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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담은 현대 민화의 걸작, ‘미래로 가는 과거의 여정’전통의 맥(脈) 잇는 ‘인당(仁堂) 서진영’ 작가의 작품에 많은 눈길.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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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11  16: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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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인당(仁堂) 서진영 작가]

 ‘민화’는 많은 시간과 작가의 공력이 들어가는 장르다. 게다가 전통을 이어가는 사실 자체로 책임감과 의식이 더해지기도 한다. 시작은 누구나 쉽게 하지만 자칫 본질을 벗어나면 전통과 문화가 변질할 수 있기에 늘 공부해야 하고 사명감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인당(仁堂) 서진영’은 민화 작가 겸 강사로 녹록지 않은 일정에도 언택트 문화 시대에 역량을 발휘해 가는 드문 작가로 이름나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 둥지를 틀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가는 그녀를 만나 최근까지 활동 얘기를 들어보았다.


이탈리아 유학 후 넓은 시각으로 민화계 입문, 촉망받는 작가로

서진영 작가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내 의류 관련 회사 생활을 했었다. 민화를 처음 접하던 2012년 무렵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 꽃 그림 하나 장식하고 싶어 시작된 취미가 그녀의 인생과 삶의 목표를 바꿨다. “어느 이른 봄날 길을 지나가는데 전에는 안 보이던 자연의 신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꽃봉오리가 싹이 트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바라보는 데 경이로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민화에 입문할 때를 회상하는 서 작가에게 민화는 그동안 경직되고 메마른 삶에 새로운 온기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힐링’으로 좋은 도피처였던 셈이다. 그녀는 한참 민화에 빠져서 새벽에 그림을 그리기다가 출근하기가 일쑤였다. 힘들었지만 삶의 또 다른 에너지의 원동력이고 즐거움을 안겨줬다. 그렇게 차츰 작업 욕심이 생겨 작품이 커지다 보니 공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큰마음 먹고 업을 바꿨다. 맨 먼저 한 일은 서울에서 아동 미술교습소를 인수해 작업실 겸 시간을 활용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가장 잘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김포의 한강신도시에 정착한 지 3년간 육아를 병행하며 작업실 겸 홈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어요. 코로나를 겪으며 시대에 걸맞은, 또 어린아이 육아에 최적화된 라이프 스타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서 작가는 특히 민화의 눈을 뜨게 만든 호정 서민자 작가를 잊지 못한다. 늘 삶의 열정과 민화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 방향을 모색하는 분이라고 했다. 서 작가에겐 십 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인생의 스승, 그림의 스승, 롤 모델이다. 그렇다면 서 작가가 생각하는 선인들의 민화와 현대 민화는 어떤 점들이 다를까? “선인들은 민화의 길상적인 의미에 중점을 두었지만 현대는 나만의 색(色)을 찾는 것이 과제입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지요. 현재는 색이며 그림 속 도상들이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 점점 다채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민화는 기법과 색채가 다를 뿐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추구하고 염원하는 부귀영화의 마음은 같다. 서 작가는 이를 기반으로 현대 민화에서 그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 민화는 작가의 철학과 함께 창의력이 필요해요. 전통적 도상을 넣어서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긴 시간 작업으로 작가의 시간을 담고 혼을 담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홈 아틀리에, 아동 창의심리미술교육원 운영하며 창작에 몰두

서진영 작가의 최애 작품은 ‘경직도(耕織圖)’다. 많은 공력을 쏟은 데다 분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경직도’는 통치자가 농민을 보면서 근검과 바른 정치하도록 감계적(鑑戒的) 목적으로 제작된 옛 그림을 재현한 것으로 사계와 함께 표현된 10폭 병풍 작품이다. 연세가 있는 분들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어린이들에게는 옛 문화를 전달하기에 충분한 걸작이다. 서 작가는 육아에 성인클래스와 아동심리미술교육원을 운영하다 보니 자신을 위한 시간은 오로지 새벽밖에 없었다. ‘경직도’는 2019년 겨울밤에 시작해 새벽 3~4시면 일어나 손을 대 6개월 넘겨 완성됐다.

“모든 것이 지쳐있을 때 그림 속에서 밭 갈고 열 일하는 사람들이 동지 같았어요. 그렇게 겨울밤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작품이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에서 명예롭게 대상을 받아 더욱더 영광이었습니다.” 

