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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과 인쇄 한 길 걸어온 정문출판 정윤곤 회장이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안정희 기자  |  honesty5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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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7  09: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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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출판 정윤곤 회장

“이제는 거의 일선에서 손을 놓은 시점입니다. 요즘 저에게 주어진 일은 큰 틀에서 약간의 조종만 하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바쁘고 치열했던 과거를 지나, 노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간 무엇을 이뤄왔느냐’라기보다 ‘무엇을 후진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인가’에 더욱 무게감이 쏠려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왔던 출판 인쇄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이후에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 할 것인지에 대한 저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1976년 2월에 설립되어 무려 40여년 넘게 출판 광고부터 기획, 디자인 인쇄 전문기업으로 오로지 한길만을 걸어온 정문출판 정윤곤 회장이 기자에게 허심탄회하게 꺼낸 첫 마디였다. 무형의 정보를 한데 모아 최고의 제작물로 완성시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국내 최적의 출판문화 파트너로서 출판 인쇄업계를 묵묵히 이끌어온 정 회장의 요즘은 젊은 경영자들에게 경영권을 조금씩 넘긴 이후, 한발 물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조용히 수행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몇해 전 거처를 옮겼다던 양평에 대한 전원생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표정이 무척 해맑다. 어릴적에도 그림을 했으나 칠순을 앞두고 예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초록의 자연 속에서 온통 그림(서양화) 그리기에 전념하고 낮은 꽃을 바라보며 그동안 탐석했던 수석을 감상하고 좋은 이들과 한바탕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정윤곤 회장, 어떻게 보면 같은 길을 먼저 걸어온 대선배인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낮은 자세’와 함께 ‘인생과 관련된 진리’였다.

Q. 이른바, 출판업계 선도기업을 표방해온 정문출판을 마주하며, 가장 먼저 와닿았던 것이 바로 ‘고객은 우리의 미래’라는 슬로건이었습니다. 40년이 훨씬 넘도록 기업을 이끌어오며 갖고 계신 경영관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정윤곤 회장
재론할 필요 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 않나 싶습니다. 고객을 대상으로 주문생산을 시행할 때, ‘고객의 구미에 맞춘 창조물이어야 한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는 자세가 당연합니다. 같은 의미로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보니, 고객을 대함에 있어 가장 최우선 시 되어야 했던 자세는 바로 ‘덕’이더군요. 덕은 나누는 것입니다. 많은 CEO 후배들이 저에게 묻곤 합니다. 이윤창출이 기본인 기업경영에 있어서 어떻게 덕을 접목시킬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도덕적 규범을 따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고객과 기업 간의 나눔, 직원과 경영자 간의 나눔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덕’은 발맞춰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각 연령대마다 그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때는 일제강점기였기에 ‘독립’이 시대의 흐름이었고, 우리 아버지 때는 6.25전쟁 겪었기에 ‘반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 때는 단연 ‘민주화’였습니다. 그렇다면 2020년 현재 시대의 흐름은 무엇일까요? 기자님께서도 공감하시겠지만 바로 ‘공유’와 ‘공정’입니다. 다시 말해, 기업경영에서도 반칙이 존재하면 절대 안되는 것이죠. 저는 앞서 이야기한 덕이라는 것이 곧 시대의 흐름인 공유 및 공정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나눌 줄 안다는 것, 제대로 된 공정사회는 덕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Q. 정문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문출판이 광고, 기획, 디자인, 인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A. 정윤곤 회장
가장 처음엔 활자로 짜 맞춘 인쇄판인 활판으로 시작해, 스텐실에 활자를 찍는 공판, 가장 최근의 컴퓨터화에 이르기까지 인쇄에서의 공정은 그야말로 무한변신을 거쳐 왔습니다. 아마도 컴퓨터식자시스템을 국내 업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 정문출판이었을 것입니다. 한발 앞서 변화를 받아들이고자 했던 노력으로 이렇게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죠. 다소 뻔한 이야기 같지만 ‘남과 똑같이 가면 안된다’ 한발 앞서가야 하는것은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어렵다고 한다고 해서 나 역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좋지 못한 자세입니다. 변화에 맞춰, 앞서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출판인쇄업계가 최근 짧은 시기에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자동화가 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자화가 도래한 식이었죠. 그만큼 인쇄와 출판이라는 분야가 시대변화에 있어, 가장 민감하다는 의미 입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업계가 시대에 순순히 적응하고 변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생대 동안 지구에서 가장 번성했던 파충류 가운데 하나인 ‘공룡’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바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한순간에 멸종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덩치만 키웠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간 정문출판 역시 인쇄, 제본, 디자인에 걸쳐 올(ALL)시스템인 기업의 몸집을 줄이고 분업화를 정착 시켜왔습니다. 아마도몸이 가벼워지니 좀 더 빨리 시대흐름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몸집을 줄이고 나니 감춰져있던 전문성에 대한 부족감이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몇 년간 전문성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차별화 하다보니 훨씬 빠르게 시대의 흐름에 맞춘 시스템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Q. 한 기업을 운영하며 갑작스러운 변화 흐름에 적응하는데 있어, 두려운 마음은 없으셨나요?

A. 정윤곤 회장
머무르면 한순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를 시도 하며 살아 왔습니다. 사실 인간은 조금씩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잘 체감하진 못합니다. 또 한 번의 비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비커에 개구리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본다고 생각해보면, 개구리는 차마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비커 밖으로 톡 튀어나오게 될 것입니다. 같은 케이스로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비커를 불에 데운다고 한다면, 개구리는 뜨거움을 전혀 모른 채,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꼭 출판업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를 통틀어) 틈틈이 시대의 흐름을 읽어 미리 준비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과거부터 현재까지 줄곧 이어져왔던 정문출판의 해외진출과 변화에대해 알려 주십시오.

