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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활동이란 속세의 혼란함을 뒤로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벗”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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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22  0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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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천 최승우 문인화 작가

문인화는 그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선비나 사대부들이 취미삼아 그린 그림을 일컫는 말로서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화가, 즉 화공들의 그림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문인화의 개념은 중국 북송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화나 서예, 인물화, 묵죽화, 말그림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는 전문 화공들의 그림이 주 고객이 되는 왕실이나 귀족 등의 필요에 맞추어 다양한 기교로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대에 집중되어 있다면 문인화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기보다는 작가의 순수한 예술적 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그에 따라 외부적인 기교보다는 작가적인 심상을 담아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북송시대에 생겨나 원나라 말기에 꽃을 피운 문인화는 한국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고려 이제현(李齊賢), 김부식(金富軾), 조선 강희안(姜希顔), 강세황(姜世晃), 이인상(李麟祥), 심사정(沈師正), 김정희(金正喜) 등 대가들의 작품을 남긴 바 있으며 현재도 여러 작가들을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문인화의 특성은 특정한 기교나 외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붓을 잡은 작가가 어떠한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나 모양은 물론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 역시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천 최승우 문인화 작가의 활동은 굉장히 주목할 만하다. 임천 최승우 문인화 작가는 2004년 대한민국서화대상전 금상, 2017년 전국공보대전 초대작가 초청전 한국미술관 우수작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150여 장 이상의 상을 수상하고 충청남도미술대전, 대한민국 국제미술대전, 평창 동계올림픽 세계한국문화예술대전, 3·1운동100주년 기념 평화미술제, 대한민국서화대전 등 다양한 미술제의 초청작가 및 심사위원으로서 100여 개 이상의 위촉장 및 감사패를 받는 등 활동했다. 여기에 더해 UN기구로부터 봉사상 수상, 보이스카우트 훈장인 동장과 은장 수상 등으로 활발한 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봉사에 활발한 활동을 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서예, 우표, 수석…한시도 손에서 작품을 놓지 않았다
충남 천안시 직산면에서 태어난 임천 최승우 작가는 1960년대부터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고등공민학교에서 11년간 쌀 한 가마 월급을 받으며 교사로 근무할 정도로 강한 봉사의식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이후에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중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성환동성권장중학교에서 4년간 책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교생 교과부상 배교하며 타 중학교 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4년간 봉사를 했고 천성중학교에서 보이스카우트 활동으로 23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교육자로 정년퇴직한 베테랑 교육자이며 봉사인이다. 특히 2000년 도쿄 마라톤에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세우고 2002년 아시안게임 마라톤 부문에서 우승한 바 있는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 역시 천안에서 태어나 최 작가의 제자로서 공부한 적이 있다는 점 역시 최 작가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다. 또한 40대부터 제자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 주례를 20여 회 서는 등 많은 제자들에게 신뢰받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예술 열정은 1960년대 우표수집부터 시작하여 49세에 서예, 57세 때는 풍수지리와 수지침 및 도자기, 60대의 나이에 수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평범한 사람은 한 가지 분야에도 정진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기적적인 몰입의 힘을 가져다 준 셈이다.
임천 작가가 관심을 가졌던 예술 분야들에서 보여주는 몰입의 힘은 깜짝 놀랄 정도다. 우표 작품의 경우 충청남북도 우표전시회에 16회 출품하여 체신청장상을 16회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금상 수상으로 천안신문에 기사가 나는 한편 전국우표전시회에서 대은상 등 체신부장관상만을 11회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TJB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여기에 충청체신청 관활 임직원 연수 특별 강의, 충청 관내 우체국 강의 및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우표 관련 강의, 충청우표전시회 심사위원으로 10여 회 참여 등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사진 분야의 경우는 더욱 놀랍다. 천안노인종합복지관에서 방일원 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임천 작가는 초파일날 절에서 안식구를 데리고 상을 차리고 등을 걸어놓은 장소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산사의 밤과 은은한 등의 빛, 그 어떤 삿된 잡념도 없이 마음속 깊이 숨겨진 소망을 담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이 어울려 촬영 당시에도 모여 있던 관광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이다. 또한 해당 사진은 전국공모전에 출품하여 생애 최초로 입선을 받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그것을 계기로 사진작가의 길 역시 걷기 시작한 것이다.

