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숙진 작가

감동을 전하는 그림, 수채화의 매력
네 가닥의 현 위에서 굽히고 펴진 손가락은 제각기 하나의 악기처럼 음을 내고 있는 듯 하고, 가볍게 쥔 활은 비스듬히 누운 채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울림을 전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뒤따르듯 수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만들어 내는 저마다의 음률이 하나로 흘러들어 모이고, 이는 곧 살랑대는 바람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따스한 감동을 선사한다. 네덜란드에서 수채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수십 년간 작품 활동을 해 온 고숙진 작가의 「감동(2003년作)」이라는 작품이다.

고숙진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자라며 늘 자연과 함께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했던 그가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풍경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림을 접하게 된 고 작가는 초·중·고를 거치며 점점 더 그림에 빠져들었고,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네덜란드 Zwolle에 소재한 Hierbij Verkla Art ‘De Muzerie’ 예술학교에 다니며 그가 느낀 것은 호수와 들판이 어우러진 네덜란드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 표현하는 투명한 수채화의 매력이었다. 고 작가는 “네덜란드에서 미술공부를 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던 것 같아요. 초록빛 들풀과 각양각색의 풍차들, 그리고 이를 감싸 안듯 둘러싼 푸른 하늘과 호수가 주는 감동에 매 순간 벅차오름을 느꼈거든요”라며, “수채화의 매력은 한 없이 맑은 투명함과 갇혀진 틀이 없는 번짐에 있어요. 아름답고도 아련한 풍경,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순수한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수채화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결정이었다는 고숙진 작가.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야말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고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려요. 감동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그림에는 그 순간 제가 느꼈던 감정과 그 흐름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감동을 그림을 감상하는 이에게도 선물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고 작가의 이런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앞서 설명한 「감동」이라는 작품이다. 우연히 초대권을 받아 가게 된 연주회에서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거대하고도 따스한 울림이 자신을 관통하는 듯 한 전율과 떨림. 이 행복한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수없이 많은 고심 끝에 그려낸 작품이 바로 「감동」이다. 이 작품은 2003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단원미술대전’에서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선을 다해 그 때의 감동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것이 인정받은 것이기에 수상의 기쁨 또한 더없이 컸다고 한다. 그밖에도 그는 같은 해 ‘경기미술대전’과 ‘나혜석미술대전’에서 입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화성시에서 ‘네덜란드의 풍경미술원’을 운영하던 그는 몇 년 전부터 제주로 내려와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환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풋풋하면서도 소박한 정서에 작품 활동에 더욱 의욕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제주에 와서 너무나 행복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제는 제주가 ‘제2의 고향’이라는 마음이죠”라며, “아직까지는 개인전을 미뤄두고 있지만, 준비가 된다면 제주도에서 열어보고 싶어요. 작품과 작품 사이에 이야기가 숨어 있는, 테마가 있는 전시회를 여는 게 제 목표에요”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그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보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저도 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보면 볼수록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몇 시간을 쳐다봐도 싫증나지 않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쪽빛 바다와 드넓은 하늘, 노란 물결의 유채꽃밭과 야트막한 돌담이 따스하고도 그리운 정서를 자아내는 제주에서 자신만의 그림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월간 파워코리아 1월 지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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