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大山) 최신희 작가

서각(書刻)은 나무에 글 또는 그림을 새겨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서예에서 발전된 형식의 예술이지만 평면적인 한계에 머물러야 하는 서예와 달리 서각은 그 시작점부터 입체적인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제한에서 발생하는 서각만의 미학에 도전하는 작가들의 수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서각은 동양적 예술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모호성과 추상성의 세계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기에 대중의 호응 역시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울산에 위치한 현대건설기계(주)에서 근무하며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대산(大山) 최신희 작가는 전국의 각종 공모전 및 전시회 등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서각으로 꽃피워낸 작가의 예술혼
현대중공업(주)에서 지난해 분리된 현대건설기계(주)에 근무하고 있는 그가 지금의 길을 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각에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마땅히 배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공방에 찾아가 배움을 청했고, 그 때의 선택이 지금의 생활을 일궈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도현 김학렬 작가로 그는 울산에서 도현서각연구소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최 작가는 “세심하게 서각의 기초를 알려준 스승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 울산에서 서각을 가장 오래 한 작가 중 한 분인 스승님에게서 나무를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시작하여 칼 잡는 법, 나무에 글씨와 그림을 새기는 법 등 서각의 처음과 끝을 구성하는 많은 부분을 익힐 수 있었다. 그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또 “처음 서각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아내의 적극적인 응원과 내조가 없었다면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 작가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서각에 입문한 것은 비교적 늦었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열정이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기에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짚어갈 수 있는 여유는 충분했다. 특히 나무를 직접 만져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서각의 특성 상 기초 작업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여타 작가들과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했음에도 지금 작가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가 현재의 자리에 있기까지는 그만의 남다른 열정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전통서각의 미학 지켜가며 수준 높은 작품 완성
퇴근 후와 주말 서각에 바치며 80여 개 작품 선보여
최 작가의 작품은 문인화 형식의 그림을 서각으로 표현하고 표제를 붙인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문인화란 예로부터 그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선비나 사대부 등의 계층에서 그린 그림을 일컫는 말로, 수묵산수화나 꽃, 동물 등을 주요 소재로 한다. 자연히 전통적인 맥락의 메시지를 담게 된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현대인의 심상과 일상의 메시지 등을 표현해내며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엄격한 형식미와 함께 전통서각의 독특한 미학을 꾸준히 지켜가고자 하는 열정적인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현대서각은 색을 입히거나 독창적인 글씨체를 활용하는 등 전통서각에 비해 자유로운 점이 많은 방식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수정하기도 쉽고, 구상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면 작품을 만드는 데에도 상대적으로 제약이 적다. 반면 전통서각은 사용할 수 있는 글씨체도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고 엄격하게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저의 작품 세계를 굳이 전통서각만으로 한정짓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러한 점 때문에 굳이 전통서각의 의미를 지켜가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는 “특별히 작품을 만들면서 주제를 정해놓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주변에서 소재를 찾고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감정을 작품으로 옮기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굳이 문인화의 형식을 가져온 것은 전통서각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미학적 한계점이라는 면에서 문인화와 서각의 전통이 통하는 곳이 있다고 여겼다. 거의 대부분의 작업에 들어갈 때 규격만을 정해놓고 시작하지만 저만의 작업 방식이 줄 수 있는 자유로움 또한 존재한다”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처음 작품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서각이 자신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아버지와 큰형님이 목수 생활을 하셨고 작은형님은 서예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에게 있어 손재주만큼은 타고난 성향이었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이러한 성향은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서각을 하고자 했을 때만 해도 취미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는 것에 가까웠지만 작업을 거듭하며 진정한 서각의 매력에 매료된 결과 그는 퇴근 후와 주말을 서각 작업에 바쳐가며 현재까지 약 80여 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직장생활만 몇 십 년을 하다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 보니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 나무를 직접 들고 세밀하게 조정해가며 작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보니 일상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생기는 잡념들이 깔끔히 사라지고 묵묵히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그런 면에서는 서각 작업을 하는 것이 일종의 수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프랑스, 베이징 등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최 작가는 제33회 대한민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부산광역시장상)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프랑스 노르망디 초대전 우수상, 우수작가 베이징 초대전 우수상 등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그 실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프랑스 초대전에 참여했던 그의 작품은 ‘우리 땅 독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서각으로 담은 독특한 작품에 대한 호평이 이어져 당시 전시에서도 평단 및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출품이 결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소재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하던 중 ‘독도’를 소재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서양에서 볼 때 위치상 변방국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고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기회에 독도에 대한 이미지를 유럽에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언급하며 “덕분에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좋아해주신 덕분에 독도라는 어려운 소재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사내 개인전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 큰 호평 얻어
향후 갤러리 카페 등 운영하며 작가들과 소통하고파
그는 회사의 배려로 지난 2015년 현대중공업(주) 건설장비사업본부 본관과 생산기술관에서 특별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회사에서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며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고, 퇴근 후에는 작품 활동을 통해 예술혼을 불태워온 그 간의 세월을 사우(社友)들과 함께 나누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청량감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이 지난 전시회를 통해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최 작가는 “처음 이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야 하고 또 가르침을 받는 분의 성향에 따라서도 작품의 방향이 달라지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만큼의 고생에 자신이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보답 받는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도 수고스럽지 않다”라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향후 작품의 수가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는 공모전이나 단체전 등에 꾸준히 참가하며 내실을 닦고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때 자신의 첫 번째 정식 개인전을 개최할 것이라는 소망을 밝혔다. 또 퇴직 후에는 공방을 차리고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며 전시를 원하는 지역의 작가들과 소통하고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힐링 아트의 공간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끝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더욱 많은 분들이 서각의 참 매력을 알고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말로 끝없이 이어질 예술의 길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