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단 서양화가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 독창적 영감 부여해
강원도 인제의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김단 작가.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 만큼 외진 곳에서 자란 김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였다.

스스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사회성이 없었다고 이야기할 만큼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김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를 타고난 덕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자연을 벗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그림이라고는 교과서 외에 접해볼 수 없던 오지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고, 대학에서는 그림과 상관없는 전공을 선택한다.

졸업 후 서울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결혼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마음에 담고 있던 그림에 대한 욕구가 컸기에 밤새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곤 했다.

입시학원 취미반과 지역 문화센터 등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던 그녀는 곧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가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기에 이른다.

먹으로 그려낸 모노톤의 여인들
무겁지만 깊이 있는 작품 그려내는 치유의 작가
김단 작가의 작품세계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먹으로 그려 담백하게 흘러내리는 여성의 선과 표정을 통해 내면의 정서를 표출시키는 그녀의 작품은 어린 시절에 지녔던 슬픔을 화폭에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한다.

시골에서 뿌리 깊게 내려 있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김 작가의 어머니는 7자매를 내리 낳으면서 수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런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정서는 단연 슬픔이었을 것이다.

김 작가의 그림 속 여인은 주로 누드의 형태로 등장한다. 젯소를 칠하지 않은 캔바스 천의 느낌을 살려가며 먹으로 여인을 그린 후 돌가루와 아크릴로 배경을 칠하는 그녀의 독특한 기법이 여인들의 슬픈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그녀는 대상의 외형적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는 작가다.

어둠 속에 드러나는 희망적 존재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알아가는 작업 이어가
여인의 누드를 통해 감정을 탐색하는데 주력해왔던 그녀가 최근 돌을 모티브로 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김 작가는 ‘얼마 전 고향의 어릴 적 살던 집터를 가봤더니 집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집 옆에 있던 비탈밭의 돌무더기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혹시 전쟁 때 인민군들의 무덤이 아닐까', '돌을 들어내고 나면 아기 시체가 나오지 않을까'하면서 겁을 먹곤 했지만 그 돌무더기들은 그녀에게 더없는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돌은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한 그 돌무더기들을 모티브로 한다. 돌 틈 사이로 태아나 해골 등의 상징물을 배치한 '대지-어머니의 초상' 등 대표작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담담하게 담아내면서도 자연의 순환을 엿보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대지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의 자궁이며 그 자궁은 하나의 완벽한 우주인 셈이다. 그녀는 개인적인 내면의 감정표출을 넘어 보편적 우주의 이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 화면위에 펼쳐놓는 김단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한 호흡으로 그려나가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그러기위해 강력한 집중력이 필요하며 하나의 작품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고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감정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김 작가는 7월 6~18일 서울 화동에 있는 파인아트에이블갤러리에서 초대개인전을 가진 후 9월에는 2주간 뉴욕 첼시에서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작품을 만들어가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해냈듯 삶의 현장에서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통해 치유받기를 원한다.

월간 파워코리아 7월 지면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