“도전은 미래 성공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자꾸 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 임천 작가는 사진작가로서 한국사진가협회 정회원 등재를 목표로 하였다. 한국사진가협회에서 공식 인증하는 강의를 두 번 들어 점수를 취득하고 전국 사진 공모전에서 세 번 이상 입선을 하여 점수를 취득해야 하는 등 험난한 앞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임천 작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열정으로 사진을 찍고 공부를 하면서 점수 50점을 1년 만에 취득해 한국사진가협회 정회원이 되면서 다양한 사진 관련 활동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임천 작가의 기억에 남은 사진 관련 활동은 음성 품바축제 사진전으로 제출한 사진 작품 4건 중 1건은 동상, 3건은 입선을 받은 기억이다. 이에 더해 천안 12경 및 천안사랑 전국사진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이렇게 비록 빛을 발하기까지 많은 어려운 시간이 있었으나 그 노력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노력은 거짓이 없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수석에도 매력을 느껴 한국수석회 충청남도 지역회장, 천안수서연합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전국 탐석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등, 관심을 갖는 순간 그의 열정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그는 송암 박재호 회장님의 개인전시회 도록에 축사와 축화로 참가하였으며 전시에도 참여하는 등 수석인들 간의 유대를 위해서도 힘쓴 바 있다.

문인화의 매력은 혼란한 속세를 잠시 떠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
이렇게 여러 가지 분야에서 강렬한 열정으로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임천 최승우 작가. 하지만 ‘임천 최승우 작가’의 이름을 가장 빛나게 하는 분야는 역시 문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천 작가는 1997년 본격적으로 문인화에 입문하여 2009년에 김진국 선생님께 사사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문인화에 대한 자신의 능력과 끌림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당시 7군데의 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모두 특선을 받은 것은 심사위원들은 물론 문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있었던 자암 김구선생 추모서예대전에서 연꽃 작품으로 차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당시 4년 만에 초대작가 두 명이 탄생하였는데 그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자암초대작가 회장으로 선임되어 중책을 맡고 있기도 하다.
도자기 분야에서도 선생님과 함께 이천 도자기 공장에 가서 선생님께서 그리는 것을 보고 이후 혼자 도자기를 사서 직접 그리기 시작하는 등 노력을 거듭했다. 여름 내내 이천에 차를 몰고 다니면서 도자기를 그려 전국전에 출품하는 노력으로 도자기 초대작가로서 다양한 초청을 받은 바 있다. 풍수지리도 2년간 배워서 서울에서 여러 번 강의를 진행했고 수지침도 배워서 수술을 권유받은 증상을 수지침으로 고치는 등 여러 사람들을 응급 처치한 사례를 책에 여러 번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거듭하는 그에게 작품 활동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해서 임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우 심플하면서도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사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마음먹은 대로 작품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고통과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분명히 원하는 작품을 얻게 된다는 것. 즉 많은 연습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술 작업은 험난하면서도 힘든 길이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 임천 작가의 설명이다. 예술 활동을 통해 속세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예술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부분은 과거 문인화를 그렸던 문인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세속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워지고 순수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여기에 더해 그림을 통해 세속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즐거움을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그림을 봐 주는 모든 이들과 공유하며 그림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것이 자신이 예술을 하는 큰 보람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임천 작가는 특히 흡족해했다.
그렇다면 임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임천 작가는 문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굳히는 먹의 색깔과 음양(농담)의 균형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음양의 밸런스는 작품이 죽느냐 사느냐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노력 없는 대가는 없다는 것이 나의 철학…예술의 가치와 전통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임천 최승우 작가. 놀랍게도 그의 관심은 예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오랫동안 교육자로 활동해 온 임천 작가는 퇴직 후에도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생각으로 재직 때부터 전통문화와 효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관련 칼럼을 충남저널과 충남일보에 게재하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170여 회의 특강을 하는 등 교육이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소중한 우리 전통 예절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23년간 예절황동을 이사, 법정이사 부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후배에게 넘겨주고 자문위원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노력 없는 대가는 없다는 것이 저의 인생 철학입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계속 예술가로서, 교육인으로서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는 임천 작가의 한마디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게 똑똑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대의 세태를 날카롭게 일깨우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임천 작가는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도 예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예를 회화에 비해 쉽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자신의 호 임천을 딴 갤러리를 만들어 우표, 서예, 그림, 사진, 수석, 도자기 등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전시하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한 생에 동안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후세 사람들이 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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