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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해상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영 용화사
김태인 기자  |  red39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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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26  09: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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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화사 전경

종교가 흔히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창조주나 신을 상징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 신에게 빌어 자신의 행복을 구하고자 하는 점에서 볼 때 불교는 어쩌면 종교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방식이나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법(法)에 대한 믿음과 구원이나 진리, 마음의 평화를 얻는 종교의 목적에서 같다는 점에서 불교도 종교임에 틀림없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지역민들을 위해 보시를 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 바로 경남 통영에 위치한 용화사의 주지 종묵스님이다. 일주문을 들어오는 이들은 높고 낮음이 없는 모두 똑같은 부처님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종묵스님을 만나보았다.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 청정 기도도량, 용화사
경남 통영에서 큰 절이라 불리는 용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용화사를 품고 있는 미륵산은 예로부터 부처님의 미륵불 상주처로 믿어져 왔던 곳이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632~646년)에 은점화상(恩霑和尙)이 초창하여 정수사(淨水寺)로 창건하였으며 그 뒤 고려원종(元宗) 원년(1260년)에 큰 비가 내려서 산사태가 나자 전체의 가람이 쓸려 무너져 3년 뒤 자윤(自允), 성화(性和) 두 화상이 자리를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천택사(天澤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그 후 조선 인조(仁祖) 6년(1628)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28년(1752년)벽담선사(碧潭禪師)가 현재의 용화사 자리에 새로 중창하고 다시 용화사로 개칭하였다. “벽담 스님이 절 이름을 고친 데에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습니다. 화재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된 뒤 절을 중창하기 위해 미륵산 제일봉 아래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를 미륵존불께 기도를 드렸는데 회향날 밤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당래교주미륵불(當來敎主彌勒佛)이니라. 이 산은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이 될 도량이니 여기에 가람을 짓고 용화사라 하면 만세(萬世)에 길이 유전(遺傳)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서몽(瑞夢)을 따라 새로 터를 잡아 절을 지었으니 그 이름이 용화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룩된 용화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도들의 귀의처로서 그 구실을 다하고 있습니다.”
용화사는 보광전(普光殿), 용화전(龍華殿), 적묵당(寂默堂), 해월루(海月樓), 탐진당(探眞堂), 칠성각(七星閣), 설법전, 종루, 명부전(冥府殿)이 있으며 이 중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인 보광전은 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목조건물과 육모정 형태의 종루가 있으며 그 위쪽에는 불사리4사자법륜탑과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이 있다. 특히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 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용화전석조여래좌상과 1903년에 용화사로 옮겨진 것으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명부전의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산내암자로는 943년(태조 26)에 도솔선사가 세운 도솔암(兜率庵) 1681년(숙종 7)에 청안(淸眼)이 세운 관음암(觀音庵)이 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를 실천할 뿐
불교에서 고행하는 이들은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말며,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마음을 맑히는 것,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의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든 고행을 하고 있다. 종묵스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중생들에게 설파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개개인이 부처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알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거죠. 즉, 모든 사람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라는 것은 무리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조차도 ‘무소유’의 실천에는 고행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소유욕만큼 억제하기 힘든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공유(共有)’의 개념을 개입시키면 소유욕도 억제시키지 못하란 법도 없다. 곧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보시’가 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종묵스님 역시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보시를 통해 중생 구제에 여념이 없었다.

탐(貪)진(瞋)치(痴)를 버리고 하심(下心)으로 깨닫다
“수행하는 삶이라는 것이 반드시 힘겹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평상심을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한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그것이야말로 수행입니다. 곧 탐(貪)진(瞋)치(痴)를 버리는 일이겠지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탐욕과 진에, 우치를 삼독이라 했다. 종묵스님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린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라 말한다.
“탐(貪)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진(瞋)하는 것은 병을 만들지요. 치(痴)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탐·진·치를 버린다면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행복은 찾아올 겁니다.” 또한 그는 불교에서의 완벽한 삶을 ‘하심(下心)’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을 낮춰 작은 것으로도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또 그것을 위해 진실된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완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현재 종묵스님은 미륵대불 건립을 위해 불사 중이다. “미래의 미륵불의 만나기 위한 기도도량으로서의 발원처로 만들기 위해 경남에서는 최대 규모, 국내 두 번째 규모의 청동 미륵불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미륵대불은 비륵불상 15m, 관 3m(미륵불 머리 위 후광), 좌대 3m로 아파트 7층 높이와 맞먹습니다.” 종묵스님이 미륵불을 건립하는 이유는 바로 미륵불을 만나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염원하는 모든 분의 불심(佛心)이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함에서라고 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어떤 특정한 길이 따로 닦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는 자가 닦으면서 가는 길’이라는 뜻이 있다. 이는 참답게 수행하며 정진한다면 수행자가 가는 길이 곧 부처의 길인 것이다. 이처럼 효봉스님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통영의 명찰(名刹)로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사찰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묵묵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고 있는 종묵스님을 통해 용화사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위없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있도록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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