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동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명예교수

세계 학계에 놀라움을 선사한 새로운 DNA구조 발견
지난 2009년, 크릭과 함께 DNA 이중나선 모델 발견으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은 어느 한국인 학자가 직접 저술한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이중나선 구조의 비밀, Foldback Intercoil DNA>를 건네받고 1952년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만큼 놀랐다.

그 책에는 왓슨도 미처 규명하지 못한 새로운 ‘꺾쇠호나선 진핵산(FBI DNA)’의 자료가 실려 있었다.

DNA 이중나선은 왓슨과 크릭이 제안했지만, 결정적인 증명자료는 프랭클린의 사진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DNA 구조는 마치 완성되지 못한 직소 퍼즐처럼 저명한 학술지에 새로운 자료가 등장할 때마다 띄엄띄엄 덧붙이면서 교과서에서는 해결된 것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이 한국인 과학자의 자료에는 의심할 바 없는 FBI DNA의 전자현미경 사진, 공간 모형으로 입증된 형상과 특징, 기존 학설들에 대한 적용 범위에 대해서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책으로 출판되기 전부터 세계 유전학계의 패러다임을 깬 것으로 알려진 태풍의 핵인 이 저서의 주인공은 김병동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200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그는 고추 분자유전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작물인 고추는 남미가 원산지이고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은 진통, 항암, 항비만과 매운맛을 내는 요소로서 식품과 의학, 약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왔다.

기존 육종기술 선도국은 미국과 프랑스다. 또 일본에서는 캡사이신 성분 중 질소 하나가 산소로 바뀌어 기능은 유지하되 덜 매운 캡시에이트룰 발견하여 물질특허를 획득하였고 의약 및 건강식품 시장을 잠식해 오고 있다.

하지만 식물재료만은 특허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캡시에이트를 최종 합성하는 유전자가 바로 김 교수 손에서 발견되어 한국은 극적으로 일본과의 대결에서 역전승을 올린다.

“한국은 고추 열매에서 캡사이신을 합성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분리하였다. 캡사이신이나 캡시에이트를 유전공학 기법으로 대량생산한다면 우리의 유전자를 거쳐야 하니 한국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김 교수는 연구진들과 함께 고추의 오렌지빛깔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세포질웅성붙임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분리하고, 고추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거대유전자은행인 고추 ‘백 라이브러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내는 성과로 종자산업과 식품, 미래 신약개발, 의학을 연결하여 무한대의 부가가치를 생성할 지식자립의 터전을 닦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분자유전육종 연구는 새로운 원천기술의 보유를 가능케 하여 종자산업과 천연물질을 대량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시키고 융합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김 교수는 고 우장춘 박사 이래 한국의 위대한 육종학자로 인정받으며 국민훈장 석류장을 비롯한 각계의 영예로운 헌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2022년까지 20개 작물의 신품종을 개발하여 수출하는 ‘골든씨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등 국내 분자유전학계의 지적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독보적인 식물분자유전육종기술, 그 연구 의의를 한국이 잘 활용하기를
자신의 연구인생 목표를 크게 실용적인 식물분자유전육종기술, 그리고 기초학문인 분자세포생물학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는 김 교수는 정년 당시 101편의 연구논문을 출판했다.

“3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네이처, 셀의 주요 주제는 생화학과 의학, 그리고 인간 중심이다. 그런데 나는 4년을 뺀 전 기간 식물 전문이었고 1987년 미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원예와 농업 중심의 유전공학을 한국에 정착시키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식물 전문, 특히 고추에 특화된 유전공학 연구는 한국에서는 내가 처음이었다. 그 후 우리나라 채소종자는 고전육종의 틀을 벗어나 분자육종시대로 들어가며 분자표지로 진단하여 만든 고급 종자를 수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신기술 보유로 고추와 캡사이신에 있어서 이제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김 교수는 “미국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수십 년간 연구하여 암 유전자를 찾고 치료법을 개발하였지만 암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처럼 예방의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캡사이신의 효능을 염두에 두고 말하던 왓슨을 만난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왓슨이 30년 넘게 찾지 못하던 DNA 구조의 핵심 비밀을 찾아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능력 이상의 범위는 손대지 않고, 한국에 귀국함으로써 장기전에 들어갔다. FBI DNA는 이중나선에 담긴 유전정보가 복제, 전사, 재배열되는 구조적 수수께끼를 풀어준 마스터키이다. 많은 교과서에 실린 DNA의 이론들에 재해석을 가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활발한 국제협력연구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퇴임하였고 한국에는 연구진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한국이 이 연구에 집중 투자하면 의외로 쉽게 분자유전학의 세계적인 메카로 떠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속 연구세대 양성과 미래의 유전학자들을 키우고자 한림원 일원으로서 사회활동에 여념이 없다는 김 교수에게는 겸손함과 사명감, 신중함이 있다.

골든씨드 프로젝트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넘긴 상태다. 고추 연구를 위해 지난 25년간 FBI DNA를 미루어 두었다. 종자는 이제 다른 분들도 할 수 있지만, FBI DNA는 내 선에서 반드시 마무리하여 젊은 후속세대에게 전수해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FBI DNA 연구가 중단되어 포기한 줄 알았는데 정년퇴임에 임박하여 리뷰논문과 책을 출간하여 난리가 났다.

또 ‘왜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에 내지 않는가?’ 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초기에 사이언스에서 거절된 적이 있다. 이제 와서 그렇게 한다면 귀국한 일이 허사가 된다.

한국은 근세사에서 나라의 주권을 잃었고 혹독한 한국전쟁을 치렀고 현재도 세계 유일하게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세계평화를 유지해주는 국가로서 과학기술의 원천성을 인정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장성한 자식이 때가 되면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 독립해야 건강한 가족을 이루듯이 한 나라도 그 어려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여 다른 나라도 도울 수 있다.

나는 2009년 정년 후에야 느리지만 개인적 자유 시간을 가져 FBI DNA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적 지도자 집단이 형성되고 다국적 연구비사업을 병행함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한 여건이 조성되기 전에 준비 안 된 국제적 노출은 치열한 경쟁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지원금이 늘어나는 건 좋지만 받는 순간 언론인터뷰와 유명세로 연구에 지장을 받게 된다.

그러니 당분간 비용 걱정 없이 순수하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다행히 스웨덴, 영국, 미국 등에서 김 교수의 캡사이신 유전자 연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주지시킨 덕분에 국가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세계 시장에서의 공조를 위해, 은퇴 전문가들이 국제적 대학과 연구기관의 실무자들과 직접 의사소통할 통로가 막힌 구조적 폐단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장래 자신의 역할을 일컬어 교향악단의 지휘자 같은 것이라 말하는 김 교수.

그의 세계적으로 빛나는 성과가 한국 학계와 산업전반에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차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