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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번뇌 망상을 비우며 그 마음이 행하는 것이 중도(中道)입니다
김태인 기자  |  red39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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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28  0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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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황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약수암

종교가 흔히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창조주나 신을 상징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 신에게 빌어 자신의 행복을 구하고자 하는 점에서 볼 때 불교는 어쩌면 종교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방식이나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앙적인 믿음 뿐 아니라 법(法)에 대한 믿음과 구원이나 진리, 마음의 평화를 얻는 종교의 목적에서 같다는 점에서 불교도 종교임에 틀림없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지역민들을 위해 보시를 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 바로 경남 고성에 위치한 약수암의 주지 수운스님이다. 일주문을 들어오는 순간 모든 인간은 부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하는 수운스님을 만나보았다.

중도(中道)란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
경남 고성군 천황산 자락에 위치한 약수암 주지 수운스님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중도(中道)라고 강조한다. 또한 스님은 “자연과 인류는 상생하고 공존하는 존재이며 사람은 자연에 속한 것이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는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감염병으로 절체절명 위기 속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지금껏 해온 습관과 생각을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고 피력했다. 특히 스님은 몸과 정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수행을 강조했다. “몸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도(마음·정신)가 없는 몸은 송장이지요. 참선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라는 화두를 들고 깨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나무에 달린 푸른 잎과 가지를 보았다면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을 모를 수 없습니다. 땅속엔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길러주는 무엇이 있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으면서 모든 것을 하게 하는 성질을 중도 또는 깨달음이라고 하죠.” 이처럼 우리는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집착하고 나와 대립하는 상대는 그르다고 미워하고 욕을 한다. 이렇게 해서는 일시적인 승부만 있지 평화와 행복은 요원하다. 평화와 행복으로 가려면 나와 상대의 입장을 다 버리면서도 상대와 내 입장을 다 아우르는 중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대자유인, 영원한 행복인 부처님이라 한다. 우리 범부들은 흔히 ‘비워라’ 하니 무조건 남에게 양보하고 져주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더욱 더 나와 내 것에 집착한다. 그러는 한 행복할 수가 없다. 마음에 집착하는 생각, 분별망상을 놓아버리면 지혜의 빛이 저절로 나온다. 이와 같이 번뇌망상을 비우는 마음을 행하는 것이 참선이다.
“부처님께서 열반경에서 불성을 얘기하시면서 중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며 또한 없는 것이니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합하는 까닭에 중도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불성(佛性)은 비유비무(非有非無), 즉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완전히 떠나면 역유역무(亦有亦無)이며 또한 있는 것이며 또한 없는 것이니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통하므로 중도(中道)라 하는 것입니다.”

탐(貪)진(瞋)치(痴)를 버리고 하심(下心)으로 깨닫다
지난해 고성군사암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수운스님. “인간이 가장 우월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가 이 무서운 시대를 불러온 것입니다. 인간 위주의 파괴적 삶을 두고 자연법계가 경고하는 것이지요. 이는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인 탐, 진, 치 삼독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에 있으며 그것은 중생 스스로의 동체대비와 자비의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피부(身), 정신(意)은 육근(六根)이다. 육근은 저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으며 이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 108가지 번뇌다. 그런데 이 번뇌란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으면 사라진다. 돈과 명예, 이성에 대한 탐욕 따위가 바람직하지 못하고 시기나 질투가 나쁜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이로 인해 수행과 참선이 필요로 하는 이유이며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수행하는 삶이라는 것이 반드시 힘겹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평상심을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한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그것이야말로 수행입니다. 곧 탐(貪)진(瞋)치(痴)를 버리는 일이겠지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탐욕과 진에, 우치를 삼독이라 했다. 스님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린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라 말한다. “탐(貪)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진(瞋)하는 것은 병을 만들지요. 치(痴)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탐·진·치를 버린다면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행복은 찾아올 겁니다.” 또한 그는 불교에서의 완벽한 삶을 ‘하심(下心)’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을 낮춰 작은 것으로도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또 그것을 위해 진실된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완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도입니다. 어느 쪽에도 편견이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사라지는 것은 육신일 뿐 마음이 아닙니다. 육신은 몸에 걸치고 있는 껍데기일 뿐 선과 악의 마음자리는 한 뿌리입니다. 중생이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깨치지 못하면 중생인거에요. 부처님은 사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습니다.”
중도무문(中道無門). ‘어떤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로 가는 자가 닦으면서 가는 길’이라는 말처럼 참답게 수행하면서 걸어간다면 수행자가 가는 길이 곧 부처의 길이며 깨달음이란 바로 스스로의 ‘열림’이라고 전하는 수운스님. 나의 중심은 나임을 깨닫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참된 나와 거짓된 나를 찾는 것 거짓인 나를 버리는 일이 참선의 시작이다. 때문에 불교의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인간이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유혹에서 벗어나 내 길을 찾고 나의 마음자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곧 부처의 길입니다. 길에서 탄생하시고 길에서 열반하시는 그 순간까지 부처님께서는 절대 평등을 설파하셨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인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갈등과 대립을 벗어나 하루속히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원합니다.” 정작 본인은 낡은 장삼 하나밖에 없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설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묵묵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고 있는 수운스님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위없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있도록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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