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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작업은 공예를 번안하여 회화로 꽃 피움
오상헌 기자  |  osh04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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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27  14: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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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경 작가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전미경 작가의 작품을 보며 살다보면 불현듯 과거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 몸은 비록 현재의 시간대에 속해져 있지만, 의식만큼은 여전히 과거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불행인지 축복인지는 모르나 인간은 몸과 의식을 일치시킬 수도 있고 분리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몸으로부터 분리된, 현실로부터 유리된 의식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흔치는 않지만 이처럼 유독 강하게 과거를 회상시키는 사건들이 있다. 내내 손길 한번 닿지 않은 채 먼지를 잔뜩 눌러쓴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갈피 속에서 발견한 마른 꽃잎이 그렇다.

색 바랜 종이 위로 그 수액이 흐릿한 얼룩을 중첩시켜놓고 있는 그 꽃잎은 도대체 언제, 어떤 연유로 지금의 그 자리에 자리하게 된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기억해낼 수가 없다. 박제가 된 그 꽃잎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사건, 설레는 사건으로 내 삶의 안쪽으로 들어왔을 터이지만, 도무지 그 사건을 복원해낼 수가 없다.

시간도 증발하고, 사건도 잊혀진 지금 불현듯 내가 대면하고 있는 그 꽃잎은 마치 나의 형해 같고 박제 같다.

이 꽃잎을 보고 있으면 이 꽃잎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엇이든 그림의 소재(재료)가 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이 발상을 말 그대로 실천하는 작가가 전미경이다. 전미경은 마른 꽃잎으로 그림을 그린다. 아니, 엄밀하게는 마른 꽃잎뿐만 아니라 눌려서 말린 각종 식물류를 소재로 하여 이를 화면에 콜라주 한다.

자연으로부터 식물을 직접 채집해 이를 회화로 옮기는 식의, 일견 자연을 회화로 번안하는 행위에 비유될 수 있겠다.

이때 소재로 차용되는 식물은 그 종에 따라서, 그리고 그 부위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형태와 색채를 지니고 있어서 이를 이용한 회화적 재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작용하는 문법은 다분히 회화의 생리를 따른 것인데, 이를테면 채집된 식물류를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이를 자잘한 부분들로 해체해 작가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에 따라 이를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해서, 화면 속에서 식물은 그 고유의 존재성 대신 회화를 위해 복무하는, 회화에 종속되는 형식을 취한다.

풍경은 작가의 작업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듯 크게 재현적인 풍경(전작)과 심의적인 풍경(근작)으로 갈린다.

이러한 구분은 세계와 주체와의 관계에 따른 것으로서, 처음에 주체는 세계의 감각적 표면현상에 천착하지만, 이후 점차 그 세계를 자기 내부로 불러들여 재차 내뱉는 과정을 거친다.

세계와 주체가 서로를 대상화하는 동떨어진 관계로부터 시작하지만, 이후 점차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서로의 지평이 상호작용하고 삼투되고 융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해서, 종래에는 주관적인 풍경, 나의 풍경으로 부를 만한 지평이 열리는데, 그 지평이 열어 보이는 비전은 세계와 만나지는 저마다의 관계나 경험이 대동소이한 탓에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보편성을 얻는다.

특정 주체에게 속한 심상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그림(엄밀하게는 콜라주 된 화면)은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건드려준다.

사람들이 저마다 머리에 그리고 있을 풍경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어떤 지점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풍경은 비록 실제 하는 풍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종래에는 실제 하는 풍경과는 동떨어진 풍경, 나아가 일말의 비현실성마저 포함하고 있는 풍경, 즉 심의적 풍경이란 점에서 일종의 유토피아의 외화로 볼 수 있다.

심의적 풍경이란 사실상 욕망이 그려낸 풍경이며, 욕망은 현실을 치장함으로써 부정하는(적어도 현실의 이미지는 현실 자체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심리적 기제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풍경이란, 특히 심의적 풍경이란 일종의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마련하는 것이며,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우리 모두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이상향에의 욕망을 실현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심의적인 풍경과 함께, 이따금씩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집을, 연못과 물가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그 위로 하늘하늘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그리고 공간을 부유하는 새를 포치해 정감을 자아낸다.

이 모티브들은 기본적으로 콜라주에 의한 것이지만, 작가는 이와 함께 일종의 태우기 기법과 금박을 덧입혀 화면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특히 태우기 기법은 모티브의 가장자리를 태워 거뭇한 라인이 생겨나게 한 것으로서, 이로 인한 선이 자작나무 껍질의 점선이나 코스모스 씨앗의 점선과 대비된다.

이와 함께 나무껍질의 목질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흡사 담채화와도 같은 투명하고 엷은 색조가 어우러져 감각세계 저편의 아득하고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전미경 작가는 3월 7일까지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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