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동훈 작가

김지오 평론가는 곽동훈 작가의 작품을 보며 그다지 투명하지도 그렇다고 불투명하지도 않은, 은근히 속이 비춰지는 유리(琉璃)의 물성 속에서 주된 모티프가 된 골이 지게 짠 코듀로이 옷이 블루의 다원적인 색상과 함께 구겨지고 주름이 접혀져서 모종의 틀 속에 갇혀져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시간 속의 기억여행을 하는 느낌과 함께 작품을 보는 순간 재빨리 틀의 공간에서 옷을 꺼내어서 다시 주름을 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주름마다 잠재된 기억을 끌어내고 싶다. 주름이 많이 잡혀 있을수록 기억에 더욱 얽매인 듯한 느낌과 함께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강한 집착들이 다투어 마음 한 구석으로부터 소용돌이치듯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된 재료는 유리이다. 유리는 단단한 비결정성 고체(과냉각된 액체)이다. 투명하고 매끄럽고 비활성적인 특징이 있다.

깨어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그 특이한 물성이 지닌 매력을 활용한 예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유리는 사물을 투영하는 방식에 있어서 시각이나 빛의 각도, 그리고 그 두께에 의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허락한다.

그의 작품은 유리라는 물질이 주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변화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이끌게 하며 사유의 사유를 이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산출되는 사유는 과거로부터 사후의 시간의 축적이 내재된 공간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공간 속에 직조된 날실과 씨실로 매트릭스처럼 빈틈없이 짠 옷이 구겨진 주름 속에서 다각적인 서사를 아른거리게 만든다.

옷의 단추 모양과 단추 구멍, 상표, 낡아짐의 정도, 접혀져 있는 세밀함, 접혀져서 볼 수 없는 모양의 구김 상태까지 유리는 그 모든 것을 흡수해 버렸다.

우리의 눈으로는 접혀져 볼 수 없는 부분까지 유리는 흡수하여, 마침내 다 토해내듯이 결국은 적나라하게 옷의 그 어떤 존재론 적 중량을 뿜어낸다.

옷은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세계 혹은 어미와의 만남과 함께 가장 먼저 접하는 매개체이다. 지위와 사람의 또 다른 얼굴, 현재의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이차원적인 성질을 지닌 이중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서 옷을 접할 때 처음으로 주름이 잡히게 되며, 시간의 두께에 따라 어떠한 타자의 만남과 인연 속에 그 주름은 상생의 날개를 다는 듯이 무한대로의 연속적인 주름을 잡아간다.

이 때 나의 존재, 나의 주름은 어떠한 타자를 만나는 순간에 결정되어지며 타자로 인해 나의 존재의 결정이 만들어진다. 나는 항상 새로운 배치와 배열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리라는 투영할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배치와 배열 속에서 구겨지고 주름 잡힌 옷. 만년빙처럼 얼어버린, 옷이 들어앉은 틀. 그 틀은 전체를 나타낼 수 있는 세계의 공간이면서 개인의 각각의 공간이기도 하다.

틀은 질서가 있고 구속이 있으며 한계를 나타내기도 하며 얼핏 무리하지 않는 안정된 사유를 느끼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질서 속에 순환의 자유와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절망의 요소와 현재의 조건과 상상의 갈망이 몸부림치듯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충동과 타자에 의해 꺾여 지는, 꺾일 수밖에 없는 자유롭지 않는 주름진 옷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주름의 표현은 그의 작품에서 형식미에 대한 탁월한 감수성을 보게 하는 부분이다. 그는 실재의 옷을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고 기이한 주름을 가식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는 늘 골덴(코듀로이)의 소재로 된 옷을 즐겨 입고 실제로 그가 입고 있는 옷으로 작업을 한다. 작가 내면의 기억 속 주름과 그를 둘러싼 타자들과의 부대낌에서 생기는 주름을 도식화한 관념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름은 또 다른 텍스쳐를 만들고 일파만파로 퍼지는 주름들은 새로운 텍스쳐의 도달점까지 순환과 흐름 속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시간여행을 즐기는 행위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유리에 두께를 가하고 블루라는 색을 결합시킨다. 블루는 이지적이고 이상적이며, 영원에의 동경이 배인 색이다.

내성적이고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이라지만 차가운 유리와 블루의 조합은 환상의 듀엣을 이룬다.

곽동훈 작가에게 작업은 작가의 열정과 욕망이 스며든 섬세하면서 신비스런 블루 빛의 향연, 그 속에서의 어떤 새로운 탄생이다.

그의 작품은 단지 현재의 ‘본다’의 의미를 재현해주기보다 유리, 주름 있는 옷, 틀이라는 것들에 의해 개념화가 되어버린 의식을 녹여내어 내면의 사유 속에서 기억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 기억여행의 행로가 어떻게 될지는 각자의 자유가 아닐까. 작가 자신인들 그 행로를 모두 매핑(mapping)할 수 있을까.

그의 전시는 2015. 2. 23(월) ~ 3. 7(토)까지 평창동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며 조심스럽게, 작가가 더욱 이 여행의 행복한 바람잡이가 되는 작품들을 생산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