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향 우종숙 화가

요즘 들어 민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민화는 생활공간이나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이른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하여 발전한 민화는 민중들의 일상 속에서 활용된 특성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민중의 심성을 가장 쉽고 솔직하게 표현했지만 정통회화에 비해 완성도나 격조가 떨어진다 하여 한국미술사 연구의 본류에서 조차 소외되어 왔는데, 21세기를 지나면서 다시 각광받게 된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첫 번째 개인전에 대작들 선보이며 관계자들 놀라게 해
지난 6월 20일, 춘천의 자택에 찾아가 우종숙 민화가를 인터뷰 했을 때 10폭 병풍 '해금강절경도’(총석정도)를 본 순간의 느낌은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작품의 무게감도 그렇지만 이외에 모란도, 십장생도, 해학반도도, 쌍검도, 책(거리)가도 등 수두룩한 작품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거실 천장에 맞닿는 ‘금강산도’ 병풍작품에는 불로장생 상징인 학들이 한곳으로 몰려들고, 그만의 아이디어로 탄생된 ‘호작도’에는 수평선 너머 지는 해를 배경으로 불로초와 닭이 등장했다. 모두가 전통을 기반으로 부드럽고 상쾌한 미감이 표현된 작품들이었다. 우 화가는 앞선 5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5월, 그리고 모란과 함께 화려한 외출> 타이틀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그 자리는 축하객의 시선들이 모아진 터였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응용과 차용의 색다른 조합, 완성도 높은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기작부터 최근까지 모란도, 일월오봉도, 금강산도 등 대작 20여 점을 비롯해 도자기 등 다양하게 세팅되었고, 대담한 조형 감각과 여백의 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줬다. 그중에서 ’금강산절경도‘와 ’해금강절경도‘는 정교한 감각으로 전시 막바지까지 방문객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손님들 면면도 예사롭지 않았다. 60대 초반의 관람객은 경인미술관 2관 1층에서 2층을 오르며 대작들을 보고 "작품의 정교함에 놀라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면서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냈다. 우 화가의 작품 앞에 선 5~60대 미술교수들도 노(老)작가의 그림에 모두가 놀라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우 화가의 개인전은 춘천문화원 초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개인전 오픈 때 많은 지인과 미술관계자들이 왔어요. 여러 작가들과 함께한 풍성한 민화전시였는데, 오신 분들 수준과 평가가 대단했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히며 그때의 흥분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아름다운 물안개 색에 빠져 시작, 집중력 갖고 작품 완성
“외동딸로 자라 부모님이 무엇을 하든 자신감을 북돋워 주셨어요. 남들이 보기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얼마나 더 그릴 수 있나 싶겠지만, ‘할 수 있다’ 는 자세가 몸에 배어서인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밤새는 것도 예삿일입니다” 우종숙 화가는 작업을 하면 하루 13시간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고 말한다. 보통 10폭 병풍은 6개월에서 1년이란 오랜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데 이런 시간을 이겨내려면 커다란 인내와 열정이 필요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대담한 화면 구성력과 참신한 조합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특징이 있다. 특히 ‘평화의 금강산도(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특선작)’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첫 만남을 기려 신선도를 높여 많은 찬사를 이끌어낸 것으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한번 시작하면 끝맺음을 반드시 한다는 우 화가는 “주변의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며 하고 싶었고 저도 그렇고, 그림의 전문 지식은 없으나 아름다운 물안개 같은 색감에 빠져 민화 그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게 됐다”고 술회했다. 우 화가는 전통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2015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관화민화실기 교육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민화계 대가인 야촌 윤인수 선생에게 1년 정도 사사도 했다. 문인화로 ‘제12회 대한민국 강릉단오서화대전’ 대상을 받았으며, 다수의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다. 비록 늦깎이 작가로 데뷔했지만, 오래전부터 수채화와 도자기 등을 다루며 예술적 안목과 감각, 깊이 등을 풍부하게 다졌기에 누구보다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 화가는 “전에는 행복이 어떤 것이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민화를 그리며 깨달았죠. 취미로 여러 나라의 그릇과 잔을 모으고, 그림을 그린 시간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요”라고 말했다.

몸은 힘들지만 정겨운 마음으로,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것’
우종숙 화가의 조용한 작업실에는 북 마크된 민화 서적만 대충 헤아려도 수백은 되어 보인다. 그림에 대한 깊은 열의와 자신감의 근거인 듯하다. 민화는 민족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다. 우 화가는 그동안 민족의 미(美)의식과 정감(情感)을 가지고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격조 있는 예술로 쌓아 올린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수년 전 미국 워싱톤에서 민화회원들과 함께 한 ’이민 100주년 초대전‘을 꼽았다. 그는 당시에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민화의 색감에 감탄하며 깊은 관심을 보여준 것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민족의 그림을 더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들었다고 한다. 우 화가는 “민화 붐이 일고, 작품이 훌륭함에도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적, 문화적으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다.”면서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님이나 경주대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님 등 전문가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그럼에도 민화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음은 홍보와 기관에 대한 뒷받침 부족은 아닐까 싶다. 가깝게는 학교(경희대) 강의에서 교수님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건의도 해보면서 소외된 듯한 현실에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민화가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사명감을 가지고 끈기 있게 해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우 화가는 강원도 화천 태생으로 서울에 머물다 춘천에 온 지가 10여 년이 됐다. 그는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행복이란 화폭에 새로운 프레임을 더하며 오늘도 작품에 혼신을 쏟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