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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길상' 서경선 작가] |
서각(書刻), 글이나 문자를 새기는 종합예술로 글 서(書)에 새길 각(刻)자를 쓴다. 나무에 글과 그림을 새기고 다시 채색을 하는 입체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예술 활동이다. 그렇기에 다른 예술 작품보다 작가의 생각과 심적 깊이가 작품에 더욱더 많이 묻어나온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서각은 세밀한 집중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자연의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를 대할 때면 그 무늬부터 향기,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까지 고려해 함께 호흡하며 한 획 한 획 깎아 각을 한다. 우리나라 전통 예술이 시(詩), 서(書), 화(畵) 3요소로 되어있듯 서각은 서예와 미술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 탄생한다.
길상 서경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꾸었다. 이후 미술교사가 되어 재직하던 중 내면의 깊은 심적 갈등을 겪으며, 어둠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신만의 세상 속에 갇혀 살았다. 최근 서 작가는 그림과 서각활동을 통해 인생의 행복을 찾아 힘차고 자유로운 비상을 시작했다.
‘창작은 곧 행복, 생명을 잃은 나무에
나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창작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종이, 나무에 나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는 그 시간이야말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특히 행자목에 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라며 길상 서경선 작가는 창작하는 시간, 그리고 서각을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전했다.
서경선 작가는 충북 단양에서 자라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세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해 33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동시에 1990년대부터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길상 서경선 작가이기에, 그의 화풍에 자연스레 새겨진 그녀만의 서사를 따라가 보았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1990년대에는 한복을 입은 어린아이와 같이 옛사람들의 물건을 강렬하고 무거운 색채를 사용해 표현했다. 그녀는 주로 진채화를 그렸다. 진채화는 분채라는 안료와 아교를 섞어 한지(장지)에 여러 번 채색하는 그림이다. 이는 조선시대 기록에서 찾은 화법 명칭으로, 기록에 따르면 궁중에서 주로 그려졌던 채색화와 그 안료를 포함한다. 깨끗한 화선지 위에 한 획을 올렸을 때 검은 먹과 안료가 스며들 때까지 기다린 후에 다시 채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공이 필요하다. 옛사람의 정취가 느껴지는 대상을 천천히 심혈을 들여 그려내니, 전통과 아름다움이 회화적인 요소와 함께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더 이상 못 살 것 같았다.
우울한 날이 잦은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희망을 안고 거침없이 하늘을 나는 파랑새가 되리라...
2000년대 서 작가는 건강 악화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만의 세상 속에 갇혔다. 지인들의 SNS에 올라오는 이웃과 지인들의 행복한 일상은 그저 ‘너희들의 천국’이 되었고, 자신을 위한 행복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그러던 중 하늘을 쳐다본 그녀의 눈에 이름 모를 새들이 구름 사이로 훨훨 날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늘을 힘차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강렬함, 그 모습을 보고 머릿속에 스친 단어가 ‘날자!’였다. 서랍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붓을 다시 잡고, 무작정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려낸 작품이 ‘파랑새’다. 희망을 안고 거침없이 하늘을 나는 파랑새. 이때는 질기면서도 투습성이 약한 장지를 많이 사용했는데, 채색물감이 새지 않고 덧쌓기 위함이다. 이런 화풍으로 탄생한 작품들로는 등꽃, 휴식, 둥지, 황금나무 등이 있다.
이후 서 작가는 버킷리스트 중 1순위였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전에 느끼지 못하던 자유를 느끼며 본인만의 행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보고 느낀 장면을 솔직한 심정으로 스케치북에 담았다. 2016년부터 3년간 탄생한 그녀의 작품을 보면 여행스케치가 주를 이루는데, 작품 속에서 행복을 찾은 그녀의 편안함 감정이 오롯이 느껴진다. 2017년부터는 풀꽃, 민들레, 씨앗꽃등을 종종 담았는데, 이는 작가가 빛, 바람, 나무, 꽃 등의 자연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 행복을 누군가 빼앗기 위해 쫓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급하게 화폭에 옮겨 담으며 그녀는 깨달았다. 서 작가 자신도 모른 사이에 행복이라는 산을 향해 올라가고 있음을...
‘빨주노초파남보’ 천방지축 같은 아이들,
마치 그림 속 형형색색 물감 같아.
행복하게 성장하는 아이들 보는 것도 큰 기쁨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오랜 기간 중학교 교사를 겸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천방지축 같은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그림 속 형형색색 물감처럼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선 작가는 다양한 색을 가진 어린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봤다. 항상 고민하고 수업을 다채롭게 꾸몄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과 함께 모기에 물러가며 학교벽화를 그렸던 날, 단양8경을 주제로 제작한 한지 의상발표회, 어떤 손이 되었으면 좋을지 생각하며 만든 석고 손뜨기 등 그 당시가 33년간의 교직생활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서 작가는 덴마크의 Flakkebjerg Efterskole(에프터스콜레)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150명으로 구성된 이 학교는 풍족한 공간 안에서 학생들이 여유롭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 경험을 두고 그녀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주 1-2회씩 예술기초반을 진행해 학생들이 심리 및 정서적인 면에서 안정감을 갖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보곤 한다. 심리적으로 편안해야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다 생각한다. 불안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예술심리교육을 통해 행복하게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전했다.
조형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길상 서경선,
33년 교직생활을 끝내며,
드디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다
길상 서경선 작가는 33년간 학생을 가리키던 교직생활을 접고, 서각 명인 고산 성기태 스승을 만나 서각을 배우며 다시 한 번 새로운 출발을 예고했다.
"그것이 평면이든 입체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조형을 좋아한다. 3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소홀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퇴직하면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고 여생을 살 것이다."
다양한 소재를 화폭에 담아낸 서경선 작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 쓰는 것 또한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서 작가는 그림과 글씨를 써 내려가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받기 때문이다. 암과 싸우고 가정사의 아픔을 경험한 작가는 책을 쓰며 자신의 곪은 상처들을 씻어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다 한다. 2020년 발간한 서 작가의 저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인생의 기술’에는 삶과 죽음, 사람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00세시대의 중간 지점에 도달한 작가가 ‘지금부터 무엇을 배우고 인생을 어떻게 채워갈지’, ‘어떻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갈지’ 등 시련들 속에서 발견한 행복 그 행복을 죽을 때까지 지켜낼 방법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있다. 서경선 작가는 해당 저서 외에도 <유레카 건강탐구여행>, <천연기념물 탐구여행>, 윤정완, 오지영 등의 저자와 함께 펴낸 <버킷리스트 22>를 발간했다.
‘나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편안한 미소를 띠게 하고 싶어‘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길상 서경선 작가에게 그것을 자필자각으로 탄생시키는 서각은 그동안 표현해냈던 작품들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과도 같다.
"나의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편안한 미소를 띠게 하고 싶다. 전통서각에 현대적인 조형미를 더한 작품에 도전할 계획이다. ‘길상 조형연구소’에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할 것이고, 그림을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제43회 PCAF 서화협회 문화미술대전, 제11회 대한민국 성삼문 문화예술대전, 제18회 직지세계문자서예대전 등에서 수상한 길상 서경선 작가는 교직생활과 예술활동을 정리하여 ‘미술이 서각을 만나’라는 주제로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충주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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