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INTERVIEW
미래유산문화포럼 김유희 교수의 '천부경 석비 찾아 6만리'
지윤석 기자  |  jsong_ps13@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3.20  16:41: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사진 = 김유희 교수]

제2차 천부경 석비 찾기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1월 17일 아침 현지시간으로 07:40에 선전공항을 이룩한 비행기는 리짱(麗江)을 향했다. 그리고 첫날 저녁에 麗江古城을 돌아보는 것으로 천부경 찾기 여정을 시작했다. 먼저 수허꾸전의 정문, 입장권 파는 곳에서 뻬이징(北京) 북경사회과학대학교 학생을 우연히 만났다. 그의 이름은 周思航이며, 나시족(納西族)이었다. 수허꾸전의 九鼎龍潭까지 동행하며 그는 약 4시간 동안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고, 빠이사꾸전(白沙古鎭)까지 가서 천부경 석비를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흑룡담공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그곳에는 많은 석비가 있어 도움이 될 거라 말해주었다. 1월 19일, 麗江에 온 지 세 번째를 맞이하는 날엔 흑룡담공원을 돌아보았다. 몇 개의 오래된 석비가 있었으나, 천부경이나 도교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나시족에 관한 내용이었다.

   
▲ [사진 = 김유희 교수]

흑룡담공원을 살펴본 후, 나시족 동파문화연구소를 직접 찾아갔다. 나는 자신을 소개한 후, 여기에 온 목적을 설명하고, 천부경 석비를 찾는데 도와 달라고 했더니, 천부경 석비를 흑룡담공원 안에서는 본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나시족 라오쓰(老師)를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지금 부재중이고,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1월 20일, 麗江市圖書館에 영어·중국어 천부경과 영어 삼일신고, 천부경 논문을 기증하고, 많은 책을 보는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다. 麗江市旅發委에 하차하여 약 900m를 물어물어 찾아가니 玉龍雪山이 빤히 보이는 조용한 곳에 麗江市圖書館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의 책 4권을 기증하겠다고 하니, 漢族의 여대생이 女主任에게 나를 소개하며, 핸드폰 번역앱으로 소통시켜주었다. 女主任은 나시족 아주머니에게 나를 3층으로 데리고 가서 ‘地方자료실’에서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처음 보는 한국인이 韓國冊 4권을 기증한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였다. 여기 도서관에서 12권의 도서를 열람하였는데, 碑石관련문헌은 7권으로 麗江市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서관에서 열람하는데 걸린 소요시간은 3시간이 걸렸다. 복사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사진 몇 장으로 만족하였다. 1월 22일은 그야말로 결전의 날이었다. 白龍廣場에서 11번 버스로 환승하여 古城區 政府廳舍의 旅游局(관광과) 사무실을 찾아갔다. 정문 경비실에 이름과 여권번호, 주소를 기입하고, 4층 旅游局 局長을 만나 介紹書(추천서)을 써달라고 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메이유(아니오)’였다. 동파문화연구소는 자기의 상급기관이라 소개장을 써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1월 24일은 雲南省博物館을 둘러보며, 文山壯族苗族自治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보낸 하루였다. 박물관 전시품 책자를 구입하고, 또 홀로그램 카메라와 해설 스피커를 借入하고, 1층부터 3층까지 하나씩 하나씩 관찰하며 천부경 석비나 소수민족에 관한 정보를 얻길 기대했다. 그러나 많은 기대와는 달리 文山으로 가야만 하는 마음이 더 굳어져만 갔다. 운남성 박물관은 규모는 컸으나,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보다 전시 규모가 적어 매우 아쉬웠다. 특히 묘족(苗族)에 관해 유심히 살폈으나 기대만큼 만족을 얻질 못했다. 장족묘족자치주 州市인 文山州박물관에는 묘족의 전시품이 달랑 2개 밖에 없었다. 분명 장족 다음으로 많은 6번째 소수민족인데,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야 했다. 1월 26일은 文山市의 州博物館과 州圖書館에서 공부하는 하루였다. 4층 건물에 1, 2층만 전시되어 있는데, 규모에 비해 부족함이 많았다. 운남성 박물관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소수 민족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나 사회의 특성 등은 壯族苗族自治州라는 타이틀로 볼 때,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특히 묘족에 관한 문물은 壯族에 비해 찾기 어려웠다. 나는 ‘영어중국어천부경’과 ‘영어삼일신고’, ‘천부경 논문’ 그리고 ‘천부경 석비 찾아 3만리’라는 책을 기증하였다. 젊은 사서 담당 주임은 何達江 선생이다. 그는 자기 도서관에 한국인이 처음 와서 도서를 기증했다고 하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蚩尤와 苗族에 관해 물으니,‘蚩尤’에 관한 책은 없고, 苗族에 관한 책은 2권이 있는데, 1권은 苗文이라는 책이고, 또 1권은 苗族簡史라는 책이다. 이들 책을 복사하여 주었다. 나는 연구목적으로만 사용하기로 약속했으며 앞으로 이 책은 한국에서 다시 재조명될 것을 기대한다. 묘문이란 책은 묘족의 문자(글자)이다. 치우천황 사당에는 묘족의 문자로 ‘苗族 先祖 蚩尤 帝像’이란 글씨가 묘족 언어로 씌어 있다. 묘족 역사(簡史)란 책은 묘족의 연원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귀중한 보서이다. 1월 29일은 문산시 중심가에 大興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어, 비오는 날이라 이를 선택했다. 종로3가 탑골공원의 반쯤도 못되는 면적에 건립된 이 사찰은 꽤 오래된 사찰임을 알 수 있었다. 지도에 나온 사찰은 문산 시내에 2개 밖에 없었다. 大興寺를 나와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東山寺를 향했다. 지도에는 분명히 나와 있는데, 여기 주민들은 불교에 관심이 없는지 물어도 잘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중국의 南方佛敎가 점차 쇠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종교 자체가 점점 대중들로부터 멀어져간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도 종교가 정치와 결탁하는가 하면, 金錢主義로 求道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中國을 이해 할 수 있었다. 1월 31일은 장수이(長壽) 국제공항에서 12:50에 출발하는 山東航空으로 지난(濟南)空航으로 향했다. 昆明을 떠난 비행기는 약 4시간이 되어갈 무렵 山東省의 省都인 지난에 도착하였다. 이제는 시계를 1시간 앞으로 돌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15박 16일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 [사진 = 김유희 교수]

나는 무엇 때문에 남의 말만 듣고 西土 中國에 가야만 했는가. 진정으로 천부경의 석비가 있다는 말인가. 누누이 말했듯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천부경이 있다면 그곳에 미래유산문화포럼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먼저, 나의 마음가짐은 후원해주신 천손께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을 억제하였다. 둘째,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하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시간이 지나자 피로감과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셋째, 이제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돈키호테의 용맹도 좋지만, 자료를 더 준비하여 효율성을 높여야 겠다. 나를 믿어준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천부경 석비 찾아 6만리를 마친다. 

지윤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가장 많이 본 뉴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뉴스앤매거진 파워코리아 대표 백종원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62-3번지 2층  |  대표전화 : 02-466-5085  |  팩스 : 02-444-0454
대표메일/제휴광고문의 : bridgekorea@naver.com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백종원(bridgekorea@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 : 591-87-01957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종원
월간 파워코리아의 기사는 회사, 기관, 개인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 및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며,
기사에 소개된 제품이나 서비스 내용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Copyright © 2024 월간파워코리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