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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편안함 주는 다양한 소재의 조소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우취인(郵趣人)으로서 활발한 취미활동 이어가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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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5  11: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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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大野) 이영수 조각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나를 조각한다.
눈길 발길이 머무는 모든 것에서 조각되어질 나를 발견한다.
등불과 등대같이 한 줄기 희망과 기쁨의 빛을 찾아서~!!!
생각이 행동을 이끌듯 창작하려는 열정의 본능에 충실하게 온 감각을 동원하여 자연 속
일상의 모든 것에서 즐거움과 재미가 뭉쳐질 때까지 횃불을 들고 춤을 춘다.
(작가노트 중에서)

취미로 시작한 조각, 큰 결실을 이루다
충북 음성 출신으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이영수 작가는 자연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길에 널린 돌멩이나 나무를 가지고 놀고 친구들과 함께 제기차기, 자치기, 연날리기 등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팽이를 깎고, 연과 썰매를 직접 만들어서 놀곤 했던 그의 기술은 공업고등학교 진학 후 출전하게 된 기능경기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대회 수상 실적 덕분에 졸업 후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가 지난 후 다른 길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주변의 여러 경로를 통해 대학을 알아보던 중 주간근무와 병행할 수 있는 야간대학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 그는 한성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낮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밤까지 시간을 내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가꾸어간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는 매일에 최선을 다했다.
졸업 후 학사장교 시험을 보고 군에 입대한 그는 그곳에서 나무를 깎아 만들어내는 조각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정보장교로 복무하며 주로 내근을 수행했기에 몸을 움직일 일도 마땅치 않았고 때마침 부대 주변에 커다란 나무가 많아 구하기 쉬웠던 소재인 덕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큰 나무를 베어낼 때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잘라달라고 요청하여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만든 작품들을 장병들이 많이 다니는 복도나 식당에 전시했었는데 모두들 작품을 보면서 군생활의 여유를 얻었고, 덕분에 부대 환경이 좋아지는 효과까지 있었다. 또 여유가 있는 공간마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자성어나 좋은 글을 서각으로 만들어놓았는데 그런 것들이 지휘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 때부터 마음 한편에는 작가로서의 길을 가야겠다는 소망이 움트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후 활동 나서
일상 속의 행복과 편안함 주는 작품 추구

예편 후 군무원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의 이러한 활동들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기능경기대회를 비롯한 각종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과 두 번의 대상을 거치면서 나무를 깎는다는 작업에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당시 그의 사무실은 의정부북부역(現 가능역) 인근 동사무소 안에 있었는데 동사무소 옥상에 조그맣게 비닐 천막을 치고 작업을 했던 것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동장께서 “어떻게 이런 좋은 취미를 갖고 있냐”며 신기해했고, 동사무소를 찾는 예비군들 중 서예나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대원들은 “바로 미술협회에 들어와도 괜찮을 수준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때부터 조금 더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이 길을 본격적으로 가고자 했던 그는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모집공고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비전공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보통 미술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술 입시를 시작해 미대 학사과정을 졸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굳이 비전공자를 모집하겠다고 나선 심문섭(沈文燮) 교수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길을 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조소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으로서 다양한 작품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나무와 흙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소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일상 속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작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난이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예술이 함께하는 공존(共存)의 경지(境地)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자기 작품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작품을 만들 때 항상 이미지(image)化 과정을 중시한다. 그는 “제가 생각한 것이 그대로 작품에 담길 수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과물에는 변형이 오기 마련인데, 그를 구상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만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고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미술협회 의정부지부 부지부장 역임해
우취인(郵趣人)으로서 활발한 취미활동 이어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하나의 경향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이 엿보인다. 공직(公職)에 있으면서 다작(多作)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어 결과물로서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연히 착안한 아이디어로 흙이나 나무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만큼, 그의 작품에 대해 열성적인 호응을 보내는 미술 애호가들 역시 많다. 현재까지 한국미술협회전, 의정부미술협회전, 중앙대 동문전 등 98회의 전시에 참여하여 장관상, 도지사상 등 8회의 수상경력을 보유한 베테랑 작가 이영수는 작품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미래를 가꿔가고자 한다.
그는 한국미술협회 의정부지부 부지부장, 경기도지회 전시지원 2분과장, 의정부시 조형물 심의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경기미술대전 운영위원, 안산 및 회룡 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미술계의 후배 작가들을 위한 행보에 힘쓰고 있다.
그는 이 밖에도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우취인(郵趣人)으로서 활발한 취미활동을 보이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이 흔히 그랬듯, 이 작가 역시 어릴 때 우표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적의 취미라고 해서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도 우표를 모으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이 잃어버렸거나 포기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었지만 이제는 우표 모으는 사람을 한 동네에 한 사람 보기가 어렵다.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우표에서 배운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표 모으기라는 취미는 정적이지만 끈기가 있어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우표는 한 시대의 역사와 디자인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史料)
퇴임 후 조소‧우표 개인전 개최하고 싶어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산화와 정보화가 불러온 시대적 변화를 우표 역시 거스를 수 없었다. 고등학생 이하의 소년은 우표를 본 적이 없다는 요즈음, 청소년이 과거를 거슬러서 우표를 배운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해졌다. 다만 전세계의 우표를 휴대폰으로도 검색하고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우표는 세계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올림픽이나 국제대회 등 세계적인 이벤트가 열리면 반드시 기념우표가 발행되고 각 나라의 랜드마크를 주제로 한 우표, 꽃과 나무 등의 자연물을 소재로 한 우표, 또 자동차나 비행기, 골프공, 필기구, 친환경 산업 등 다양한 사물들이 우표 안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탄생한다. 그렇기에 우표는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인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있다.
현재 한국테마틱 우취회원, 회룡우편문화 연구회원, 정우회 우취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장관상, 우정사업본부장상, 체신청장상 등 7개 상을 수상한 그는 전국 각지 우취인들의 활동을 통해 우표 작품 만들기가 더 많이 보급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책장 깊이 먼지 쌓인 우표 앨범을 꺼내 분류하고 분석하고 나름의 전개 방식으로 표현하며 노후의 정적인 취미를 시작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퇴임 후 개인전을 개최하고 싶다는 소망을 표시한 이 작가는 조소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우표 수집가로서도 함께 전시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인구감소, 노령화 등등의 국내외적 어려움 속에서 미술인들이 작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협회와 지자체 차원에서 더욱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후배 미술인들에 대한 응원 역시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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