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 허혜영 작가

많은 사람들에 있어 꽃이란 존재는 총 천연의 자태, 그것만으로 희망과 행복, 그리고 즐거움의 상징일 것이다. 일상이 지난할 때 나는 그런 꽃을 그린다. 산, 마을, 집. 그리고 그 안의 가정은 늘 행복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쉽던가. 삶이 막막할 때 그것들을 그린다. 넝쿨 장미와 행복이 들여다보일 듯한 창을 그린다. 그렇게 지친 마음을 잠시나마 해결한다. 그리하여 내 마음은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걸을 힘을 내게 한다. <허혜영 작가노트 중에서>

공동체 마음 담은 ‘꿈꾸는 마을’ 로 화제.
허혜영 작가는 작품에 공통적으로 집과 꽃을 등장시켜 여기에 에너지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꿈으로 펼쳐 나간다. 채색기법은 자유로움을 추구해 가고 있다. 여기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작가는 그동안 자유스런 붓 터치로 숱한 작업을 해오면서 색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었다. 예술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채색하는 기법은 캔버스를 다 채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섞지 않고 물감을 반복해 얹는 레이어드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질감(texture : 마띠에르)을 두텁게 한다. 이때 색깔과 색깔의 접점을 찾는다. 허 작가는 “초기에는 색상 정리도 하고 색 연구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색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지요. 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라며 색(色)의 철학을 밝혔다. 약간의 표현주의에 가까운 그만의 색채 이미지는 뚜렷해서 난해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복잡하게 읽히는 구조를 띈다.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개념과 다채로운 색채는 초현실적 그림과 맞닿아 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극복의 차원으로 해석될 만하다. 그것은 공동체 의식에서 인간의 평등, 자유, 꿈 등을 주제로 사회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와 상처를 보듬는 통찰력에서 비롯되어져서 그러하다. 연작 시리즈로 ‘꿈꾸는 현실’, ‘꿈꾸는 마을’ 등에 등장하는 꽃, 호수, 구름, 달, 무지개 등은 자연과 더불어 평화를 상징한다. 마을과 도시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밝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통해 공동의 고통, 고독, 갈등 속에서 함께 길을 걷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중에서 ‘꿈꾸는 마을’ 연작은 ‘절망을 딛는 곳에 꿈이 있다’ 는 메시지를 잘 표현한 수작들로 높이 평가 받는다. 커다란 꽃병은 곧 우리의 꿈을 담는 용기를 말한다. 이는 쉼의 공간인 집의 의미도 있지만 행복, 평화 등을 담는 커다란 의미가 깃들어 있다. 꽃병에 담긴 꽃은 인간을 상징하며 진정한 사랑을 뜻하며 그렇게 크게 그려진 병과 꽃은 ‘사람들, 그들은 일어섰다’ 는 외침을 말하고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아픔을 극복, 에너지를 담아.
허 작가는 어릴 적에 카이스트 연구원으로 근무한 부친을 따라 문경 등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한때 마산의 친할머니 댁에서 떨어져 살며 외로움과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 그를 지탱해준 건 미술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작가를 꿈꾸며 그림으로 상을 휩쓸며 두각을 보였고, 중학교 때 비로소 가족이 모인 서울로 왔다. 어린나이에 가족과 떨어진 아픔으로 일찍이 자아의식이 싹튼 허 작가는 이후에 대학에서 인문학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결혼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깊은 관심를 가졌다. 이런 가운데 허 작가는 1년 동안 거여동의 산마을과 재개발 지역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1년간 찍은 사진을 모아 그림 작업을 해 2000년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이들의 삶을 그대로 조명하는 특별전시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 눈을 더 크게 돌리게 된 큰 계기가 생겨났다.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추모하고 지지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를 접한 허 작가는 가슴 속에 뜨거움을 느꼈다. “용산 참사를 보면서 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 여러 채를 마을로 형성해서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하나라는 것을 말해줬습니다. 또 꽃병을 크게 그려서 한 송이 한 송이가 그들에게 보내는 지지라는 것을 암시했어요.” 허 작가는 특정인을 위한 재개발이 나머지 사람들의 집을 사라지게 만드는 상처와 이 전에 그 자신이 직접 저소득층과 재개발 지역 산마을을 다니면서 서민들의 소외감 등을 목격했었기에 마음에 더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집 잃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 무지개뜨는 마을Ⅰ.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7

절망 속에 온몸으로 쏘아올린 축포처럼 공감대 형성
“진심어린 작품이 컬렉터와 관람객에 전해지길 바래”
이후부터 허 작가는 산에 아름다운 자연과 집을 많이 그린다. 자신의 방을 밝히던 꽃에서 사회 전체를 밝히는 촛불을 상징하는 꽃으로 열기를 키워나간 작품은 ‘꿈꾸는 마을’ 연작으로 이어졌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행복을 위협하지도 않고 전체의 이기가 개인의 안정을 깨뜨리지도 않는 그런 마을을 그렸다. 작품은 마치 그녀가 밝혀주는 색채로부터 보호를 받는 느낌이다. 이렇듯 우리의 현실과 자신이 직접 겪었던 문제를 작품에 접목시켜 따뜻한 눈으로 보듬어 가고 있다. 지난 2월에 개인전으로 연 ‘꿈꾸는 마을전’ 에는 이런 메시지와 더불어 색채의 열기로 가득 채웠다. 절망 속에서 온몸으로 쏘아 올린 축화처럼 간절함이 깃든 색채로 붙들어 맨 생명력이 묻어남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다. 당시 전시에는 홀베인 한국지사장도 비서와 찾아와 커다란 관심을 표명했다. 허 작가는 “인간의 삶에는 늘 갈등, 상처, 부족함이 함께 한다.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은 순간의 연속성이다” 면서 “사람들은 꽃과 하늘의 별을 보고 살아야 가슴이 시원한 순간을 느끼는 존재다. 그리고 꿈을 꾸며 잠을 자는 그 순간만이라도 삶의 상황이 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고 말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허 작가를 향해 “‘꿈꾸는 마을’ 연작은 계속 이어져 가야만 한다” 고 말한다. 이들의 응원 속에 작품을 이어가는 허 작가는 “저소득의 소외된 이웃과 장애우 등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사기를 북돋고, 구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으면 한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저의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면서, 제가 그려낸 그림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꽃이자 꿈을 꿀 수 있는 힘이 되길 소망한다.” 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