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광현 조각가/아트 인 스페이스 대표

공공조형물의 예술성에 기념비적 속성을 가미해 다수 조형시설 작업
지난 2015년,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2건의 공공조형물이 선을 보였다. 아트인스페이스가 제작한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DMZ 작전영웅 상징조형물과 강원도 태백 세이프타운의 순직소방공무원 추모비는 기존 추모비와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을 받았다.

아트 인 스페이스의 대표인 왕광현 작가는 북한의 DMZ 지뢰매설 도발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찢어진 군화가 발견된 현장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평화의 발>이라는 조형물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휴전선을 상징하는 기둥과 교류 단절을 의미하는 벽의 형상에 둘러싸인 조형물의 상징은 맨발이다. 군인의 전투화가 아닌 맨발인 이유는 언젠가 DMZ을 맨발로 자유로이 걸을 수 있는 희망, 당시 사고로 다리를 잃은 부상 군인들의 전우애를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작가는 사고를 당한 군인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당시의 상황과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사건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요소와 찢어진 군화의 표현, 155mm 포탄을 발 조형물에 녹여 넣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세월호 구조 작업에 참여한 뒤 민간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헬기의 조종간을 놓지 않고 의로운 희생을 한 소방공무원 5명을 추모하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조형물은 342명의 순직소방관을 기리는 추모비를 겸한 작품이다.

특히 S자와 원형이 조합된 태극의 호를 닮은 곡선처럼 배치한 두 가지 큰 오브제 속 세부 부조와 조각들이 4면에 걸쳐 추모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감상하는 동선의 효율적인 배치로 일반인들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순직한 영웅들의 넋과 교감하도록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또한 헬기와 산, 소방공무원의 중부조와 손으로 표현한 입체조형, 화재현장에서의 불 진압 입상과 희생자 5인의 부조로 이루어져 지식 전달과 추모, 헌화가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이 두 조형물에서 희망, 추모, 염원이라는 감정은 위압감 없이 능동적 소통으로 전해지며, 제한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큰 의미를 전달한다는 특색을 지녔다.

왕 작가는 공공예술가로서 이익보다 메시지 전달이 1순위라는 지론을 갖고 활동 중이며, 아트 인 스페이스 설립이후 6.25 참전비 등 다양한공공조형물 작업 및 지역 내 재능기부를 통한 벽화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개인 작품에서는 보다 거시적으로 확장된 추상적 생성과 기원의 개념을 탐구
작가 개인 소장이나 일부 마니아층에 판매되는 개인 예술품과 달리, 공적 의미를 갖고 제작되어 다양한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공공조형물은 하나의 작품 속 두 개의 영혼이라고도 불린다.

왕 작가의 작품세계도 공공성을 지닌 조형작품과 개인의 의식을 반영한 작품으로 나뉜다. 행위예술가 겸 모교인 서울시립대 강연을 병행하며 개인 작품을 하던 시절보다는 현재의 동료들과 테마가 있는 공공조형물에 천착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개인 작품활동을 통해 작가 본연의 정체성도 보여주고 있다.

왕 작가는 한동안 ‘자연’과 ‘나’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해 왔고, 현재는 인간이 어디에서 유래되었고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에 대해 더욱 거시적인 부분을 상징·표현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이동되어진 공간>은 자연석을 깎아 단면에 평평한 미러스테인레스 스틸을 붙여 인간과 자연, 문명이 결코 떨어진 관계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하늘과 땅, 감상자의 얼굴을 동시에 비추는 열린 개념을 시도했던 것이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생명의 기원>은 더욱 거시적인 사유를 나타냈다.

이 작품에서는 우주의 빅뱅과 방사형으로 확장되어가는 원의 이미지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왕 작가는 예술가로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의식이며, 소재와 재료, 표현방식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탐구하거나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근본 개념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많은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작품에 반드시 개념과 철학을 담아야 하는지 끝없는 논란이 있지만, 왕 작가는 더 나아가 그 개념과 철학이 반드시 계몽적일 필요는 없으며, 현재의 사람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도 예술의 대안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아트 인 스페이스의 일원으로서, 왕 작가는 한가한 시간에 동료들을 위해 직접 요리하거나 매년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며 지친 일상을 충전하는 열린 감성을 갖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는 공공미술의 호불호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인지하고, 마구잡이 식 청탁으로 수주를 받는 것보다는 다수를 향한 감동과 울림을 작품에 옮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왕 작가야말로 작품에 두 가지 영혼을 담는 아티스트의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생업과 표현주의 사이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왕 작가는, 올 8월 코사스페이스에서 지난번 페스타 출품작들과 현재 제작 중인 독창적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을 대중들 앞에 소개할 예정이다.

월간 파워코리아 7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