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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천제물리학자의 끝없는 그림 사랑”영혼으로 즐기는 것 부인할 수 없어 나를 찾는 그림 택해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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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6  08: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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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박사

구상작품부터 풍경을 적절히 생략한 추상작품까지 다양하다. 그중 ‘봄의 자취’, ‘인생’, ‘나목(裸木)’이란 작품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며 몇 가지 색만으로 캔버스에 아름답게 녹여내 매우 인상적이다. 색채만 놓고 보면 언뜻 프랑스 작가 ’마리 로랑생‘ 을 떠올릴 만하다. 이는 한국 유일의 여성 이론천제물리학자로 평생 미술을 사랑해 온 장경애 박사의 그림을 말함이다. 본지가 장 박사의 ‘그림’ 과 더불어 잔잔하면서 남다르게 살아온 ‘삶’을 조명해 보았다.

▲즐김을 부인할 수 없는 영혼의 색채, 숨겨진 재능의 작품들 
“제 그림의 색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에게 독특하다는 말을 들어요. 한 가지 특징은 어느 색이라도 튜브에서 나온 그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색은 원색 다섯 종류를 이용하여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색채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장 박사의 설명이다. 기자가 몇 가지 밝은 색으로 조합된 ‘마리 로랑생’ 색채와 닮았다고 하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마리 로랑생’ 느낌이 든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중학생 시절에는 그보다는 후기 인상파나 야수파 작가들의 색조를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고 노년에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선호하는 색이 많이 달라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 박사는 중1 때 그림을 시작해 대입 준비 때까지 그리다가 다른 친구들은 모두 미대를 갔고 자신만 물리를 했다고 전한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물리학과를 다니다 1969년 이십대 초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스워스모어 대학(Swarthmore College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스워스모어에 있는 학부 중심 최고의 리버럴아츠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애착은 남아 있었다. 장 박사는 유학 기간에 기회가 될 때마다 스미소니언 미술관(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최초 국립박물관)을 들렀다. 그곳에 전시되어 있던 ‘모네’ 작품의 색조와 구성에 깊은 호감을 받았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세잔느’ 의 ‘목욕하는 사람’ 작품을 대면하고 크기에 놀랐고, 큰 화폭을 같은 계열의 색조로 여유롭고 일관성 있게 유도한 필력에 감탄해 한동안 넋을 놓을 만큼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장 박사가 당시에 그림의 꿈을 접고 천문학이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기 위해 유학하고 있던 터였다.