A. 정윤곤 회장
그렇습니다. 국내 경쟁이 치열하다면 해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구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출범될 당시, 슬로바키아에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시장조사에 임해보니, 소련 체제가 붕괴되며 많은 외국인 업체가 철수를 하고, 곳곳의 공장이 비어있을 만큼 상황이 그리 좋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의 유럽은 기회를 엿보고 있는 선진국들이 많았기에, 이곳에 먼저 진출해서 대한민국 밖의 세상을 제대로 마주하고, 대한민국 인쇄기술을 무기로 세계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해보자 라고 마음먹고 도전에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까지 비즈니스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속에서의 대한민국 인쇄 수준은 전혀 뒤처지지 않으며, 적어도 상급 내지 중상급의 월등한 실력과 수준을 겸비하고 있으므로 도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한편 [2001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국, 슬로바키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설립한 정문출판은 오스트리아 빈,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유아용품회사와 물류유통회사를 함께 운영 중 입니다.]

Q, 수년 째, 국내외를 막론하고 종이산업의 위기가 끊임없이 화두에 오르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선 종이산업의 미래와 존재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정윤곤 회장
저는 위기라고 보지 않습니다. 종이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고, 인쇄와 활자가 있어 문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쇄의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종이위의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우리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은 확실히 컴퓨터와 스마트폰 기기의 글씨에 익숙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이가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가느냐’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종이 문화이든, 미디어 문화이든 그것은 별개의 영역으로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부분들입니다. 다만, 인쇄문화를 살리기 위한 절실한 노력들이 필요 합니다. 종이문화가 겉으론 굉장히 단순하고 도식적인 듯 하지만, 자세히 하나하나 뜯어보면 디자인부터 시작해 굉장한 다양성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의 책은 입체화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이지 않습니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낸다면 결코 다른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단단한 문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른바 ‘즐김과 여유의 미학’이라고도 합니다. 수석에 대한 회장님의 과거 기사를 보았습니다. 수석에 대한 회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정윤곤 회장
1977년도부터 수석에 매혹이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기업 경영을 하며 수석도 같은 세월을 함께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철야와 야근으로 이어지던 1977년 시절, 굉장히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과도한 업무와 바쁜 일상으로 마음도 몸도 견디기가 힘들었던 그 때, 조남병, 박기표 선배님과 막걸리를 마시는데 그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나 내일 돌 주우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따라가지 않을래?’라면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 탐석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남한강을 타고 충주댐 근처를 향해, 택시와 시외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그렇게 수석을 마주하는데 ‘이곳에 참 잘 따라왔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메말랐던 정서도 풍부해지고, 빈틈없던 마음에 조금은 여유가 생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너무나도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드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럴 때, 수석을 움켜쥔 내 손 안에 마치 삼라만상 온 세상이 다 있는 것 같더군요. 요즘도 가끔 시간이 허락할 때면, 수석과 함께한 예전 추억을 가득 안은 채, 기억의 장소를 찾아가곤 합니다.
지금도 수석들을 바라보면, 산지에서 수석을 발견한 장소가 어디였는지, 그 날 누구와 함께 갔었는지, 동행인과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모두 기억이 납니다. 제가 무엇에 몰두하면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양평에서 하루에 6~8시간씩 집중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구절초는 아홉 마디가 꺾여야, 찬 서리 내린 그 추운 계절 속에서 비로소 향기가 가득한 꽃을 피웁니다. 사람에게도 구절초처럼 ‘마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인생에서 놓아야 할 때가 있고, 어떨 땐 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수석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도 해야할 중요한 때가 있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정 회장은 평화미술재단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요즘은 서양화 인상파 그림 작업에 푹 빠져있다.)

Q. 앞으로의 삶을 계획함에 있어, 미술계와 어떻게 소통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실 계획이신지요.

A. 정윤곤 회장
저희 할아버님께서는 한학에 능통하신 문장가로서 전라도 나주에서 굉장히 이름을 떨치던 분이셨습니다. 더불어 아버님은 교직에 오랫동안 몸담으시며 후진양성에 힘쓰셨습니다. 저 역시, 한평생 출판인쇄에 몸을 담게 된 이유가 바로 그런 문화적인 피가 흐르기에, 평생의 직업을 갖고 좋은 인연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예술계와 아무 연관 없는 CEO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출판 역시 문화예술 쪽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10여년 전, 환갑을 맞이하며 수석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내년에 칠순을 맞이하는데 소중한 분들을 모시고 직접 작업한 30~40점의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취미로 삼아온 수석수집에 지나간 추억과 과거들이 묻어있다면 그림작업은 현재의 제 마음상태를 표현한 결과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인터뷰에 회장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정윤곤 회장
직장생활을 이어가며, 틈틈이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기억에 남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는 노력을 하고, 저의 작품을 통해 마음을 서로 공유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앞으로 꾸준히 그림을 그려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꽃마리’라는 꽃에 관한 것입니다. 꽃마리는 야생화이지만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화관의 크기는 약 2mm 정도인데 다섯 개의 꽃잎이 아름답게 감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을 바라보려면 하도 크기가 작으니,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여야 제대로 꽃잎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꽃마리를 보는 자세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자세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롱한 꽃잎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자신을 낮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자세로 인생의 마무리를 낮고 겸손하게, 작은 부분에도 만족하며 살고 싶습니다. 끝으로 정문출판의 모든 임직원들과 파트너를 포함해,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되어준 인연들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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