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네킹

채집한 꽃과 풀, 곤충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마치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세밀화를 그리는 생태화가 이재은. 예전에 그녀가 주로 작업하던 소재는 명작 세밀화였다.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사실성이 떨어지는 한계에 만족감이 떨어지던 차, 마침 시골살이를 하게 되었고 지천한 아름다운 자연에서 감흥을 얻어 노선을 바꿨다.

사진 속 피사체가 머금은 색은 자연의 그것과 달라 직접 보고 만지고 속속들이 파악한 후에야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과장되지도 인위적이지도 않고 마치 수묵화마냥 은은하게 퍼지다가도 각 물체의 대표적인 특징을 확연히 잡아낸 이재은 작가의 그림은 세밀화지만 수채화같이 정적이다.

새빨간 과육이 먹음직스러운 수박, 촉촉하면서 아삭하게 씹힐 것 같은 오이, 코끝까지 은은한 향이 전해지는 듯한 나팔꽃····. 채소와 과일, 꽃을 그대로 옮기는 그녀의 작품은 0.01mm의 미학이다.

하지만 그저 사실적이기보다는 보통 사람이 자연을 마주했을 때의 순도 100%의 진정성이 더해져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젊은 부부 예술가의 순수한 작가정신과 진정성을 대번에 알아본 화천군청에서 작업공간을 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군청에서 추천한 공간 중엔 멋들어진 현대식 건물도 있었지만 두 작가의 선택은 허름한 폐교. 산골짜기 바로 밑에 자리 잡아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지천에 나무가 깔려 있어 과연 꿈에도 그리던 작업공간인 셈이다.

소멸된 예정인 폐교를 10년간 무상으로 임대받았고 깨진 창문,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교실 팻말을 모두 그대로 둔 채 문만 새로 달았다.

칸칸이 교실은 목수 이정인과 화가 이재은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꾸몄다. 폐교를 마두하고 큰 창을 뚫은 28.1㎡(8.5평)의 컨테이너가 오롯한 네 식구의 삶터가 되었고 흉가로 여겨지던 폐교는 목수와 화가의 손길이 닿아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가구와 그림은 책에 실리고 도시에서 전시되고 있다. 마음 씀씀이가 각별한 두 작가의 야심찬 프로젝트 ‘미술관 시키신 분’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