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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필묵의 경계를 허문 독창적 필력의 서예대가
천서영 기자  |  yesyounglif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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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09: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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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양 이영준 서예가

운양 이영준 서예가는 고식적이고 千篇一律(천편일률)적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임서형 작품을 과감히 탈피하여 ‘그림인 듯 그림 같은 그림 아닌’ 서예를 창작하였다. 갑골, 금문, 예서, 전서, 해·행·초(해서, 행서, 초서)를 전부 어우르는 융합서예를 기치로 서예의 심미안을 키우고 法古創新(법고창신) 守破離(수파리)의 정신을 고양하여 중국의 서법, 일본의 서도보다 한 단계 우위에선 위상 예술의 혼이 빚어내는 독창적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운양 서예가는 창조의 본질에 충실면서 미래에도 끄떡없이 통용되는 남과 다른 집, 藝家(예가 : 예술적인, 아름다운, 멋있는 그림 같은 집)을 동네 마을을 구축하는 온전하고 완전한 書藝家(서예가)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글자의 표정과 몸짓이 보이는’ 다채로운 매력의 서체, ‘운양체’의 매력에 함께 빠져보자.

墨香(묵향)에 사로잡혀
붓으로 인생에 언어를 더하다

운양 서예가는 고려 충렬왕이 하사한 지명 충청남도 ‘서산’(瑞山) 출생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습자 시간에 정규과목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배려에 의해 특수 과목으로써 한글서예를 정주상 선생의 최본을 교본으로 배우면서 붓글씨를 접했다.
운양 서예가는 “적성에 맞고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지 환경미화용 글씨로 선정되고, 서산군 대회에 수상하면서 서예와의 운명적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운양 서예가는 1969년,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비원 앞 ‘동방연서회’ 특강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면서 안진경 안근례비를 법첩으로 3개월간 여초 김웅현 선생의 지도 아래 한문 서예 기초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서예의 길에 입문하였지만, 시문 출신 대학생의 경제적 부담이 컸던 탓에 배움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연세대학에는 미술과 서예를 동시에 어우르는 동아리 연우회가 있어 서예반 가입을 하고 싶었지만 학업에 아르바이트, 과외까지 병행하느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단념했다고도 덧붙여 말했다.
운양 서예가는 “대학 4년간 간헐적 독습으로 붓을 잡는 정도였죠. 4학년 여름에는 동방연서회 주최의 ‘휘호대회’에서 한글부문에 호기 있게 참여했지만 낙선된 기억도 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운양 서예가는 대학 졸업 후 효성그룹 동양나이론에 입사하여 바쁜 직장생활에 적응하며 한동안 붓을 놓고 살았다. 하지만 전시회와 서예에 관한 책들을 통하여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는 퇴사한 이후 해외(과테말라) 근무, (주)태창 등에 근무하면서 1999년, (주)이맥스인더스트리를 설립하여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반포송정서실에 등록하게 됐다고 말했다.
운양 서예가는 “이때부터 거의 매일 집중적으로 서예 연마의 길에 들어섰죠. 본격적인 서예실기에 매진하여 밤을 새고 한국서예협회공모전 출품준비를 하고 묵향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림인 듯, 그림 같은
그림 아닌 ‘운양체’

운양 서예가는 文房四友(문방사우) 중 벼루 수집을 위하여 중국 북경 유리창문화가를 수시로 방문하였으며 2008년, ‘과천추사서예대전’에 추사체 입전 이후 추사선생의 書예술세계에 매료되어 현재까지 추사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대 서예의 흐름과 일본의 전위서예 등을 접하면서 전통 서예를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세상 하나뿐인 서체를 창작해냈다. 운양 서예가는 ‘글자의 표정과 몸짓이 보이는’ 디자인적 형상미와 동태적 조형의 세계를 컨셉으로 한, 다양하고 다채로운 조형언어인 ‘운양체’를 탐구·개발하며 충청도 고유의 동양과 문화가 융합하는 淸風明月 沄陽風流(청풍명월 운양풍류)를 모토로 서예사적 획기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운양 서예가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운양체가 대한민국 독창적 예술의 혼이 빛나는 산물이 되어 세계 속에 수준 높은 문화의 꽃을 피우며 운양체로써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문화 강국이 되는 그날을 함께 기대해본다.

- 운양 서예가 작가 노트 -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默海(묵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高山峻嶺(고산준령) 그 높은 筆峯(필봉)을 향하여 오르고 또 오르고 오르다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니 그 목표, 묵해에서 마음껏 유유히 수영하고 仙筆峯(선필봉)의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심을 패기와 오만이 부른 신기루인가?
나의 영원한 스승 추사선생께서도 70평생에 -磨穿十硏 禿盡千毫 (마천십연 독진천호)-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 정도의 고단한 노력 이후에야 神筆경지에 도달하셨다하니,
붓을 들을 힘이 있는 한 이제 겨우 切磋(절차)단계를 끝마치고, 옥돌 다루듯 琢磨(탁마)가 끝나는 그날까지 沄風齋(운풍재)를 지키면서 萬字堂(만자당)을 세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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