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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반세기동안 맞춤양복 외길인생을 걸어온 제일양복점
김태인 기자  |  red39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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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8  09: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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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양복점 매장 전경

1970년대 만해도 동네에는 양복점이 흔했다. 특히 기능올림픽의 붐과 함께 맞춤양복은 전성기를 이뤘다. 사람들은 첫 직장 출근복이나 결혼할 때의 예복, 혹은 예단 정장 등을 양복점에서 맞춰 입었다. 하지만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양의 유행과 진보된 기술을 앞세운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동네 양복점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에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호텔 인터내셔날 1층에 위치한 제일양복점(Prezzo Massimo)의 김규환 대표는 반세기 동안 오롯이 한 사람을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바느질을 하며 한 길만을 걸어오고 있다. 이에 올해로 재단사 인생 50주년을 맞는 김규환 대표를 만나보았다.

창원에 얼마 남지 않은 양복 장인
먹고 입는 것이 귀하던 시절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창원시 마산합포구(당시에는 마산시)창동의 유명 양복점에 사원으로 들어갔다. 당시 쌀 한 말 값이 1000원쯤 했는데 한 달 월급을 1000원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밤낮으로 공부하며 재단사의 꿈을 이어 나갔다. 양복기술자가 되기 위해서는 허드렛일부터 견습생을 거쳐 하의, 조끼, 상의제조, 재단 등 총 5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양복기술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최소 십수 년을 거치지만 정작 고객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밤낮없이 끝없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맞춤양복 전문 기술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호텔 인터내셔날 1층에 위치한 제일양복점(Prezzo Massimo)은 1991년 제일 상가에 개업을 하면서 제일양복점으로 상호를 정했다고 한다. 그러다 외국인과 중견기업 대표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인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고 호텔 이미지에 맞게 상호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에 Prezzo Massimo로 바꾸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고객들은 Prezzo Massimo보다는 제일양복점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렇게 20년 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난 뒤 잊혀져 가는 맞춤양복의 활성화를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는 재단사 일을 시작한 지 45년이 지나서야 전국기능경진대회에 처녀출전하게 되었고 첫 출전에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의 마스터 테일러 기술교류경쟁, 제38회 이태리 세계 재단사 연맹 총회에도 초청받아 참석하는 등 한국의 재단 기술을 전수하고 교류하기 위해 활성화를 꾀하고 있으며 그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에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제1회 명품 수제 맞춤양복 전시회의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실력이 고스란히 양복을 재단으로 전달되면서 현재 김 대표에게 옷을 맞추로 오는 고객들이 3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디에도 없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수제맞춤양복
“손님이 들어오면 체형과 성격, 뭘 하는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대부분 처음에는 까다롭게 굴지만 고객이 욕구하는 부분을 100% 이해하고 반영해 주문이 끝나고 양복이 나갈 때는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몸 체형이 정상인 듯 보이나 자세히 보면 어깨가 쳐지거나 등이 굽거나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미세한 부분까지도 한눈에 보입니다. 이런 분들은 기성복을 입어도 옷맵시가 나질 않기 때문에 맞춤을 해야 합니다.” 기성복이라는 것이 결국 옷에 사람을 맞추는 구조다. 가슴과 신장을 중심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아무리 다양한 사이즈의 제품을 내놔도 고객 체형과 감성을 모두 만족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반해 맞춤양복의 경우 개인별 만족도는 물론, 착용감이나 내구성도 기성복 보다 훨씬 뛰어나다.
“맞춤정장은 고객의 체형을 최대한 고려하여 제작되어야 합니다. 고객의 체형을 살펴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시킬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맞춤양복은 기계의 힘을 빌리는 기성복과 달리 순전히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체형을 스무 군데에 걸쳐 일일이 재서 제작을 해야 하다보니 그 사람에게 잘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타인과 체형이 같은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때문에 개개인에 대한 고려 없이 평균 체형에 사이즈만 다르게 나오는 기성복과 비교할 수가 없지요. 간단한 예로 팔이 짧으면 소매를 줄이면 됩니다. 하지만 팔이 길면 기성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등이 굽은 분들은 곧아보이게, 다리가 짧은 분들은 길어보이게 하는 등 신체적 약점을 보완할 수가 있습니다. 손님들이 옷감을 직접 선택하니까 색상별 디자인별 옷감도 다양하고요. 지금 이 가게에 있는 옷감만 수백 종류가 됩니다.“ 이와 더불어 맞춤양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원단 소재이다. 어떤 원단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패턴이어도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옷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복을 만드는 재단사에 따라 옷이 결정되게 된다.
그중에서도 김 대표는 맞춤양복이 기성복과 차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접착 방식으로 양복을 재단하는 거에 있다고 전했다. 비접착 방식은 양복 겉감과 안감 사이에 심지를 손바느질로 연결하는 최고급 수트의 봉제 공정 중 하나다. 작업과정이 까다롭다 보니 다룰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키톤, 까날리, 브리오니, 체사레 아톨리니 그리고 포랄 사(社)의 ‘빨질레리’ 정도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링재킷 사(社)가 유일하다. 그만큼 국내 시장 도입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비스포크(bespoke: 주문자의 재단사가 패턴제작, 가봉, 완성에 이르기까지 주문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모두 관여하는 것을 의미), 100% 수제, 풀 핸드메이드 혹은 비접착 손바느질 제작 방식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진정한 수제맞춤정장 제작방식입니다. 때문에 맞춤양복 장인들이 직접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제작하며 오로지 한 분만을 위한 패턴이 만들어지고 전문가 손길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정장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고 전했다.
50년 동안 오롯이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고 있는 김규환 대표. 5년 전 중국의 어느 기업 회장이 우연히 그의 양복점을 알게 되어 그를 통해 옷을 맞추게 되었는데 김 대표가 만든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 상해에 양복점을 차려 줄테니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외국인들도 김 대표가 만드는 옷을 입고 만족할 정도로 제일양복점은 이미 정평이 자자하다. “십년 된 기술자는 조금 알 것 같고 이십년 된 기술자는 잘 알 것 같지만 삼십년 된 기술자는 오히려 더 어려운 것이 기능인 거 같습니다”며 50년이 된 지금이 오히려 더 어려운 거 같다는 김규환 대표. 편안함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수제 맞춤정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런 좋은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전수받을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누구든지 기술을 전수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라도 매장을 방문해 달라고 하는 그를 통해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기계소리가 아닌 한 사람만을 위한 마름질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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