▲미국, 독일, 캐나다 유학 중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그림
장경애 박사는 “그림과 자연과학은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접근하는 방법이 너무 차이가 있어 동시에 이루기가 매우 어려웠고, 공부하는 동안 틈틈히 물감을 만져 보거나 전시 작품들을 감상하거나 유명 작가들 도록과 미술사를 탐독하는 것으로 그림에 대한 갈증을 풀곤 했다”고 미국 유학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미국에서 독일 함부르크로 이십대 중반을 넘어 박사학위 공부를 하러 이동했다.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작가들 작품이나 초현실주의 작가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이 또한 생업과 학위논문 완성을 위한 연구에 대한 무게가 너무 커서 여유 있게 전시를 관람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대규모 전시 중 ‘르네 마그리트’와 ‘고야’의 단독 작품 전시회서 받은 충격과 희열은 지금까지 생생하다고 전한다. 전자의 작품에선 보이지 않는 세상의 표현에 압도당했고, 후자의 작품에서는 작은 화폭에 쏟아낸 진솔한 사건의 현장과 그것을 꾸밈없이 그려낸 흑백의 조화에 무릎 꿇을 정도로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위 취득 후 캐나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가 당시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느낀 것은 시대의 변천, 즉 화풍도 아날로그에서 편리성이 강조된 점이었다. “표사 기법이 기기에 의존하고 구도 역시 컴퓨터를 이용한 기법으로 반복되거나 컴퓨터로 에스키스를 뜨고 그것을 캔버스에 그대로 올리는 작업에 치중하고 있음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어느 정도 세월의 변화 속에 피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작가의 혼을 실을 수 있는 기법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장 박사는 그림사랑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드문 여성 이론천체물리학자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는 1979년에 독일의 지도교수와 네이쳐(Nature : 저명한 과학 학술지)(chang. K & Refsdal, S. (December 6, 1979). “Flux variations QSO 0957+561 A, B and image splitting by stars near the light path”. Nature. 282 ; 561-564. Bibcode : 1979 natur. 282...561C / 장경애 박사와 레스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빛의 굴절과 경로로 별 이미지와 밝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연구)에 발표한 학위논문으로, <Ghang-Refsdal Iens : 장-레스달 렌즈>라는 학술용어를 탄생시켰다. 이 논문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 사이에서 자부할 만한 많은 인용 회수로 당시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청주대학교에서 광학 가르치며 대학원 원장까지 역임
1985년에 장경애 박사는 해외에서 귀국했다. 그렇지만 오랜 여독과 한국에 남아 있던 가족을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낸 아픔으로 외국 생활을 접게 되었다. 그리고 청주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청주대학교에서는 천체물리나 천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광학을 가르쳤다. 당시 노동부에 광학기사 시험을 과에서 노동부에 발의하여 통과시켰고 지금까지도 광학기사 시험은 존속되고 있으며 후학들은 지금의 광학분야에서 크고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들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청주대학교에서 퇴임하고 초반에는 후학 양성에 미련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풍토에서 지방에서 그것을 할 일은 아니라고 확신했고, 그리고 찾은 것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라는 것이 또 다른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다시 몇 년을 보내다 지인의 추천으로 작가 모임인 ‘순후회’에서 그림 그리기 시작했다. 중고등 학교 미술부 활동을 뒤로 하고 성인이 돼서 정식으로 ‘순후회’에서 첫날 붓을 잡았을 때 그는 너무 설레서 화폭에 몇 줄 그은 것으로 세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것이 3년 전 일이었다. ‘순후회’ 회원들 그림 경력은 당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그림을 잘 그려서 도저히 설자리가 없을 만큼 버거웠지만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림에 대한 불씨를 끌 수는 없었다. 그래서 3년을 쉬지 않고 취미를 넘어 열심히 고민하면서 그렸다. “나의 생각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보고 싶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고뇌를 나누고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누구의 것과도 유사성이 있어서는 안 되고 나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 보고 싶은 것, 그래서 나의 영혼과 함께 동조하고 공감하고, 그렇게 세상을 편안하게 되도록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장 박사는 누구든지 그림을 보고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얻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슴에 담은 ‘예술 혼’ 되살리며 제 2의 인생으로
“자연과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인문과학이나 예술과 달리 과학은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과 개발의 잣대가 임의의 잣대가 아니라 자연에 원칙적으로 기존하고 있는 공리와 섭리를 어긋나서는 아무것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틀리고 맞다는 것에 기준을 두고 분석이 이뤄지기 때문에 연륜에서 묻어나는 인간적인 노련미와 때론 실수까지 묻어가는 잘못도 예술이나 기예로 승화될 수 있는 장점이 배제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 박사는 “과학에서 객기나 주관은 때론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지만 예술은 저마다의 색깔을 개성이나 독창성이란 이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이다” 고 덧붙였다. 예술이란 범주에서 자신의 주장과 표현의 자유가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쾌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자신의 기량에 표현과 자유의 범주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면 그 역시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장 박사는 과학과 예술을 폭넓게 경험한 사람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펼친다. 그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좌절하고 고민에 빠지고 그런 길을 가게 될 수도 있으나 내면의 고민이 진심으로 깊어 가면 해결도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또한 장 박사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리면서 색의 조화를 즐기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전 화면을 구성하는데 한 치도 눈길을 놓지 않고 진솔한 마음으로 이끌면 좋은 그림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보이지 않는 규칙과 묵약적인 규율이 있는 것이 예술이고 그 반대가 과학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1천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해놓아 개인전도 몇 차례 가질 만큼 저력이 있음에도 세상에 선뜻 내놓지 않고 있다. 이유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음에 오히려 누가 되질 않을까라는 염려 때문이란다. 너무나 솔직하고 겸손하다. 치열했던 학문과 진실한 습관에 예술의 혼(魂)을 더 해가는 제2의 인생, 이런 열정에 인간미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작가다. 건강한 작품 활동에 많은 응원을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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