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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에 전통음악의 멋과 기품 담아낸 ‘명인’한국예술·문화명인 대금부문에 선정, 후학양성 등 전통음악발전에도 기여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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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7  08: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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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귀남 대금제작소 연구소 나귀남 명인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국악을 대표하는 악기로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금은 한국의 전통 목관악기 중 가로로 뉘어 부는 가로저(횡적·橫笛)를 대표하는 악기다. 대금은 대나무로 만들어지며 한국 고유음악에 두루 사용하는 향부(鄕部) 악기에 해당된다. 이렇듯 국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대금을 32년 동안 연주해 온 남귀남 명인은 대금부문에서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나주 전통음악 진흥회 이사이자 나귀남 대금제작연구소 명인이기도 한 그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며 장인으로서 올곧게 한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삼심여년동안 다양한 공연활동 등 각고의 노력
대금부문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결실 맺어

수많은 명인명창을 배출한 전통음악의 성지인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나귀남 명인은 “초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동네 형이 단소를 부는 것을 보고 그 소리에 끌려 음악을 시작했다. 그 후 고등학교 일학년 때 탈춤, 태평소를 접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회상했다.
대금을 시작하면서 나 명인의 인생은 달라졌다. 틀에 박힌 학교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던 대금을 통해 그는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
대금은 어린 시절부터 나 명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부분이자 이정표였다.
이후, 1987년 전남 나주에 사면육가를 전수하기 위해 나주에 온 이생강 문화재 선생님(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 보유자)에게 대금 사사를 받은 그는 다음 해 국립국악원 중요문화재를 보유한 서용석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대금 산조를 배웠고, 대학 진학 후 서용석 선생님의 제자인 김광복 교수님에게 대금 산조를 사사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전라남도립국악단에 들어간 나귀남 명인은 27년 동안 수많은 공연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대금 이외에도 태평소, 피리, 아쟁, 장구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다.
하지만 다양한 악기를 섭렵한 그에게도 대금 연주는 결코 쉽지 않았다.
대금은 국악기 중에 가장 연주하기 힘든 악기로 유명하다. 아쟁, 가야금, 피리 등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내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대금은 불어도 바람소리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 명인은 호흡조절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끊임없는 연습과 틈틈이 단련한 단전호흡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울러 스승인 서용석 선생님과 같이 힘 있고, 감정을 꾸미지 않되 대금의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나귀남 명인은 나주 전통음악 진흥회 이사이자 한국예술·문화명인 대금부문 인증을 받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울림 있는 연주로 관객에게 감동 선사, 후학 양성에도 매진
1900년대에 민속 악기로서 대금이 탄생했고, 민속악의 한 장르로 '산조'가 발달하면서 대금 산조의 명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대금은 보통 최소 3년 이상 자란 쌍죽골(골이 양쪽으로 패인 일종의 기형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쌍죽골은 일반 대나무에 비해 쌀집이 두껍다. 이러한 특색은 대금의 깊고 깊은 소리를 발현할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쌍죽골은 자연 대나무이기 때문에 굵기와 두께,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제품이 있을 수 없고 대나무마다 그 특성에 따라 마디를 자르고 구멍을 파고 음을 골라야 한다. 이 작업들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나귀남 명인 또한 대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등 전통의 멋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다.
인위적인 멋보다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나귀남 명인은 대금 연주를 할 때도 “잘하려 애쓰기보다 내가 평소 연주해온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며 “과하지 않게,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주로 관객들이 편안하고도 자연스런 울림을 전달받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나 명인은 대금 연주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던 시간만큼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무대나 외국에서 독주하는 무대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성장해왔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예술의 본질을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던 그는 그러한 노력 덕분에 해외공연에서도 많은 찬사를 받아왔으며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을 잊지 못해 직접 찾아온 분들을 마주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전한다.
대금의 매력으로 ‘호흡(바람소리)’을 손꼽는 그는 단전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대금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나귀남 대금연구소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나 명인은 “잘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 잘하려 하면 뭐든지 실수한다.”며 후학들과의 수업시간에서도 음악인의 자세를 강조한다.
다른 악기에 비해 특히 연주하기가 어려운 대금은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연습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기에 나 명인은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도록 격려와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그만의 교육철학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통음악 보호 육성해야
국악재능 기부 등 다양한 활동으로 전통음악 발전에 기여

나귀남 명인은 존경하는 스승으로 서용석 선생, 이생강 선생, 김광복 교수를 꼽는다. 그 스승들이 그의 음악적 감흥을 일깨워준 멘토가 되어주었다는 것.
또한 그는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진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며 성실과 인내의 가치를 강조한다.
나 명인은 국악을 하는 예술인으로서 현재 국악이 현대 음악에 비해 성장이 부진한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전통음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면 그 존재는 영속성이 없으며 과거가 없는 현재 또한 있을 수 없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음악은 우리 음악의 뿌리이며 과거이자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결국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지켜나갈 때 세계적으로도 더욱 성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전통음악을 보호 육성해나가는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본분임을 자각하고 전통문화를 더 잃어버리기 전에 국가적 차원에서 전통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구책을 세워나가는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국악도 버스킹이나 다양한 기획을 통해 대중화되어가고 있지만 본연의 전통 음악의 멋을 지켜나갈 수 있는 장인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나 명인의 소신이자 신념이기도 하다. 나 명인은 이러한 소신을 단순히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현재 그는 한 달에 최대 20회 정도의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작사·작곡 활동도 병행해나가며 명인으로서의 삶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예능기부 및 국악 재능기부, 양로원 등에서의 봉사활동도 많이 펼치며 사회 공헌에도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나 명인은 우리 전통음악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 명인은 우리 전통음악의 전망에 대해 “굉장히 밝다고 본다. 국악은 우리 음악의 뿌리이자 음악의 큰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국악은 사람들이 널리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기에 국악의 색깔은 잃지 않되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주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며 국악의 성장 가능성을 자부했다.
나 명인은 명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부담감에 대해서는 우려보다 명인이 갖고 있는 강점에 더욱 주력한다고 전한다.
“잘하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내가 최선을 다하며 노력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늘 감사하다. 사람들이 찾아주고 맡겨주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일인가”
서용석 선생님이 생전에 아끼고 직접 연주하셨던 악기를 모두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나 명인은 전통음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장래에 박물관이 지어지게 된다면 이 또한 모두 기증할 생각이다.
현재 나주에서 후학 양성을 하며 향후에도 전통음악과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나 명인은 “모방도 창조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일단 최대한 스승의 작품 색깔을 모방하여 내 것으로 탈바꿈시키고 싶다.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부지런히 작업을 하다 보면 나만의 색깔로 다시 재창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삼십여 년을 전통음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나 명인의 최종 목표는 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지나온 연륜이 켜켜이 쌓여 전통음악의 기품을 멋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나귀남 명인, 전통 음악 발전에 기여하며 한평생 명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왔던 그의 원대한 꿈이 아름답게 이뤄질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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