. 5월에 인사동 갤러리에서 달 항아리를 주제로 300호 정도의 대형그림 3점 등 총 15점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10월에는 ‘한가람미술관’ <한국구상대제전>에 출품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올해 4월 ‘고월헌갤러리’ 에서 다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손 작가는 “달 항아리를 바라보면 그 안에 숨 쉬는 느낌이 있고 마음을 공유하면서 편해짐을 느껴요. 항아리 전체 힘과 기를 받는 입구의 모양을 잡을 때 힘 드는데 이를 중점적으로 작업을 더 한다” 면서 “안개꽃이 감흥과 메시지 전하는데 중점 둔다면 달 항아리는 숨결과 기백을 담아 그림으로써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고 말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문화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 교수(Guy Sorman)도 우리의 달 항아리는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만의 미적·기술적 결정체이며,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정하라고 한다면 난 달 항아리를 심벌로 삼을 것” 이라고 극찬했었다. 손 작가는 실제 백자 달 항아리가 갖춘 견실함, 장식이나 기교 없는 순수함, 우윳빛 유백색이 주는 담백함 등을 버리지 않으면서 절제미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소중한 추억의 장면을 되살리는 안개꽃처럼,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며 따뜻한 달빛을 상징하는 달 항아리가 그녀의 캔버스에 다시 빚어져 아름답게 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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