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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이상향 표출·음양 조화의 백미(白眉) '구름천사'”'금강산의 향연', ‘백두산 200점’…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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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27  0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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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천사 91x116.7cm 캔버스에유채 2015.

황금 물결 출렁이는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아 엮어 목에 걸던 기억이 손에 잡힐 듯 아스라 하다. 추석이면 동산에 중추 명월이 떠오르고 낮에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고요하고 아담한 산수화 한 폭이다. 전설처럼 남아 있는 태봉산을 옆으로 끼고 증기 기관차가 극락강 숲속으로 미끄러져 가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면 차마 서글퍼진다. 경양방죽, 태봉산, 말바우, 말 무덤 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도 모자라 재개발 명목으로 온통 아파트와 상가 숲으로 변했다. 안타까운 심경은 형용할 수가 없다. 고향의 상실(喪失)에 대한 비애(悲哀)는 답답증으로 왔다. 끝이 없는 고향에의 그리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 노의웅 화백의 글 중에서 >

‘구름천사' 비롯 3500점 전시, 쉼터로 자리한 ‘노의웅미술관’
광주시 남구 양과동 수춘 마을. 나주와 맞닿은 이곳의 주변에는 제법 큰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하여 연꽃 방죽이다. 물빛을 흐르는 하늘 구름이 두둥실 고요하고, 뭔가를 뿌려줄 것처럼 길게 늘어선 구름 떼가 정말 멋있다. 큰길에서 호젓한 길을 따라 포충사 입구에 서면 이정표가 나온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구름 끝자락이 머문 곳에 제법 멋진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이 증축해 3년 전 개관한 ‘노의웅미술관’ 이다.
이곳은 서양화가 노의웅 화백이 400평 부지에 자택을 비롯해 작업실, 전시관 등 3동을 증축해 자신의 소년 시절 작품 등 총 3천5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작품은 두 달에 한 번꼴로 교체되어 전시된다. 깔끔하게 정돈된 전시관은 환타지한 그림들이 아주 많다. 두 사람이 껴안고 행복한 표정을 짓거나, 사람 형체를 띤 구름이 마을에 꽃을 뿌려주는 그림들이 대형작품 양 옆으로 걸려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구상 화풍에서 새롭게 대상을 재조명하는 비구상들이다. 오방색 특유의 음양 조화의 기법으로 눈길을 끈다. 이름하여 ‘구름 천사’ 시리즈다. 굳이 대상을 관조하는 게 아니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시시각각 변해 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향연이 화폭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수놓는 그림들은 너무나도 앙증맞고 귀엽다. 수진무구 하기가 이를 데 없고 해맑고 청순한 아기 천사들이 구름으로 형상화돼 펼쳐지는 진풍경은 황금만능과 이기주의에 물든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세파에 허덕이고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활력을 주는 비타민 같다. 때 묻지 않은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와 무정형의 춤사위가 텅빈 마음을 오롯이 따스함과 감동으로 채워 준다. 어떤 설명이 필요 없이 보는 것만으로 절로 행복해지는 작품들이다. 모두가 세상에 행복만이 깃들기는 바라는 작가의 간절히 마음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은 현재 지역민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장이자 지나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노 화백은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산책하며 시골 아닌 시골의 여명과 석양 사이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큰 꿈을 안고 ‘노의웅미술관’ 이름을 걸고 이곳에 자리 잡았다. 우리 동네에 화가가 이사 온다면 아름다운 동네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으로 오픈했다. 누구나 공유하며 예술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다”고 했다.

