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산(鶴山) 천종대 작가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넣는 서각(書刻)은 예로부터 종합적인 정통 예술로 크게 각광받아왔다. 특히 배경이 되는 나무의 형태에 따라 또 나무판에 새겨지는 글자의 모습에 따라 전혀 다른 상념을 전달할 수 있고 서양화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서각은 기존의 동양화적 전통에서 발전되어온 전통서각과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다면적인 변화를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서각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동양의 순백과 서양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학산(鶴山) 천종대 작가의 작품은 생동감이 넘치는 고유의 미적 감각을 극대화하며 국내외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아 왔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미학 아우르는 독자적 작품세계 구축
천 작가의 작품은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매력을 품고 있다. 커다란 나무에 글자와 그림이 함께 들어있는 그의 작품은 자유롭고 흐르는 듯한 글씨와 생동감이 넘치는 사물이 병치되어 매우 독특한 기운을 품고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작품을 만들며 국내 화단에서 일찍이 주목받기 시작한 학산(鶴山) 천종대 작가는 20년 전 불교 관련 활동을시작하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12분의 스승을 모시고 예술적인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비단 서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동양화, 서양화, 옛 기와에 하는 와각, 그림을 그려 조각도로 파는 화각, 조형,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익히며 서양화의 화려함과 동양화의 순수함을 아우를 수 있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서서히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일종의 수행을 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3년 가까이 두문불출하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분의 스승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다 보니 배움을 구할수록 오히려 더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가 정말로 순수한 저만의 것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작품을 함에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어렵다면 굳이 어려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보다 순수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것이더라도 스스로 창작해서 만들자는 것이 저의 신념이며 그것을 바로 보고 느꼈을 때 비로소 작품과 하나가 된다"라고 강조했다.

서각 분야 최연소 각자명장으로 주목받아
자연의 신비로움 작품에 담는 작가
천 작가는 현재 다수의 서각 단체와 협회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전통예술인 서각 을 현대미술이 주류인 현재의 예술세계로 이끌어내 주목받게 한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서각 분야 최연소 전통각자명장(제12-명25호)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그는 현재 대한민국청룡문화미술협회 총재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가진 매력에 대해 ‘색감과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는 “처음 서각을 배울 때 선생님들께서 작품에 있어 70%만 마음에 들면 그 작품은 성공한 것"이라고 선생님들께 들었으나, 천 작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진념으로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완성도를 높여 마침내 100%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또한 작품에 임할 때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은 어김없이 파기시켜 세상에 내어놓지 않는다며 "모든 작가님들이 그러하듯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작품에 몰입할 때는 하다가 자기의 볼 일을 본다든지 멈추고 다른 것을 하다가 다시 한다든지 하면 느낌이 죽어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 천 작가의 이야기다. 하여 "작품이 끝날 때까지는 붓과 망치를 내려놓지 않는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작품을 제작할 때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색감을 뽑아내기 위해 물감과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작업을 할 때에는 한 달에 물감비용만 100만 원 이상이 들어 재료상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줄 알고 가격을 깎아주기도 했을 정도라고 하니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가 바친 세월과 노력의 의미가 진정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천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오로지 참되고 진실하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관객과 작가가 하나 되어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그러한 태도가 바로 그가 강조하는 관객들과의 아름다운 약속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는 "그것이 나아가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였다. 그가 자신의 작품 안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만물은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인간과 달리 자연은 스스로 순화하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연의 순수한 법칙이며, 이러한 자연을 대표하여 천 작가의 작품 안에 나타나는 것이 넓은 하늘이다.
그는 “산 속에서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작품을 할 때 시간이 되면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달이 차고 기울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신비함을 느꼈다. 제 작품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들어 있지만 그 중에 대표되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순수한 자연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변하되 변하지 않는, 고요하되 고요하지 않는, 옳고 그름이 있되 그것 또한 정답이 될 수 없듯,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겪는 일들을 그대로 생각하며 순수함을 잃지 않고, 분노와 감정을 느낌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작품세계라고 크게 강조했다.

후학 양성을 위한 외부 강연 활발히 진행
천 작가는 또한 후학 양성을 위한 외부 강연 활동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 20년 이상 서각을 만들며 자신만의 특색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이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서각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직접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저에게 서각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젊게는 20대 학생부터 많게는 70대까지 연령대도 매우 다양하다. 항상 순수하고 진실한 작품을 만들며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또한 함께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원으로서 항상 인격을 도야하고 겸손하며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여 각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현재 제자 분들에게 꾸준히 그리고 늘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서각은 커다란 나무에 직접 끌과 망치를 대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작업 과정 전체에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 힘들지 않는 것은 없지만 천 작가가 만드는 작품의 대다수가 나무에 물을 뿌리고 태양을 보니 삐뚤어지고 금이 가는 부분까지를 포함해서 준비하는 과정을 겪고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어찌 보면 기본 5년의 세월을 견뎌야 하나의 성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서각을 배우러 온 사람들도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는 "10명이 들어오면 1명 정도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그것 또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설사 좋지 않게 헤어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스승으로써 견디어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먼저 시작한 사람의 몫이라며 소탈하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며, 어쩌면 그것은 누구나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는 그의 말에 작은 여운이 맴돌았다. 한번 맺은 사제지간은 평생을 가야 한다. 스승이라고 불리면 모든 것을 받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수익 일부 사회 환원하는 나눔 활동 지속해
서각 예술 저변 확대 위한 아카데미 설립 준비
천 작가는 강연에서 발생하는 수입과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를 꾸준히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의 가치를 알리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꾸준히 지역사회에 기부를 해온지도 15년 이상이 되었고, 또 곳곳에 있는 그의 작업장 역시 회원들의 소유로 전환했다. 단순히 작품 활동만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가 살아나고 후학들이 여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대한민국청룡문화미술협회 총재를 맡아 활동하고 있는 것 역시 그의 이 같은 신념과 일맥상통한다. 작품을 만들거나 사람을 대하는 매 순간이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자신의 활동을 통해 미술계가 조금 더 큰 활력을 되찾고 더욱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잘났다고 무조건 내 방식대로 가려고 하는 순간 아집이 생긴다. 내 것만 내려놓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협회에서는 전체적인 행사의 조율과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 외에도 일선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앞장서서 듣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좌우명은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며 배움에 있어 게을리 하지 말라'이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점차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칫 자신의 중심을 놓치기가 쉽고, 한 순간이라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도태되는 것은 금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 작가는 작품만을 하기에도 바쁜 생활 속에서 꾸준히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스스로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고자 한다.
천 작가는 끝으로 "국내 미술계의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고 서각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한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아카데미를 통해 서각 예술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해온 것을 반추하며 섣불리 마지막 점을 찍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제자들과 다도를 나누며 인격을 가다듬고 자신을 비우는, 행복의 시간을 갖는 것을 최대의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과 만나 소통과 대화의 장으로 번져 미술계가 한층 더, 한발 더 나아가는 변화된 모습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아름다움의 만남이 이어진다는 맑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서울 등 다양한 지역의 재단법인, 사단법인 등 여러 미술단체에서 심사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말보다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이 시대 미술계의 진정한 스승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