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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정취암] |
종교가 흔히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창조주나 신을 상징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그 신에게 빌어 자신의 행복을 구하고자 하는 점에서 볼 때 불교는 어쩌면 종교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방식이나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법(法)에 대한 믿음과 구원, 진리 등 마음의 평화를 얻는 종교의 목적에서 같다는 점에서 불교도 종교임에 틀림없다. 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지역민들을 위해 보시를 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 바로 경남 산청의 기암절벽에 위치한 정취암의 주지 수완스님이다. 일주문을 들어오는 이들은 높고 낮음이 없는 모두가 똑같은 부처님의 자식이라고 말하는 수완스님을 만나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취보살을 모시고 있는 청정 기도도량, 정취암
정취암(淨趣庵)은 산청군 소재지에서 동남방향으로 약 10km에 위치한 대성산(大聖山, 일명 둔철산)의 기암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정취암은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 제83호(1988년 6월10일 지정)로 소장 문화재는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43호)’과 ‘산청 정취암 산신탱화(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43호)’가 있다. 이와 더불어 비지정성보문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풍광이 빼어나 산청 8경에도 속한다. 특히 기암절벽에 자리잡은 정취암은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686년)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는데 이때 의상 대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쫒아 금강산에는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 창건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중기 기록에도 ‘정취사(正趣寺)’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佛畵)에는 ‘정취암(淨趣庵)’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취암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취보살(正趣音薩)을 본존불(本尊佛)로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 같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취보살은 관음보살과 함께 양대 보살 중 한분으로 우리나라에 관음보살을 모신 절은 많지만 정취보살을 모신 곳은 정취암이 유일합니다.”
정취보살을 우리나라에 처음 모신 것은 신라 헌강왕 2년(858년) 범일스님이 낙산사에 봉안하였으나 이후 고려 고종 때인 1254년 몽고의 침략으로 보살상은 땅속으로 피신되었고 난이 지나간 후에는 왕명을 받아 궁궐의 창고에 모시게 된다. 그로부터 100년 후, 공민왕 3년인 1354년에 궁궐에 있던 정취보살상이 이곳 정취암에 봉안되었다. 정취암은 고려 말 공민왕의 개혁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후 정취암은 조선 효종 4년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봉성당 치헌(鳳城堂 致憲)대선사께서 화주를 구하고 사재를 내어 3년에 걸쳐 중창하였고 숙종 40년(1714년)에 진열 선사와 상정 스님이 소실된 정취보살을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셔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정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정취암은 불교 이전부터 고대의 수행법이 전해오던 영지(靈地)였다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백여우가 비술책으로 둔갑해 산신각 아래 동굴에 숨었다는 여우굴과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부부 금실이 좋아지고 자손이 없는 집안에는 자손이 생기며 가정은 화목해지고 사업번창이 잘 된다는 쌍거북바위가 그것이다. 흰여우는 백호(白狐)다. 흰 호랑이인 백호(白虎)와 그 발음이 같다. 좌청룡 우백호라고 할 때 지금은 호랑이 호(虎)를 쓰지만 옛날에는 여우 호(狐)를 썼다. 백여우가 그만큼 영물이었다는 이야기다.
학인 시절 때 들린 인연으로 중흥불사까지
해인강원에서 강원교육을 받던 학인시절부터 방학이나 휴일 때 정취암에 오가던 인연이 중앙승가대학 재직 시절, 사제가 주지로 있었는데 당시에는 정취암에 오기 위해서는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난 길을 걸어서 오르내려야 했으며 물도 전기도 없었다고 한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 사제들이 더는 못살겠다고 다 떠나자 수완스님은 1996년, 학교에 사직을 내고 정취암으로 내려와 중흥불사 하기 위해 원력을 세우고 기존의 함석집과 가건물들을 철거한 후 낭떠러지 절벽에 축대를 쌓고 길을 만들기를 20여 년 동안 지나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가람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정취암은 한국의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각종 방송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수완스님은 시를 쓰는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1984년 ‘남촌문학’, 1989년 ‘큰수레 글나눔’을 이끌면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현대불교문학상의 전신인 삼오문학상을 제정하며 1991년 ‘문학공간’으로 등단한 수완스님. 매년 부처님오신날 시(詩)부문에 한해 당선자를 뽑았던 현대불교문학상은 1994년 종단개혁 이후 명실상부한 문학상으로 정착되었고 2000년대 들어와 시와 소설, 평론 등 3개 장르에 걸쳐 시상하는 등 문학상의 격이 올라갔다. 이처럼 수완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이후부터 지금까지 문학적 계파와 종교적 벽을 뛰어넘은 현대불교문학상을 유지, 발전시켜 온 숨은 공로자다. 계간 ‘불교와 문학’ 발행인과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하늘 빈 마음’, ‘이내의 끝자리’, ‘향기는 아직 찻잔 속에 남았는데’, ‘지리산에는 바다가 있다’, ‘유마의 방’ 등 다수의 시집도 냈다.
중생구제와 더불어 지역민과 함께하는 산청군불교사암연합회
산청군 100여 곳의 사찰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산청군불교사암연합회는 중생구제와 더불어 지역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매년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관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지역민들과 더불어 사는 것은 불교의 범위를 떠나 모든 종교계가 수행해야 하는 기본 책무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산청군불교사암연합회는 매년 합동방생법회,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불교문화제전, 지리산전몰원혼위령제, 동지 팥죽 나눔 등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으며 복지시설 및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금기탁 등 지역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매년 1월1일, 정취암에서 하는 해돋이 및 떡국 나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매년 1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코로나19로 인해 2년 전부터 행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청군불교사암연합회는 매년 다양한 행사를 통해 관내 복지시설 및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2년째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종식돼 예전처럼 지역민들에게 꾸준히 나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바랄뿐입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말며,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마음을 맑히는 것,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수완스님. “탐(貪)-탐내는 것, 진(瞋)-성내는 것, 치(痴)-어리석은 것은 문제를 만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탐·진·치를 버린다면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행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며 불교에서의 완벽한 삶을 ‘하심(下心)’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수완스님의 바람처럼 많은 중생들이 마음을 낮춰 작은 것으로도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또 그것을 위해 진실된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완벽으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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