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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는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그려요”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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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30  08: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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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옥선 작가

보는 이들이 편히 해석해 감상하도록 배려한 작품들
작품에 제목을 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경우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화가들은 작품에 제목을 다는 것에 부정적이다. 어떠한 형태 건 작품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생기면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 온전히 감상하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최옥선 작가도 비슷한 이유로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최 작가는“그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화면 안의 형태와 색을 감상하며 위안과 쉼을 얻기를 바란다”고 피력한다. 그에게는 제목이 안 달린 작품들이 많다. 무제(無題)를 정한 이유는 보는 이들에 따라 달라지기에 나름대로 편하게 해석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최 작가의 이런 작품들은 2014년에서 2017년 사이에 완성된 것들이다. 작품은 단순한 점, 선, 면의 구성과 색의 조합이 잘 이뤄져 화면을 군더더기 없는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몇가지 예를 들어, 무제-14-10-1은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연처럼 자유를 향해 날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무제 17-10-1은 2017년 작품으로 자유 의지가 아닌 보이지 않은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인간을 표현한 것이다. 무제-17-20-1은 오래된 고목나무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월의 깊이와 여러가지 심상들을 밝은색으로 표현했다. 물론 제목이 들어간 작품도 있긴 하다. ‘홍도’, ‘사랑’, ‘달밤’ 등이 그러하다. 단순한 회화의 틀에서 성향이 바뀐 것은 2014년 3회 개인전 때부터였다. 작가가 홍도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아 좀 더 굵고 강렬한 선으로 ‘홍도1’ 을 완성한 뒤 변화가 시작됐다. 이때부터 긁고, 판화처럼 오려서 찍는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이 바뀌었다고 한다. 작품들은 인터넷의 ‘오픈갤러리(https://www.opengallery.co.kr/artist/A1007/)’에 소개가 되어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 무제 17-10-1

서양재료와 전통소재로 완성, 수작(秀作)으로 호평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림에 따라가요”최옥선 작가는 예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작품은 반구상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도성 없는 자유로운 선, 면, 점을 기본으로 한 추상에 가까운 작품이 주를 이룬다. 최 작가의 작업은 두 가지 방식에서 시작점을 찾는다. 하나는 캔버스에 기본적인 밑 작업 후 어떤 힌트에 따라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구성해 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소재를 정해 의도적으로 구성해 가는 방식이다. 대부분은 전자의 방식으로 ‘그림에 몸이 따라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캔버스와 당시의 재료에 맡겨 의도하지 않으면서 결과물이 탄생하는 자유로운 창작에 몰두한다. 최 작가의 작품은 특히 서양의 다양한 재질을 쓰지만 동양적 요소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낸다. 이렇게 해서 현대 추상화의 색다른 수작(秀作)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중에는 마치 서양화로 오해할 정도로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캔버스와 유화 물감으로 동양적인 느낌을 낸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면에서 최 작가는 이를 잘 표출하는 흔치 않은 작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양의 재료들을 가지고 그린 그림에서 동양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최옥선 작가가 동양화스러운 서양화를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민화와 보자기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민화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함과 일탈성, 보자기에서 보이는 추상성과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종이나 비닐 등 재료로 물감을 칠하거나 찍거나 긁고, 때로는 마티에르 기법 등으로 마치 한지를 찢어 붙인 듯한 독특한 느낌을 캔버스 위에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평소에 민화, 보자기, 국악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책도 많이 보며 작품 모티브를 찾는다.“기교보다는 단순화된 관심과 경험이 몸으로 체득되어 다른 방법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내 작업의 토양이 되어 줍니다”

교직과 병행하며 오로지 작품에 혼신 쏟는 작가
최옥선 작가는 33년여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작가 활동을 해간다. 96년에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교직 생활 중 23년의 작품을 하면서 한시도 작업을 놓지 않고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오로지 그림만 생각하는 그이다. 작업은 새벽 4시에서 7시까지에 이뤄진다. 오후 시간은 보통 밑 작업으로 하고 새벽에 집중 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방학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더 많은 작업을 한다. 이렇게 수십 년 몸에 밴 습관적인 작업은 일상이 되었다. 최 작가의 그림 작업은 단순히 앉아서만 하는 일이 아니다. 재료를 다양하게 쓰기에 앉거나 일어나서 몸을 늘 움직이며 작업을 하는 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밑칠하고 찍고, 말리고 긁고, 기본 작업 위에 그림을 그리기에 그만큼 시간도 많이 들고 번거로움도 많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이다. 남들은 여행을 가지만 그보다는 고스란히 작업에 혼신을 쏟아 붓고 있다. 작품은 사람의 심성에서 나오는 듯하다. 아무리 작업을 오래 하든 작품을 잘하든 작가의 인품이 그림 속에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실상은 자신들이 잘 모를 수 있다. 최 작가는“어려운 그림만이 좋은 그림은 아니다. 겉멋이 아닌 깊이 있는 그림을 풀어내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 작업을 원한다”고 작품 철학을 내비치며“메세지를 던져 사고를 강요하기 보다는 그림 보는 이들에게 마음을 치유하는 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배려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앞으로 명주나 실크 등 자수를 활용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그녀. 복잡하고 바쁜 현대인의 삶, 잠시나마 생각을 멈추고 온전히 쉼을 느끼고 싶다면 최옥선 작가의 편안한 쉼터 같은 작품을 한번 둘러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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