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INTERVIEW
부처님은 온 법에 가득 차있으며 항상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네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선(禅)이다
강진성 기자  |  wlstjdxp@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8.28  09:11:2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대안정사 일물선원 석구담 선원장

경북 문경, 경기도 오산, 대구광역시 등 3곳의 지역에 선방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대안정사 일물선원이 도심 속 생활포교를 지향하며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안정사 일물선원은 부처님 불법에 귀의하여 참수행 정진에 원력을 다하기 위해 매달 초하루 법회, 초삼일 참선 정진 법회, 넷째 일요일 가족 법회, 셋째 토요일 철야 정진, 넷째 목요일 결가부좌 참선법회, 동안거 하안거 하루 8시간 정진 등 다양한 법회들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선방이 운영된 지 어느덧 문경은 12년째, 대구는 8년째, 오산은 2년째에 접어들었고, 대안정사 일물선원은 이 3곳의 선방이 온전하게 한 곳처럼 내실을 기하며 열린 포교 실천도량을 구현해오고 있다. 그 덕분에 많은 불교신자들의 발걸음이 대안정사 일물선원으로 향하고 있다. 월간 파워코리아는 대한불교조계종 대안정사 일물선원 석구담 선원장을 오산 일물선원에서 만나 수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하고 순수한 마음이 행복해지는 길
왜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바로 순수한 마음이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번뇌가 아니라 평상심을, 망상심이 아니라 고요함을,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석구담 스님은 “수행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이다. 크게 나쁜 마음을 내거나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깨끗한 줄 알지만 우리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나만 아끼는 사람들은 마음에 까만 돌을 잔뜩 안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자비심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하다. 자신을 걱정하기에 바빠서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한 마음을 내다보면 습관이 생긴다. 선한 마음에 익숙해지도록 자꾸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선한 마음인지 악한 마음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은 수행이 된다.
이에 대해 석구담 스님은 “왜냐하면 살피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마음을 바꿔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첫 단계인 살피는 것을 잘 못한다. 잘 보지를 못한다. 볼 수 있게 되면 조금씩 좋지 않은 마음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 좋은 마음이 채워지게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살피는 일을 조금씩 늘려보세요”하고 개인 수양에 대해 덕담을 하셨다

‘부처님은 온 법에 가득 차있으며 항상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시네.
인연따라 나타나서 두루 보살펴주시고 그리고 여기 항상 보리좌에 계시네.’

석구담 선원장은 “오늘날 인류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편리하게 살게 됐지만 살아가는 것이 복잡해지고 제 점신을 잃은 것은 주체성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自身)을 잃고 주체성도 없이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 없다. 그러나 참선을 통해 자유자재하게 되면 주체성을 확립하여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구제하는 길은 선(禅)밖에 없다. 서양의 종교철학은 모두 인간이 자연(自然)을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선(禅)은 인간과 자연이 불이(不二)임을 깨닫게 한다. “자비화합(慈悲和合)을 바탕으로 서로 함께 살아가는 정신(精神)이다. 나라는 것이 무아(無我)로 의식도 투과하고, 무의식도 투과하니 걸림이 없다. 아(我)가 없고 대립이 없다. 하나로 통해 자비화합이 저절로 일어난다. 자비심으로 모든 대립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선(禅)의 입장이다. 그 길이 세계 평화(平和)를 이룩하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선(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 물을 줄 아는 그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선공부(禅工夫)는 왜 해야 하는가? 화두(話頭)를 알기 위해서다. 화두를 알아야만이 갈등, 대립, 반목, 번민이 없는 자리를 터득해서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몸도 몸이라 할 것이 없고 수행도 수행이다. 할 것이 없으며 법도 법이라 할 것이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공적(空寂) 텅 비고 고요할 뿐이다. 내가 살날은 오늘밖에 없다.”라고 강조하셨다.

