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화가 강미숙 작가

한국화 ‘맥’ 잇는 뚜렷한 주제의 작품.
“<포도원 지기의 낮잠> 포도밭 옆 냇가에서 발을 씻고 일에 지친 몸 바람결에 뉘고 낮잠에 빠진 아버지를 위해 우산으로 햇살 가리고 그늘을 만들어 준 딸의 마음이 정겹기만 하다.

<원두막 위 그 남자> 푸른 포도밭 사이로 유유히 흐르던 달빛 사이 원두막의 그 남자,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꽃바람 휘날리는 꿈길을 헤매고 있는 듯하다.

<꽃피는 포도 마을> 포도 익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포도 마을엔 꽃이 피고 새들이 날아든다. <원두막의 밤> 포도 향기에 취해 발길 흔들리던 그 밤 원두막엔 백열등이 밝혀지고, 모기장 불빛 사이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며, 은하수가 흐르는 냇물 따라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국화가 강미숙 작가의 추억어린 ‘포도밭 이야기’ 작품을 들여다 본 것이다. 모두가‘포도밭’ 을 소재로 보는 이들에게 꿈길을 더듬 듯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작품들이다. 강 작가는 포도에 대한 애착이 많아 고집스러울 만큼 일관되게 작품을 내놓아 ‘포도밭 시리즈 작가’ 로 유명하다.

작품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며, 형태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하고 섬세하다. 캔버스 질감은 따스한 한지나 녹차 잎이 침착된 그린 계열의 한지를 사용하여 과감한 먹선 처리를 해주고 인체와 사물, 자연 등 대상을 간결한 생략을 통해 함축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추억 속 이슬 맺힌 아침의 포도밭 풍광, 원두막에 누워서 포도 잎 사이로 바라보던 은하수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진 서정적인 반추상화 작품 등 다수를 이루는 작품 세계는 전통 한국화의 맥을 이으면서도 주제 의식에서 뚜렷한 자신만의 개성을 잘 드러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강 작가의 강점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기법으로 화면에 생동감을 넣고 서정적 풍경과 은유적 대상 표현에 있어서 직관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여기에 부분적인 액센트 색으로 주제를 부각시키고, 그 선택된 색은 화면의 조화를 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추억에서 비롯된 ‘포도밭 작품’
강 작가의 최근 대표작은 소녀적 첫사랑의 수줍음을 표현한 ‘몰래한 사랑’을 비롯해 ‘추억의 포도서리’, 자신의 소녀적 자화상을 그린 ‘포도와 소녀’ 등이 꼽힌다.

모두가 그만의 섬세한 감성과 이미지 작업으로 포도를 중심으로 행복감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 외에도 ‘우후’, ‘선암사 가는 길’, ‘물새’ 등 산수화도 있지만 포도를 소재로 한 연작들이 다수를 이룬다.

포도가 주요 소재가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강 작가의 유년기인 1960년대는 국내가 어려운 시절로 ‘보릿고개’ 라는 게 있었다.

그 시절 허기진 아이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호심탐탐 먹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강 작가의 아버지는 당시에 작은 과수원을 일궜는데 이곳은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표적이 되곤 했었다.

“깊은 밤 포도밭에 도둑이 들면 아버지는 큰 기침을 하시며 일부러 돌아 앉아 별을 세곤 하셨어요. 70세까지 교회의 유년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분인데, 성경 말씀대로 고아와 과부를 위해 밭의 작물을 모두 거두지 않고 남겨 두길 실천 하신거지요. 작품 ‘포도 서리’ 속의 주인공은 바로 인품이 넉넉하셨던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강 작가의 작품 ‘포도 서리’에 대한 사연이다. 이렇게 ‘포도밭 이야기’ 작품들은 꿈길을 더듬어 유년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그녀의 눈과 마음은 40여 년 과수원을 일군 아버지와 과수원집 딸로 불리며 행복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화폭 구석구석에 섬세하고 정겹게 담긴 그림들은 이 때문에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래서 최근까지 하나 둘 작품을 주문해 소장한 컬렉터들이 꽤 많다.

특히 밝고 동화 같은 표현기법 탓에 시집과 출판사로 부터는 표지 작품의 주요 타켓이 되기도 한다. <들꽃문학>의 표지인 ‘포도밭의 동심’ <초동문학>의 표지인 ‘포도밭의 사랑’, 그리고 유태승 시인 시집의 표지에 실린 작품 등이 좋은 사례이다.

남편과 목회 활동하며 틈틈이 그림에 몰두
강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그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신작로에 그림을 그려놓고 지워지면 다음에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등 자신의 즐거움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어머니의 반대가 워낙 심했다. 그래서 늘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었다.

강 작가는 24살 때 신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목회자와 결혼을 했고, 처음 목회지는 전기도 없던 옹진군의 작은 섬 신도에서 시작했다. 화성, 제주도 등 도서지역을 다니면서 남편과 38여 년의 목회 활동을 이어갔고, 1993년 화성 지방에서 성전을 지어 내기까지 가난한 시골 목회자의 삶을 견뎌야 했었다.

아이들의 교육비를 벌기 위해 학교 사서 일을 맡아 하기도 하고 특수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마음에 담았던 그림을 틈틈이 그리며 시련을 이기는 힘을 얻었으며, 자식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키워 냈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들어선 건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그 해 봄학기부터이다. 목회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인사동을 다니며 견학했고, 그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빠듯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쪼개어 캔버스 앞에 앉은 것이다.

남보다 세배의 노력을 하며 처음에는 실경 산수화를 작업했고, 그 후 반추상 작품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이뤄내면서 완성된 작품만 100여 점이 넘어갔다.

‘들꽃문학’ 표지 선정에 해외 작가도 소장

홍익대 특수대학원 동양화과를 수업중인 강 작가는 지금까지 개인전 9회를 비롯해 이탈리아 파도바 아트페스티벌 초대전, 스페인 바로셀로나 폰아트 갤러리 초대교류전, 스리랑카 국제깃발전, 한중교류아트쇼, 남농미술대전, 전일미술전, 소치미술대전, 시흥미술제, 한국화구상회전 등 100여회 이상의 그룹공모전과 초대전에 참여를 했다.

특히 이탈리아 개인전 때는 한국화에 매료된 현지 작가들이 기쁜 마음으로 ‘몰래한 사랑’ 과 ‘포도 따는 여인’ 등 작품을 매입해 소장했고, 전시장을 찾은 많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부채와 소품 등을 남기고 오기도 했었다.

200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상, 전일 국제공모전 입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과 양천 문화대 한국화 강사를 역임한 그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폭 넓게 활동을 해가고 있다.

그림 작품을 통해 꿈을 이루게 됐다는 강미숙 작가. 그녀의 남편은 목회자로 은퇴했고 지금도 든든한 반려자로 늘 곁에서 용기를 주고 있다.

강 작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복음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 보고 싶다” 고 목표를 밝히면서 “그림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소박한 꿈도 내비쳤다. 꿈은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힘이 되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참 행복하다. 강 작가에게 있어 꿈을 포기한다는 것 있을 수 없다.

열정을 쏟아 이어가는 것도 바로 이런 꿈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소양도 풍부한 강 작가는 내면으로 따뜻하게 보듬는 시도 많다. 그녀가 쓴 ‘동시(童詩)’ 한편이 간결한 시어로 각박하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들에게 환한 행복을 주며 마음도 잘 정화 해주는 듯하다.

월간 파워코리아 7월 지면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