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INTERVIEW
“영화배우와 설치작가로 비중있는 작품 선봬”사랑과 나눔 실천·예술지평 넓힌 공로로 ‘문화예술상’ 수상
홍기인 기자  |  forum1004@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1.17  10:49:2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사진 = 강리나 설치미술/화가]

2023년 12월 23일, 분당중앙교회에서 ‘제1회 분중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상(賞)은 기독교인으로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유능한 인재들의 사기 증진과 인류애 실천 문화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제정됐다. 처음 개최한 분중문화상에 설치미술가 겸 화가 ‘강리나’가 인재지원상에 올랐다. 강 작가는 크리스찬으로 평소에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예술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녀는 8~90년대 잘 나가는 영화배우였다. 김청기 감독의 ‘우뢰매’를 시작으로 1989년 제27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90년대 ‘서울무지개’, ‘변금련’ 등 여러 영화의 주연으로 충무로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배우를 접고 미술작가로 전향해 비중 있는 작품을 해오고 있다. 2024년(갑진년) 새해 즈음해 용인시 <갤러리필랩>에서 초대전을 하는 용띠 작가 ‘강리나’를 찾아 그녀의 지나온 삶과 예술세계를 들어보았다.

 

   
▲ [사진 = 강리나 설치미술/화가]

영화배우에서 전업작가로, 어려움 극복하며 작품에 매진
사람들은 ‘강리나’ 하면 영화배우로 우선 기억한다. 1990년대 ‘한국의 마릴린 먼로’로 불리었다. 그런 ‘강리나’가 10여 년 영화 인생을 접고 돌연 미술작가로 돌아갔다. 그녀에겐 어떤 연유가 있었을까? ‘강리나’가 활동하던 시기는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된 사회 변화의 흐름에도 영화는 TV보다 여전히 우위 매체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강리나’는 앞선 군사정권을 풍자하는 정치 소재 영화 몇 편을 경험하면서 알지 못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시나리오의 희생양으로 비극적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여기에 연기 외에 자신만의 퍼포먼스도 있었다. 홍익대 학부 시절 동양화를 전공한 ‘강리나’는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미술도 함께 했다. 그런 그녀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은 “영화냐, 미술이냐”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강리나’의 머릿속은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혼란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결국 영화를 접고 자신의 전공인 미술로 돌아와 줄곧 매진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미술계 또한 녹록치는 않았다. 볼륨이 컸던 영화의 주연 배우에서 작가로의 변화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맺어졌던 의존, 소비행태 등의 관습과 부조화를 이루었다. 이런 와중에 20여년 전 영화 매니저 및 보호자였던 친오빠의 심근경색 수술은 ‘강리나’로 하여금 ‘하트’를 작품 주제로 삼는 계기가 되었고 생명에 대한 성찰을 주는 소재가 되었다. 시대를 관통하며 글로벌 아이콘이었던 ‘마릴린 먼로’ 도상(図像)은 작가의 주요 소재로 떠 올랐다. 낙서로 표현되는 숫자 역시 이중적 관념에서 ‘강리나’를 작가로 더욱 각인시키며 필연적인 소재가 되었다.

 

   
▲ [사진 = 강리나 설치미술/화가]

원형 설치작품 비롯 ‘사랑의 힘’ 등 비중있는 작품들 선봬
강리나 작가는 한때 믈리학의 각종 이론을 풀어놓은 다양한 버전의 해체집과 핵을 만드는 공식, 숫자의 조합을 그림의 연장선으로 보고 캔버스 위에 풀어 놓았다. 상대성 이론 공식 자체가 가장 창의적인 예술이며 자신에게 힘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래전 유명 영화배우의 지위를 내려놓은 미혼의 여성으로 가족과도 떨어져 살았던 강 작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나를 알 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 속에 내 던져진 삶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수년 전부터 작품의 도상(図像)이 된 ‘미사일’도 자신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구체적인 힘과 능력을 가진 사물로 인식했던 이유에서 완성됐다. 작품 속 또 다른 도상인 영화 카메라 ‘아리(ARRI)’는 필름시대 배우였던 작가에겐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비추는 시선이며, 자기 자신과 동일시 된다. 무조건 계단의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산소통 맨 파충류 도마뱀도 작가 자신과 다름 없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 천국에 도달하거나 머물 공간이 없어도 더 높은 곳의 창문을 바라보고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자유롭기를 기원하는 모습이다. 강 작가는 “사랑은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사랑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최초 전시작 ‘두나미스(DUNAMIS)’는 ‘사랑의 힘’을 주제로 모든 것을 포용해 관대함으로 다양한 형태인 사랑의 하트를 구현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와 수호적 역할의 미사일 이미지는 그녀만의 시그니쳐가 되었다. 의도는 단순하다. 팬데믹을 거치고 힘들었던 여정을 사랑의 하트 표식으로 치유와 회복 등 시각적으로 무한정 전달하려는 애씀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사랑의 전도사’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강리나 작가가 물리학 공식의 관심에서 시작된 미사일 작품이나 사랑의 하트, 같이 생활하게 된 반려견에 이르기까지 외로운 그녀에게 수호자이자 상징이 되었다.

 

   
▲ [사진 = 강리나 설치미술/화가]

사랑과 나눔, 생활 속 예술실천 공로로 ‘문화상’ 수상
강리나 작가는 그동안 초대 및 개인전 23여회, 그룹전 및 아트페어도 100회 이상 참여하는 등 어려운 가운데도 영화 못지않게 작가로서 관록도 쌓았다. 2003년 순복음교회 미술체험 어린이 교실에 참여했고, 2014년부터 온누리교회 사역 산하 단체 아트비전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미술과 사역에도 열정을 쏟으며 2002년 9월 송은재단 미술상(다보탑의 꿈) 수상, 2003년 1월 LA Pasadena Society of Artists Certificate of Award(GRAFITTI) 수상, 2009년 6월 Seoul World Art Festival 금상 수상(혈관 백화점), 2018년 10월 인카네이션문화예술재단 예술상 수상, 2023년 12월 제1회 분중문화상(인재지원상)까지 올랐다. 강 작가는 지난 활동을 회상하며 ‘무지개 전시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작가들과 소외층 및 고아원을 찾아 무지개 밥차로 밥도 해주며 작품 외 모든 것을 아우른 따뜻함이 좋았다고 했다. 그녀의 원형 설치작품은 지금도 대전 및 홍릉 카이스트, 포스코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 스텐레스 스틸의 반구형 작품은 행성으로 표현되며 안쪽의 파란 조명은 갓 태어난 초행성의 생생함을 더 해준다. 숫자 낙서는 잠재된 무의식 속 삶의 해석이며 에너지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 위로 브론즈로 사람의 형상을 한 두뇌 세포의 모습은 세상천지 생명을 가진 모든 물질 속에 인간이 단연 최고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주인은 인간이죠.” 하나의 믿음을 갖고 힘차게 오르는 용처럼, ‘강리나 작가’가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 작품을 해가도록 응원해본다.  

홍기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본 뉴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뉴스앤매거진 파워코리아 대표 백종원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62-3번지 2층  |  대표전화 : 02-466-5085  |  팩스 : 02-444-0454
대표메일/제휴광고문의 : bridgekorea@naver.com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백종원(bridgekorea@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 : 591-87-01957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종원
월간 파워코리아의 기사는 회사, 기관, 개인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 및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며,
기사에 소개된 제품이나 서비스 내용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Copyright © 2024 월간파워코리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