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뫼믈글새김방 고광혁 작가

시(詩)·서(書)·화(畵)를 함께 품은 전통예술, 서각
우리의 전통예술 중 하나로 꼽히는 서각은 고대에서부터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려는 표현욕구가 서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신앙의 주술적 행위를 표현한 울산 대곡리 암각화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最古) 목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그리고 서울의 중심에 서있는 광화문을 비롯한 고궁이나 사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판과 주련 등 서각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서각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돌, 또는 기타 재료에 새긴 것으로 글(文)과 새김(刻)의 만남이자 글자(문자;文字)와 칼(도;刀)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나무에 자신의 작품을 새기면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서각 작업은 시·서·화가 하나로 묶인 것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예술적 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일면은 조각이고 일면은 서예, 일면은 그림이라고 불리는 서각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현대에 이르러 많은 작가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 서각이 그토록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충청남도 보령시에서 공방 ‘달뫼믈글새김방’을 운영하며 서각 후진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고광혁 작가는 “서각은 자신의 생각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각은 양식에 따라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으로 나뉘며, 형식에 따라서는 판서각, 환서각, 투서각, 목판서각, 생활서각 등으로 나뉜다. 또한 각법에 따라서도 양각과 음각, 음양각 등으로 나뉘는데 그 안에서도 세세한 각법에 따라 여러 가지 갈래로 나뉜다.

이처럼 다양한 경계를 갖고 있는 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개성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각 분야에서는 이를 직업으로 삼는 전문인과 함께 취미생활로 서각을 배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무에 칼로 무언가를 새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진산 선생의 가르침 아래 서각 작가로 발돋움해
올해로 14년 째 강연 활동 이어가
고광혁 작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여 서각 작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기계설계와 기계제작, 금형제작 등으로 기계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자신의 공장을 차려 일하던 중 1998년도에 손가락 부상으로 공장을 정리하게 된다.

평상시 눈썰미와 손재주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심한 좌절 속에서 2000년 연고도 없는 충청남도 보령으로 내려와 두문불출하며 자연과 더불어 생활을 하던 고 작가는 2002년 진산 정지완 선생을 만나 서각의 길로 접어들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게 된다. 진산 정지완선생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각 명인이자 문화예술부문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예술가다.

그는 과거 6.25 때 소실된 북한의 금강산 신계사를 남․북한의 학자들이 함께 복원하던 당시 현판 복원을 도맡아 진행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였다. 그가 1998년부터 귀향해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던 중 고 작가가 진산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며, 선생을 만나고 난 후 고 작가의 인생은 말 그대로 180도 전환을 겪는다.

진산 선생의 사사 아래 고 작가는 3년 동안 서각의 기초에서부터 표현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을 전부 섭렵했다.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작품 제작에 몰두했던 그 세월은 고 작가에게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단체전이나 초대전 등에만 간간이 참여할 뿐 한 분야에 20년은 매진해야만 그 분야에 진정한 전문가라 할 수 있다는 소신으로 한 차례의 개인전도 열지 않고 오로지 작품작업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또한 고 작가는 진산 선생으로부터 관련 강의를 이어 받아 지금까지 강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어느덧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 동안 쌓인 그 깊이를 익히 짐작할 만하다.

작품의 구성과 배치에 대해 고민하며 독창적 세계 만들어가
수강생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맞는 방법 찾게 도와
고 작가의 작품은 글자를 새기는 서각이기에 서예의 필법 등을 고려하여 새김질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단순한 듯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오묘한 조형적 표현으로 작품을 구현하여 구차한 표현으로 설명되기 보다는 작품을 눈앞에 마주할 때에 정수리를 내리치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추구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아니하다)를 그의 작품 세계의 기본 이념으로 추구한다.

그러한 고 작가의 강의법 또한 매우 간단한 듯 하면서도 심오하다. 고 작가는 “칼 쓰는 법은 일종의 기능이라 금방 배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구성인데 어떠한 각법을 선택하고 또 배치하는지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주부에서 교사, 귀촌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고 작가의 수업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다양한 작법을 함께 익히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표현법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고 작가는 “작년에 서천에서 강의할 때 전통기법을 하나씩 마스터하는 식으로 양각, 음각, 음평각, 음양각 등 다양한 각법을 두 달씩 가르친 적이 있다. 진행하는 수업의 목표는 모든 기법을 전통적으로 마스터한 후 현대서각과 접목하거나 자신만의 색을 넣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진정성 있는 수업 덕분에 수강생들은 금세 서각의 매력에 빠져들고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색을 수강생들에게 입히려고 강요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수강생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는 것이 서각을 배우는 여러 분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사람의 작품이 좋다고 해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각 관련 강의교안과 PPT 제작 앞장서
20주년 기념 개인전과 함께 출판기념회 계획해
물론 지금까지 강의를 이어오면서 항상 쉽고 즐거웠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국 여기저기로 출강을 다니면서 힘들고 보람을 얻지 못해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강생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서로를 배우며 먼저 배운 자로서 그들에게 전해주는 서각 작품 활동이 즐겁고 보람되고 그들에게 취미로서도 또한 직업으로서도 매우 만족스러운 작업이 될 수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 작가의 작업은 주로 자신의 신앙에 근거해 성경 말씀을 서각으로 만드는 작품들이다. 언뜻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작업이지만 글을 구성하는 방법과 배경 무늬 또한 조형적 배치하는 것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독창적인 매력이 엿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현재 후진 양성을 최대의 목표로 잡고 전국 각지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서각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으며, 10년 이상의 강의 경력을 총망라한 서각강의교안과 PPT 제작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그 스스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별다른 매뉴얼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의지는, 향후 서각 분야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그는 작품 활동 20주년을 맞을 준비를 하며 성경 66권의 내용을 담은 서각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개인전과 출판기념회를 함께 계획하고 있다.

서각의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에 더욱 앞장설 각오로 서각을 위해 한 몸 바쳐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 감과 동시에 강의교안 집필이라는 원대한 꿈을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는 고 작가의 찬란한 미래를 기대해본다.

월간 파워코리아 9월 지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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