‘고향의 향수’로 조형된 작품세계로 공감대 형성하며 소통.
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그곳에서 살다 멀리 떠나든, 아니면 가까운 곳으로 가든 고향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게 마련이다. 노의웅 화백은 광주 북구의 서방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줄곧 살았다. 그리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가족을 데리고 정든 고향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호남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고 은퇴 후 14년 만에 고향과 비숫한 분위기인 지금의 수춘 마을로 이사한 것이 그러하다.
노 화백에 따르면 코흘리개 어린 시절, 개천을 따라서 고무신으로 물을 퍼 올리며 미꾸라지랑 피라미를 잡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50여 년을 줄곧 살아온 고향은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됐다. 후한 인심(人心)을 가진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버렸고, 그 혼자만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동네 이름도, 그 맑고 상쾌하던 공기마저도 모두 변해 버렸다.
지금은 사라진 말바우(서방) 얘기도 들려줬다. 어릴 적 그에게 말바우는 놀이터였다. 거기서 봄이 시작되었고, 인고의 아픔을 이겨내던 나목들에서 겨울이 깨어났다. 이런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칠 때면 노 화백은 붓을 들고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향수와 교감한다고 했다. “말바우에 올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엊그제 같은 데...” 이런 기억이 뇌리에 자꾸만 떠오르고 고향이 살아 숨을 쉬었고, 고향의 자취도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에게 향수는 그림의 본향(本鄕)이다. 고층 건물의 숲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은 노 화백의 그림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삼라만상이 저마다 때깔과 향기로 어우러져 으시대던 고향의 자연 앞에서 노 화백은 세상의 허물과 아집의 찌꺼기를 훌훌 벗어 던지고 진정한 자아 발견의 천연한 꿈에 잠기곤 한다. 고향과 비숫한 환경에서 그는 어릴 적 이야기를 캔버스에 하나씩 풀어간다.
노 화백은 술과 담배를 전혀 안하는 대신 하루에 꼬박 10시간씩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철저한 건강 관리 덕에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많은 작품을 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가 지향하는 최상의 예술 목표는 자신의 세계 구축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순수성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데 모아지며, 오래도록 진척된 예술은 주변으로부터 많은 찬사와 더불어 빛을 더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구름천사’ 외에 일만이천봉 금강산을 형상화 시킨 ‘금강산의 향연’ 도 있다. 이는 이상세계와 상상력을 교합해 자연친화적 부감법을 활용한 것으로 생동감 넘치는 원색의 화려함과 강렬함이 표출되어 압도한다. 또한, 백두산 풍경을 다양하게 담은 200여 점의 스케치도 한 면 가득 채우고 있다. 모두가 민족의 동질감을 일깨우며 많은 얘깃거리가 되어 준다.

'금강산의 향연', ‘백두산 200점’ 등 방대한 작품과 색채로 찬사
노의웅 화백은 내년 2월 23일-3월 1일, 서울 인사아트프라자 1층(그랜드관)에서 ‘구름천사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그의 경력으로 국전 입, 특상 등 저명한 갤러리의 공모전, 개인전 등을 빠트릴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예술의전당 개관 초대전, 파리 중견작가 초대전, 개인전 등 수백 회에 이른 이력을 엿보아도 그의 명망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무게감을 반증하듯 국전 심사위원도 수차례 역임했다. 미술계를 비롯해 광주와 나주의 웬만한 인사들이라면 그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가족으로 부인 임순임씨도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5남매 중 세 딸 역시 공예, 서양화, 조각을 전공했으며, 손녀까지 미대에 진학해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미술관 건립 이전에는 한 가족 5인전, 한 가족 6인전, 노의웅·임순임 부부전 등 가족 전시회를 열어 남다른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미술관 입구에도 가족 작가 명패가 나란히 붙어 있다.
노 화백은 화가의 길로 들어서 수많은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를 상징하는 건 여전히 ‘구름 천사’다.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동심을 그리는 향수와 삶의 이상향이다. 그가 살던 고향이 재개발로 변질된 데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들이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평생 서양화라는 재료를 사용했지만 가슴에 묻어둔 향수의 끊임 없는 변신이었다. 고향의 향수는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작업은 세상과 환경이 바뀐 지금도 미디어와 SNS 등에서 변함없이 많은 이들과 소통하면서 잔잔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무엇을 하건 결국은 개천을 따라 피라미 잡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정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림의 주요 소재인 산, 구름천사, 초가 등 자연의 모두가 그때 풍경들이다”
노 화백은 어찌보면 끊임없이 예술로 삶을 영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정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색채는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멈추지 않는 생명 의지의 거듭남을 배우며 허물 벗기를 감내하고 있다.” 면서 “옛 시절을 떠올리며 한 칸 초옥을 짓고 싶다. 관념에 머물지 않는 진실한 삶의 여망을 담은 상징물인 초옥을 아늑한 마을에 앉히고 자연의 호흡 속에서 한 장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살고 싶다” 고 말했다.
노 화백의 이야기는 고향이 더욱 그리운 가을,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와 너무나 닮아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리하여 캔버스와 닿는 그의 붓끝은 순수한 그 시절 설레임 가득한 소년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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