진리(眞理)
‘만일 여러분이 진리(眞理)를 알고 싶다면 자신의 상황이나 조건 그리고 모든 견해를 몽땅 다 내려 놓아라(방하착, 放下着)’
그렇게 할 때 우리 마음은 생각이전(前)의 상태로 돌아간다. 생각(生覺)이전이란 깨끗한 마음을 가르키는 말이다. 깨끗한 마음에는 안과 밖이 따로 없다. 있는 그대로 일 뿐이다. 여여(如如)한 경지가 진리(眞理)인 것이다.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莫存知解), 이 말은 생각을 내게 되면 선(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석구담 스님은 “여러분이 마음을 생각이전(前)의 상태로 돌이킨다면 바로 그것이 선(禅) 진심(眞心)을 잘 지키다 마음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모두 옳게 생각하라는 것뿐이다. 만일 이미 생각을 쉬었다(끊어버렸다)면 부처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십습인육교보(十習因六交報)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능엄경에서는 십습인육교보(十習因六交報)라고 하여 열 가지 버릇이 인(因)을 지어서 여섯 가지의 교보를 받아 18대 지옥을 만든다”고 하였다.
열 가지 버릇이란 첫째는 음란한 버릇, 둘째는 탐착하는 버릇, 셋째는 교만한 버릇, 넷째는 성내는 버릇, 다섯째는 속이는 버릇, 여섯째는 거짓된 버릇, 일곱째는 원망하는 버릇, 여덟째는 나쁜 소견으로 변명하는 버릇, 아홉째는 모함하는 버릇, 열째는 들추어내는 버릇이다.
여섯 가지 교보란 첫째는 보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 둘째는 듣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 셋째는 냄새 맡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 넷째는 맛을 탐하는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 다섯째는 접촉의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 여섯째는 생각의 업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석구담 스님은 “그 모든 지옥은 중생 스스로가 지은 엄습(業習)으로 말미암아서 만들어진다. 염라대왕이 만든 것도 아니고, 조물주가 있어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든 중생의 미망에 의한 업습으로 말미암아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마음이 청정하면 제천(諸天)이 칭찬을 한다. 제천이 칭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아무리 곤란한 일에 처하더라도 어려움이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인무백세인(人無百歲人)
왕작천년계(枉作千年計)
일월서의(日月逝矣)
세불아연(歲不我延)
백살을 사는 사람이 드물건만 천년 살 계획을 세우는구나. 날과 달은 가고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육진심식본래공(六塵心識本來空)
▲육진: 색상, 소리, 향기, 맛, 감촉, 법 이 여섯 가지는 본래 텅빔이다.
‘스스로 경계(境界)에 머물러 있는 전도된 중생이 어찌 경계를 해탈한 깨달음을 알겠는가?’
석구담 스님은 “깨달음은 자유이다. 경계와 장애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육체 속에서 자유로우며, 느낌 속에서 자유로우며, 감정 속에서 자유로우며, 분별 속에서 자유롭다. 깨달음에 있지 못하면 경계에 의존해야 한다. 깨달음에 있지 못하면 육체에 의존하거나 지식에 의존하거나 생각에 의존하거나 느낌에 의존하거나 감정에 의존하거나 돈, 명예, 사람, 물질에 머물러 의존하여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머물러 의존하므로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깨달음만이 완전한 만족이다. 깨달음에 있지 못하면 누구나 생각의 굴레, 감정의 굴레, 욕망의 굴레에 묶여서 생각, 감정, 욕망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늘 갈망한다. 범부(凡夫)는 이처럼 경계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중독자들이 가지는 이중의 모순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더욱더 경계에 중독되기를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경계에서 해방되었으면 하는 본능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이러한 이중의 모순된 상황이 바로 번뇌이다. 깨닫게 되면 이런 이중의 모순된 상황이 사라지고 언제나 둘이 아니어서 갈등이 없는 한결같음이 있고 불만족이 없다. 깨달음은 완전한 안정이다. 깨달음에 있지 못하면 경계에 의존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상(無常)한 경계를 의존하다보니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했다.
도재심마처(道在甚麽處) 일념미생초(一念未生初)
“도가 어디에 있는고? 한생각 일어나기 이전소식”
우리 모두 갈등, 대립, 반목, 번민이 본래 없는 자리를 하루빨리 회복해서 멋들어지게 살아봅시다. “억” 

강진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본 뉴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뉴스앤매거진 파워코리아 대표 백종원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62-3번지 2층  |  대표전화 : 02-466-5085  |  팩스 : 02-444-0454
대표메일/제휴광고문의 : bridgekorea@naver.com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백종원(bridgekorea@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 : 212-23-25879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종원
Copyright © 2020 월간파워코리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