‘국화꽃과 고양이’, ‘고양이 둥둥’, ‘달항아리’ 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국화와 새가 들어간 화조도는 옻지 위에 채색한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할 때 세화를 걸거나 방안에 붙여 놓고 서로 사랑하고 무병장수의 기원을 담은 것이다. 바위 뒤에 숨어서 새 잡을 기회를 엿보는 고양이의 익살스러운 모습도 담아냈다. 이는 몰골법의 채색으로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달항아리 작품은 아트 콜렉터의 주문으로 판매가 된 작품인데 단순한 형태지만 우주를 뜻하며 우리나라의 미학을 담아냈다. 달항아리 뒤에 붉게 솟아나는 태양은 생명의 탄생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다. 동양사상과 철학에 기반을 둔 태양은 양(陽)의 의미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산(山)은 예로부터 신선한 기운이 내려오는 에너지가 강한 곳을 뜻한다. 민화는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으로 그리고 감상하기에, 서 작가는 보는 이들이 시각적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신성한 에너지 그 이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새벽 공기에 흩날리는 화접도(꽃과 나비) 모시 가리개를 더해 완성했다. 전통의 ‘십장생도’, 비단에 채색된 아름다운 ‘가을 연화도’ 역시 수작 반열에 올라있다. 작품의 절정은 호랑이를 중심으로 그려진 ‘미래로 가는 과거의 여정’이다. 이는 작가의 철학을 담은 무한한 확장성의 창작품으로 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은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모든 문명에는 과거가 있기에 미래가 있어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담아 기나긴 과거로부터의 여정 끝에 미래에 대한 기대감, 호기심을 담았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시간 여행자 같은 아이의 시선을 재미난 소재로 끌어내 다양한 시간의 공간을 퍼즐처럼 맞춰서 하나의 작품에 담고 싶었어요” 

김포문화재단 강사로 활동, 유명 브랜드 협업 작가에 선정

서진영 작가는 현재 홈 아틀리에 운영과 함께 블로그와 SNS로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를 알아보고 서울, 인천 등 외지에서 찾는 수강생도 꽤 많다. 2020년 김포문화재단 아트센터를 시작으로 한옥마을 배움터까지 민화 강의도 어느덧 2년째. 코로나로 사람들이 한동안 웅크려 있을 때 서 작가 역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코로나 창궐에 대면, 비대면의 철저한 방역 속에 힐링, 테라피를 나눔 하고자 ‘인당 서진영의 힐링 민화 그리기’ 타이틀로 김포문화재단에서 첫 강의가 이뤄졌다. 이때 많은 사람이 만족하면서 그 열정이 서 작가에게 힘을 북돋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위기 상황에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 낸 것이죠. 민화는 특히나 보는 사람에게는 편안함과 좋은 의미를 전달하게 돼요. 아름다운 전통의 색을 경험하고 길상의 의미를 담아 염원하는데 때마침 저나 수강 회원님들이나 모두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했던 생활 속 테라피 예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 작가는 그동안 모란도, 화조도, 십장생, 일월오봉도, 비단 그림 등 많은 장르를 전시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1월 첫 주에는 1년간 강의했던 한옥마을 배움터 수강 회원들과 성과 공유 예술의 장을 펼쳐 성황리에 마쳤다. “1년 동안 수업했던 회원님들 작품과 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한옥마을 개방 전시에 많은 분의 관심 속에 가족들과 대중과 소통하는 컨셉이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 작가의 이런 부지런함은 자연히 운으로 따랐다. ‘미래로 가는 과거의 여정’이 ‘잘루(Jaloo)’와 고객 감사 카드의 협업 작품에 선정된 것이다. ‘잘루(Jaloo)’는 개성 있는 뉴 아르티장 제품 및 유명 아티스트 상품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브랜드다. 이에 따라 서 작가의 작품은 하얏트호텔 더 스파 셀렉샵에서 ‘잘루(Jaloo)’와 함께 볼 수 있게 됐다. ‘소반도’ 시리즈도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을 앞둔 ‘담소막걸리’ 표지에 채택되어 작업이 한창이다. 2022년 새해는 세종시에서의 개인전도 예정되어 있다.

“벽사의 의미와 염원을 담는 민화에 확장성을 갖는 현대 작가로, 브랜드와 콜라보 등 생활 속에서 더욱 친근한 대중적인 예술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예술이 세계에 널리 뻗어 나가도록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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