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넥스 박유재 회장

화학도에서 한국형 ‘휴먼 키친’ 전설의 창시자가 되기까지
거대한 아궁이와 부뚜막의 온수는 온 가족이 먹고 씻을 분량이었지만, 그 물을 데우고 퍼 와서 붓고, 설거지하고 들어서 버리는 과정은 주부들의 허리를 쉴 새 없이 구부리게 하며 오래도록 부엌에 묶어 두었다. 반면 부엌의 파티션을 나눈 몇십 리터의 작은 개수대는 주부들의 허리를 펴고 요리한 그릇을 바로 옮겨 설거지할 수 있었다.

이 편리한 주방에서는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졌으며 마개를 막으면 대야가 필요 없었고, 마개를 열면 개숫물은 알아서 빠졌다.

새마을 운동으로 도심지에 아파트 건립이 붐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의 부엌은 순식간에 바뀌면서, 여성들은 취사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방에서 벗어나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 놀라운 과정에는 ‘오리표 싱크’의 창립자 박유재 회장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빵 하나에 10원이던 시절,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 한마디로 당시 5천 원이라는 거액을 매달 장학금으로 받았던 총명한 대학생이 있었다.

공대생을 꿈꾸며 화학을 전공한 청년, 박 회장은 장학금을 준 기업 대표가 제안한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무역영어, 수입통관업무의 세계에 입문했다.

입사 후 3년 만에 무역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원어민 수준 영어 구사자들에게도 당시 생소한 무역영어를 강의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1961년 5.16 혁명의 혼란과 다니던 회사 도산을 계기로 27세의 박 회장은 무역/유통 사업가로 변신했다. 단돈 80만 원에 ‘영웅들의 벗’이라는, 신의 중심의 무역회사 웅우상사를 창업해 처음에는 화공약품을 판매, 차츰 도기, 욕실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생각은 수입판매보다 제조를 향해 있었다. “수입을 하면 내 이익을 제외한 모든 부가가치가 외국에 있는 것이다. 반면 물건을 제조하여 팔면 한국의 전기, 한국의 자동차 운송,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합리적인 주방가구 설비에 대한 공부가 시작되었고, 가장 핵심 요소인 싱크대가 탄생되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맞물려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며 ‘부부애의 상징’한 오리 로고에 KS마크까지 획득한 싱크대는 대다수 아파트 단지의 필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입식주방’ 창시에 이어 ‘휴먼 키친’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화에 맞추기 위한 발돋움과 도전, 그리고 성공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그 점에서 BI&CI통합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룬 에넥스의 사례는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과거 오리표 싱크가 에넥스로 무사히 정착한 비결은 바로 세계화와 현대화, 그리고 부엌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한데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이름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사랑을 받은 브랜드명을 왜 바꾸느냐? 고도 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직에 당선되어 수행하고 돌아와 보니, 우리의 자부심과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래서 유럽행 비행기를 탔고 유럽의 입식부엌을 다시 공부하며 기계 설비를 들여 기술력을 재정비했다”

또한 박 회장은 에넥스라는 이름을 바꾸면서 기술뿐 아니라 WTO에 걸맞은 국제적인 이미지를 생각해 매장과 인테리어, 직원들의 응대와 전시 방식, 제품까지 모두 바꾸었다.

U.V(Ultra Violet)코팅 도장의 현대식 컬러 부엌, 그리고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한 유해물질이 방출되지 않는 워터본(Water Borne) 도장, 빌트인 가전기기를 도입한 시스템키친, 작업대와 수납장을 버튼으로 상하 조절하는 엘리베이션 키친, 이음새 없는 상판인 SSK미러 상판 등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기술 업그레이드를 완료했다.

그 바탕에는 여전히 주부들이 조리와 설거지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즐기도록 하는 멀티 시스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세계의 주부들은 자동세척기 한 대만 장만하기보다는, 인체공학적이며 과학적인 수납구조를 갖춘 예쁜 빌트인 공간에서 오디오 설비로 송출되는 음악을 즐겁게 들으며 설거지하길 원했다. 박 회장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한 것이었다.

이로써 에넥스는 학회와 여러 기업에서도 인정하는 기업 이미지 변신, 기술혁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엄격한 승계 훈련으로 기업가치 정신 계승이 기대돼
MBC ‘성공시대’ 다큐의 66회 주인공이자, 지난해 한국경영인협회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을 수여한 바 있는 박 회장은 81세의 노장이지만, 그의 작품인 스테인리스 싱크대처럼 녹슬지 않는 체력과 목소리, 미래지향적 태도를 갖고 있다.

2011년 글로벌 경제쇼크를 맞아 회사가 어려울 때 박 회장은 100억 원에 달하는 사비를 투입했다.

“외부 출강에서 늘 강조하지만 148개국 식민지 경험국 중 1만 불을 가장 빠르게 달성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그런데 부정부패, 배려부재와 법규준수 여부가 늘 아쉽다. 엘리트들의 정신무장이 필요하다.”

“사리사욕에 집착하면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기업가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직원이 삶의 터전을 이끄는 장소가 바로 직장이다. 오히려 사재를 털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직원들의 신뢰가 올라가고, 거래하는 아파트 업체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래서 박 회장의 2세 교육은 남다르다. “내가 일궈 온 에넥스의 기업 가치를 앞으로 계승 발전시킬 자질을 지닌 아들이 박진규 부회장이다. 그는 몇 년간에 걸친 현장 근무 요구를 확실하게 수행하고, 경영직에 와서는 좋은 실적 기록하고 있어서 직원들과 협력업체, 금융권까지 신뢰와 믿음을 쌓아 재무 상황도 더 좋아졌다. 또 기업을 경영할 때 보통 단기 업적주의에 빠져 있는데, 오너 CEO 계통은 또 하나의 도제식으로써 장기적 안목을 갖고 현재의 기술을 이어받아 미래에 더 발전하는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해 부회장의 업무를 지켜보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의 경영철학인 가치창조, 인재양성 철학을 잘 이해하고 운영하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40년 넘게 에넥스를 지켜오며, 이제 키친 인테리어를 넘어 종합 인테리어로 성장하는 에넥스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