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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는 서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하다(사)한서미술협회 창립해 예술인 지원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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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5  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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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천(雲川) 이병곤 작가

서예의 글씨체인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는 각기 다른 시기에 발전하여 매우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이 만들어낸 글씨체인 ‘추사체’는 바로 이러한 서예 오체(五體)를 모두 통달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씨체라고 할 만큼 독창적인 개성을 품고 있으며, 후대의 서예가 및 학자들 역시 추사체를 쉽게 따라할 수 없었을 만큼 기술적인 면에서 매우 탁월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서예 역사의 ‘보물’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불세출의 작품인 추사체의 명맥을 되살리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운천(雲川) 이병곤 작가는 추사서화예술원 정회원이자 (사)한서미술협회 이사장으로서 서예계의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다.

사업가이자 서예가로 다방면의 활동
한학(漢學)을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한자와 친숙한 생활을 했던 이병곤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넷째였던 그는 군 제대 후 시골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농민후계자와 새마을지도자(4년)로 활동하다 경제적인 문제로 자영업을 하던 중 삼성중공업에서 근무하던 작은형님이 기계식주차장 설치를 하면서 설치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1995년 부산‧경남지역 A/S를 맡아 작은형님이 설치 파트를, 그가 A/S를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것이다. 그러던 중 설치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작은형님으로부터 회사를 대신 인수한 것이 지금의 동남파킹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이 항상 탄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흔의 나이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3기 말을 향해 가고 있었으니, 주변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왔다. 독한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 치료 과정도 매우 고통스러웠다. 항암제 치료를 받고서는 식욕이 돌아오지 않아 며칠씩 밥을 못 먹으면서도 사무실에는 꿋꿋이 출근을 했다. 그러던 중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여겨왔던 붓을 다시 한 번 잡게 된 것이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는 전환점이 되었다.

가산 최영환 선생님으로부터 추사체 가르침 받아
서예는 그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쓰는, 지극히 단순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글씨의 형태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이 그를 가득 채웠다. 그 뿐 아니다. 먹을 갈고 글씨를 써내려가는 전체의 작업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비움(空)의 미학을 자신의 삶 속에서 전개해 나가는 마음가짐을 내면화하고 나니 그에게 깊은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는 “내 생각을 글씨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꼈다. 책을 보고 문장을 많이 아는 것과 글씨를 잘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재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를 써내려갈수록 늘어나는 실력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 보람이고 매력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병곤 작가는 처음 서예를 시작하면서 독학으로 모든 것을 배웠다. 혼자서 인터넷을 보고 글씨 쓰는 방법과 오체의 구성, 현존하는 다양한 글씨체에 대한 지식을 익히고 나니 추사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서예라는 예술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인 만큼 오체를 기반으로 한 글씨체를 쓰는 많은 작가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중국에서 전래된 글자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글씨체를 창조하고 이를 후세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할 수 있었던 것에서 추사체가 가진 독창적과 유일무이한 미학의 정수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추사체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한국추사연묵회 회장으로 활동하시고 있는 가산 최영환 선생님이었다. 가산 선생님은 국내 최고의 추사체 대가로 손꼽히는 연파 최정수 선생의 자제이기도 했다. <연묵천자>, <연파총서>, <연파서집>, <추사체천자문> 등 다수의 추사체 교본을 집필하였으며 국내 추사체 연구의 일익을 담당한 추사연묵회를 창립한 인물로 추사체에 대한 국내의 연구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가는 가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일을 하는 틈틈이 사무실에서 추사체의 진수를 느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스스로 배우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 글씨에 힘이 있다고 저를 칭찬해주셨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선생님께서 바쁘신 덕분에 선생님이 계신 대전으로 직접 방문하여 글씨를 배우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사)한서미술협회 창립에 핵심적 역할
남북코리아 국제전 민족화합상 등 다수의 수상

이병곤 작가는 (사)한서미술협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을 하며 조그맣게 지하에 사무실을 얻어 출발한 (사)한서미술협회는 지난 2009년 제1회 한서미술대전을 개최하며 사단법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사)한서미술협회는 국내‧외 예술단체와의 학술교류 및 교류전, 한서미술협회 회원전, 한서미술대전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고아원과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돕기 등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나눔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 작가는 “협회라는 것이 규모가 커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다. 저희 역시 처음에는 사무실 월 임대료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였으나 꾸준히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열심히 활동한 결과 지금은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2년 전 바쁜 사업 때문에 이사장을 사임하고 지금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가는 남북코리아 국제전 민족화합상, 2011년 한국문화대상 서예부문 대상, 제8회 한국추사서화예술전국공모대전 대상 등 다양한 곳에서 수상하며 추사체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첫 입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무실에서 일이 끝나면 네다섯 시간씩 글씨를 쓰고 밤을 새는 일도 많았는데, 그만큼 첫 번째로 인정받았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간을 들인 만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것이다. 때문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글씨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이야기했다. 협회와 공모전을 직접 운영하는 동안 많은 작품을 보게 된 후 필력과 더불어 안력(눈으로 보는 능력)이 늘었다며, 꾸준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누구보다 깊은 진심이 느껴졌다.

은퇴 후 후학양성에 힘쓸 것
“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지자체 차원의 지원 필요”

그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최고위과정 6기를 수료하였으며, 은퇴 이후 후학양성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려 한다. 현재는 사업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어 여유가 적은 편이지만, 몇 년 앞으로 다가온 제2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꾸려가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작가는 현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신규단체까지 고르게 배분되기는 쉽지 않다. 또 작품을 판매할 창구 역시 마땅치 않다.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서예 작품을 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작은 전시장에서나마 더욱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면 좋겠고, 지자체에서도 전시를 위한 공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대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가장 좋아한다고 전했다. ‘남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되,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협회의 이사장이자 서예가로서, 특히 추사체의 명맥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예술인으로서 그가 지녔을 마음속의 열정이 짐작되는 말이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예계를 더욱 빛나게 할 그의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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